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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서 말은 모았지만 꿰진 못한 한국-독일 반공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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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슬 서 말은 모았지만 꿰진 못한 한국-독일 반공주의 비교 [프레시안 books] 김동춘 · 기외르기 스첼 · 크리스토프 폴만 외 <반공의 시대>
1.
2014년 12월 19일 한국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재판관 9명 중 8명의 압도적인 찬성(인용)으로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하면서 제시한 근거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하여 "헌법상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했기 때문에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 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당 해산 명령과 동시에 헌재는 "위헌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비상 상황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민 대표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함께 박탈하였다.

2013년 8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체포되고, 이를 계기로 그해 11월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1년여의 재판은 이렇게 끝이 났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전후로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그 논란 속에서 과거 역사의 사례들이 자주 언급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1958년 이승만 정부가 조봉암 등 진보당 간부들을 간첩으로 몰아 당을 해산하고 1959년 조봉암을 사형시킨 사건을 떠올렸다. 또 어떤 사람들은 통일 이전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가 1956년 '독일공산당'에 내린 해산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1950년대 독일에서 발생한 위헌 정당 해산 사례는 멀리 떨어진 독일의 약 60년 전 사례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출간된 <반공의 시대-한국과 독일, 냉전의 정치>(돌베개, 2015년 3월 펴냄)는 냉전의 시작과 함께 동시에 분단된 한국과 독일이 지난 70년 동안 걸어온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반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보여줌으로써,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독일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2.
ⓒ돌베개
<반공의 시대>는 독일의 비정부기구(NGO)인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주도로 한국과 독일의 주요 현대사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45년 이후 반공주의가 한국과 독일의 사회정치적 발전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의 사회정치적 문제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려해 한국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비교 연구적 분석틀을 제시함으로써 반공주의에 대한 두 나라의 학문적 담론을 보완하고, 한국과 독일에서 각각 진행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논의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저자들은 이 책의 출판을 스스로 "하나의 실험"이라고 규정했다.

이 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즉 책머리에서 밝힌 대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서만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상대편의 입장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연구를 진행했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과 독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아니 아직도 발휘하고 있는 '반공주의'에 대해 명확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왜냐하면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듯이 '반공주의'는 종교적 이분법에 입각해 끊임없이 '우리 편' 아니면 '적'을 강요하는, '관용과 통합'이 아닌 '배제와 절멸'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18편의 개별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머리말과 맺음말도 포함되어 있는데, 보통의 책들과 달리 머리말과 맺음말은 본문의 다른 논문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사실은 독자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일단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에 수록된 개별 논문들의 필자와 제목, 그리고 간단한 개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여러 필자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기외르기 스첼, 크리스토프 폴만, 김동춘이 함께 쓴 머리말의 경우, 앞에서 간단하게 이 책에 수록된 개별 논문의 제목과 필자, 그리고 반공주의와 관련한 서구 학계의 최근 연구 경향을 소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반공주의' 이해에 필수적인 여러 '개념'들, 즉 '공산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현실 사회주의', '파시즘', '전체주의' 등에 대한 사전식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말 이후 연이어 나오는 4편의 개별 논문은 모두 독일 학자들이 반공주의와 관련한 1950∼1960년대 서독과 동독의 상황을 분석한 것들이다. 특히 당시 서독의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 독일공산당(이하 공산당)과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이하 사통당)의 관계가 중요하게 언급된다. 슈페판 크로이츠베르거의 논문("공산주의자를 물리치라"-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의 정부·비정부 대공 심리전)은 1950년대 서독에서 반공주의의 유지, 확산에 앞장선 여러 기구들의 존재와 역할, 그리고 당시 서독과 동독이 상호 간에 행했던 선전과 선동 등을 정리한 뒤, 서독의 반공주의가 1960년대 초부터 '동방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기외르기 스첼의 '냉전의 국제정치와 서독의 내부화된 반공주의'는 19세기부터 최근까지 독일에서 나타난 반공주의와 관련된 여러 사실들을 시기를 구분해 정리하면서, 같은 시기 미국의 반공주의를 함께 분석하였다. 디르크 호프만은 '동독의 서방 정책과 서독의 일상적 반공주의'에서 1945년 이후 1950년대까지 동독의 사통당 지도부가 서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려 했고, 반면 서독에서는 반공을 내면화하면서 동독으로 '식료품 소포' 등을 보내는 등 반공 선전에 적극 나섰음을 보여줬다. 위르겐 트로일리프는 '서독의 반공주의와 사민당 및 노조의 정책에 대한 영향-1957년 노조 운동가 빅토어 아가르츠 간첩죄 재판을 예로'에서 서독의 노조 운동가이며 사민주의자인 빅토어 아가르츠가 동독의 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1957년 간첩죄 재판을 받을 당시, 반공주의에 입각해 서독의 언론이 행한 맹목적 비판과 더불어 이에 동조한 사민당과 독일노총의 반응을 정리했다. 아가르츠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계속 고립되었다.

이후 한국 연구자가 쓴 한국 반공주의 관련 논문들이 이어진다. 강명세는 '반공주의와 정당 체제 왜곡'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소선구제 선거법이 반공주의 강화에 끼친 영향을 고찰했다. 또한 남북의 잦은 군사적 대립이 중간 세력으로 하여금 반공주의 폐지와 같은 현상 타파보다는 반공주의 유지라는 현상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김동춘은 '한국의 지배집단과 반공주의'에서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반공주의가 어떻게 '주기적이고 만성적인 적색공포', 또 '히스테리적 반공주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히스테리적 반공주의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미청산, 전쟁, 분단으로 오직 자기 보존, 권력 유지, 계급 이익 유지에만 집착한 지배 집단이 한국 지배계급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로서, 결국 군사 독재, 파시즘, 전체주의를 지탱하는 논리로 기능했다. 김정인은 '역사 교과서 논쟁과 반공주의'에서 2000년대 이후 뉴라이트에 의해 '좌편향'으로 공격받은 금성 교과서와 진보 진영으로부터 식민지와 독재를 미화했다고 공격당한 교학서 교과서의 내용을 북한사 서술을 중심으로 비교 검토하였다. 그러면서 최근 북한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지는 가운데, 점차 사라져가던 반공주의가 반북주의의 이름으로 대중성을 얻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명환의 '반공주의와 화해·협력의 분단 극복 정책-김대중의 햇볕 정책과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에 대한 비교'에서는 김대중의 햇볕 정책과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을 비교 분석 하면서, 두 사람 모두 반공주의자이지만 그들의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의 멸절을 주장하는 반공주의가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평화, 인권, 다양성 존중 등의 가치를 표상하는 반공주의임을 강조했다.

류대영은 '2000년대 한국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정치 활동과 반공주의'에서 북한 지역에서 남하한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본류와 새로운 미국 근본주의 영향이 합쳐져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개신교는 전체적으로 강한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이 가진 특유의 선악 이원론은 냉전기 한국에서 강력한 반공주의와 결합했음을 지적했다.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은 200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적 위기의식 고조와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힘의 공백을 이용하여 정치 세력으로 급부상하였다. 박태균의 '196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진화'에서는 이념면에서 단순했던 1950년대 반공주의와는 달리 1960년대에는 경제적 관점과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재구성이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 196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로서 근대화론은 지배 담론과 저항 담론 양자에서 모두 지지를 받았지만, 점차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내부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광영의 '한국 반공주의 궤적'은 제목 그대로 1945년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반공주의의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했는데, 특히 냉전 체제 붕괴 후 반공주의는 북한을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국가로 규정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반대에 초점을 맞췄다고 파악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과 남한의 보수 정당 사이에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성립되기도 했다. 유범상은 '한국 반공주의와 노동운동'에서 한국의 시민들은 반공주의의 검열과 억압, 배제의 규율을 지속한 결과 스스로 반공주의 파놉티콘의 포로가 되었고 레드 콤플렉스라는 집단적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에는 반공주의가 북한을 혐오하는 반북주의로 변형되어 종북 담론을 낳고 있는데, 이렇게 조장된 '분단 의식의 과잉 사회화' 결과 반공주의가 쳐놓은 울타리 때문에 노동운동에서도 이념성이 탈각되고 임금과 기업 복지의 현안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이완범은 '한국의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에서 탈냉전기 반공주의자가 반대할 대상은 거의 소멸되고,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 한국의 제1의 교역 파트너가 되면서, 반공주의는 '반종북' 캠페인으로 진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확산된 반미주의는 최근 '종북' 딱지를 붙이며 반미주의를 단죄하는 친미주의의 신매카시즘에 의해 위축되었다. 이하나는 '한국 대중문화에서의 반공주의-반공 영화의 진화와 불화'에서 반공주의를 정합적인 논리를 가진 이념, 상상, 이데올로기로 파악하기보다는 다양하고 중층적이며 가변적, 모순적인 사회적 감정 혹은 정서로 파악했다. 이때 반공주의 전파의 중요 매체 중 하나가 '영화'와 '드라마'인데, 반공 영화의 경우 휴머니즘과 오락성 때문에 계몽성과 선전성에서 전파 효과에 한계가 컸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고한 우월감과 경멸을 동반한 반북주의가 오락적, 대중적, 그리고 휴머니즘 지향적 영화들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조효제는 '한국의 반공주의와 인권'에서 반공주의의 사상적 왜곡으로 말미암아 북한에 의해 적화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인권과 동의어가 된다고 하는 초논리적 궤변이 보수파의 프로파간다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반공주의의 제도적 탄압은 인권 운동을 민주화 운동과 같은 궤도에 수렴시켰다. 한성훈의 '국가 폭력과 반공주의'에서는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는 '반공 분단 의식의 과잉 사회화'로 대중의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는 '반공 규율 사회'를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1987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늘날 냉전 자본주의와 반공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있는데, 이런 사회 체계에서 반공주의는 국가 폭력과 더 강한 친화성을 갖는다. 끝으로 김동춘이 쓴 맺음말의 경우, 사회주의 몰락으로 냉전이 막을 내린 서구와 달리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사회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를, 동아시아에서 탈식민주의, 즉 민족 문제가 냉전의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은 데서 찾았다. 또한 과거의 반공주의가 오늘날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옷을 입게 되면서, 이제 반공주의는 탈규제, 반복지, 시장주의, 개인주의, 국가 불간섭주의, 자유 지상주의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공주의와 시장 근본주의는 일종의 문화적 폭력으로서 인종주의와 종교적 근본주의와 더불어 사회적 소통과 화합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3.
지금까지 장황하게나마 이 책 속에 담긴 18개 논문의 필자, 제목, 간단한 개요를 살펴보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18개나 되는 논문의 수가 단적으로 보여주듯 한국과 독일의 반공주의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정치 제도', '역사 교과서', '대북 정책', '개신교', '근대화론', '노동운동', '친미주의', '대중문화', '인권', '국가 폭력' 그리고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까지 정말 다양한 세부 주제들이 반공주의와 결합하여 분석되었다. 특히 많은 논문들이 냉전 해체와 한중 관계 강화 후 한국의 '반공주의'가 약화되었을지 몰라도, 북한에 대한 우월감과 혐오에 기반을 둔 '반북주의'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 어떻게 현재 한국 사회의 '반북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대안이 잘 제시되지 못했다. 독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문의 편수가 적지만, 그래도 이들 논문을 통해 1945년 이후 특히 1950년대 서독에서 얼마나 많은 반공주의 관련 조직들이 정부의 안팎에 만들어져서 서독인들의 일상은 물론 동독인들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동독 역시 사통당을 중심으로 서독의 사민당과 공산당 등에 영향을 끼치려 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의심스러운 서독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재판에 보수적인 서독인들은 물론 진보적인 서독인들조차 암묵적으로 동조했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1956년 서독 연방헌법재판소의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도 이렇게 서독인들의 정치와 일상에서 전면화되었던 반공주의에 근거해 이루어졌다.

이렇듯 이 책에는 한국과 독일에서 전개된 반공주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많은 논문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양국 반공주의의 실상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양적으로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질적으로 보아도 각 논문들은 비록 일정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해당 주제와 관련한 주요 내용을 충실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독일 부분의 경우 독일 현대사에 대한 서평자의 지식이 짧아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국 부분의 경우 각 분야에서 그동안 관련 연구를 꾸준히 수행한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 일정한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500페이지가 넘는 이 방대한 그리고 나름대로 잘 정리된 책을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선 각각의 논문이 자신의 주제와 관련한 반공주의의 역사를 잘 정리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각 연구자들이 선행 연구를 통해 밝혀놓은 사실들을 다시 정리한 측면이 강하다. 물론 학술지에 개별 논문으로만 발표할 경우 독자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단행본 형태로 다시 정리해서 수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성격이 '대중서'인지 '학술 연구서'인지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아니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강한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더 아쉬운 부분은 이 책의 '형식'과 관련한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모두 18편의 글을 모아서 만들어졌다. 나름대로 머리말과 맺음말을 배치하여 형식적 완결성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각각의 논문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이는 여러 사람이 쓴 개별 글들을 모아 책을 출간할 때 항상 발생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 조각조각의 글들을 그 내용적 유사성이나 특정 주제에 따라 다시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재배치하는데, 이 책은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18편의 논문이 쭉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단지 '독일' 사례가 맨 앞에 나오고 '한국' 사례가 뒤에 나오는 정도의 배치가 의미가 있다. 심지어 '한국' 사례를 다룬 논문들의 경우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이 필자의 '가나다' 순서에 따라 배치되었다. '반공주의'라는 중요한 주제를 불친절하고 편의적으로 다루지 않았나 하는 혐의가 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특히 이 책이 애당초 '비교사' 연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앞서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과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문제를 언급했으나, 이것 말고도 한국과 독일은 그동안 유사한 현대사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현재 한쪽은 여전히 분단 국가로 남아 있으나 다른 한쪽은 일단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갔다. 이렇듯 한국과 독일은 유사한 면이 많으면서도 또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그 역사적 맥락이나 상황에서 일정한 격차가 존재한다. 즉 한국과 독일의 현대사는 공통점과 차이점의 비교 분석을 통해 각각이 가진 특징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이 책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교사'적 접근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사'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의 성과는 실망스럽다. 단지 독일의 사례를 다룬 논문과 한국의 사례를 다룬 여러 논문들이 그냥 함께, 그것도 불균등하게 묶여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나열'적인 논문 배치 때문에 이들 논문들이 어떻게 서로 비교될 수 있는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꼼꼼하게 살피면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슈페판 크로이츠베르거의 논문과 이하나의 논문을 함께 놓고 보면, 한국과 독일에서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일상에서 반공주의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또 그 효과와 한계, 균열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어느 정도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 또 이 책 속에 실린 여러 글들 가운데 노명환의 논문은 하나의 논문 안에서 한국과 독일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애초의 문제의식을 잘 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개별 논문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비교사'라는 측면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책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마지막 논문, 즉 맺음말에서 앞에서 언급된 논문들을 일부 다시 인용하면서 종합적이고 비교사적인 접근을 시도했으나, 이 역시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맺음말' 혹은 '결론'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새로운 연구의 성격이 강하다. 차라리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만 인용하여 맺음말을 작성했더라면 이 책의 애초 취지를 좀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비교사적 접근과 분석은 매우 어려운 연구방법론이다. 비교의 대상들을 연구자가 모두 잘 알고 있어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한데 이게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어떤 때는 어설픈 비교 과정에서, 차라리 비교를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로 잘못된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과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을 연결시키는 논의들 역시 얼마나 두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오는 이야기인지 의문스럽다. 이 책이 다루는 한국과 독일의 현대사와 반공주의도 마찬가지다. 한국 연구자들은 한국의 사례에만(그것도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해서만), 독일 연구자들은 독일의 사례에만 정통하다보니, 두 사례를 함께 시야에 넣고 충실하게 비교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비교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국과 독일의 반공주의와 관련한 많은 콘텐츠를 모아 놓았지만 아쉽게도 본격적인 의미의 비교사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서 말의 구슬은 모았지만 꿰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는 반공주의 연구와 관련한 서 말의 구슬은 갖게 되었다. 앞으로 이 구슬들이 더 깊이 있는 비교사 연구 및 반공주의 극복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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