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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여, 이제 그만 떨고 진실과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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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여, 이제 그만 떨고 진실과 마주하라 [프레시안 books]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 노명우 외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배가 침몰하던 8시 50분께, 선내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은 9시 50분까지 약 한 시간 동안 반복됐다. 승객들은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결과는 안타깝게도 '참극'이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은 누구였을까. 속옷 바람으로 구명정에 오른 이준석 선장이었을까. 해경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였을까.

2014년 7월 2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 사건' 공판의 한 장면이다.

여객부 승무원 강혜성 : 승객들을 안심시키려고 처음에는 제 자체 판단으로 안내 방송을 했고, 이후에는 양대홍 사무장을 통해 안전 방송하라는 지시를 받고 방송을 했습니다.

검사 : 안전 방송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강혜성 :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모르겠고, 저는 승객들을 안심시키면서 대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80쪽)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의 주인공은 여객부 승무원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안전 방송'이라는 사무장의 불분명한 지시를 "그대로 있으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지만, 적어도 악의는 아니었다. '판단력 결여'에 가까웠다.

"이 많은 '였다면'이 결합하지 않았으면 참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

ⓒ미지북스
5개월간 3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세월호 사건 공판 기록들을 엮어 <세월호를 기록하다>(미지북스, 2015년 3월 펴냄)를 편 오준호 작가는 말한다. "차라리 헬기가 왔을 때, 그(강혜성)가 살기 위해 방송을 집어치우고 먼저 탈출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고. 승객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시점이 좀 더 앞당겨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의는 없는, 그러나 판단력이 부족했던 그는 사고를 '참사'에 이르게 했다. '가해자', 적어도 '사고 원인 제공자'가 된 셈이다.

사건 공판의 또 다른 장면을 보자.

검사 : 구조 조정안 보고받으며 과적 시비 문제도 보고받았고 선박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세월호에 화물을 많이 실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청해진해운 대표이사 김한식 : 그렇게까지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과적을 제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없어 심각하게 생각 안 했습니다.

검사 : 운항으로 인한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물 적재를 늘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지요. 피고는 물류팀으로부터 주간 보고 받을 때마다 화물 매출을 올리라 독려했지요?

김한식 : 항상 열심히 해 달라고만 얘기했습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191쪽)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항상 열심히 해달라"고만 했다. 직원들도 열심히 했다. 무엇을? 대개 기업이 그러하듯이 이윤을 내는 일을. 대표를 포함한 청해진해운의 간부들은 "회사에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게 좋은 일인 줄 알았다"고 법정에서 고백했다. 직원들은 "회사에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과적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간부의 이기심과 직원의 무책임이 합쳐진 결과는 수백 명의 죽음이었다.

이런 인상적인 몇 장면 외에도, 세월호와 진도 VTS의 교신 내용, 구조에 나선 해경 법정 증언 등에서도 사람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선박업체 선주, 구조 당국만의 문제였을까. 출항 당일에는, 운항 관리실 직원이 선박 점검을 엄격히 하자 승무원뿐 아니라 승객들이 "출발이 지연된다"며 항의해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승객들조차 참사를 키운 혐의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오 작가는 이 같은 법정 기록들을 통해 참사의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선다.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324쪽)

애초 낡은 배가 도입되도록 이명박 정부가 선령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더라면, 청해진 해운이 무리한 증개축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리한 증개축에 한국선급이 제동을 걸었더라면, 위험한 출항을 거부할 수 있도록 선원들이 용기를 냈더라면, 설령 배가 기울었다 해도 선원들이 평소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아 비상사태에 현명히 대처했더라면, 진도 VTS가 퇴선 결정을 과감하게 지시했더라면, 출동한 123정 해경이 더 적극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났더라면….

오 작가는 "이 많은 '였다면'이 결합하지 않았으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적어도 참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말대로, 지붕이 무너지는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이 아닌 법이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이윤을 내고, 상사의 말에 잘 따르도록 사람들을 부추긴다. 성장과 발전은 그렇게 되는 거라고 우리 모두 믿어왔다. 아마 이 사고가 아니었다면, 법정에서 고개를 숙이던 그들은 여전히 유능한 간부, 현명한 직원, 실용적인 시민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오 작가는 아이리스 영(Iris Marion Young)의 말로 자신이 얻은 결론을 갈음한다. "평범한 개인들도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우연히 남겨진' 우리들이 할 일

ⓒ현실문화
"평범한 개인들도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지적은 역사 속의 누군가를 어른거리게 한다.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 칼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 평범한 가장이었고 성실한 시민이었던 그는 늘 그랬듯 상부 명령에 따라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심지어 학살 명령까지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지켜본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은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모든 것을 자백하면서도 '선한 신념에 의거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프롬은 "조직화된 인간은 불복종의 능력을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며 "역사상 이 시점에서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 말한다.

아이히만 재판이 진행된 1960년대만이 아닌,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2015년 지금까지도 프롬의 경고는 유효하다. 오히려 섬뜩하리만큼 가깝게 와 닿는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현실문화, 2015년 4월 펴냄)은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라'는 프롬의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책이다. 노명우·권명아‧이광호‧이현정‧진태원‧김동춘‧천정환‧강부원‧권창규‧허경‧정원옥‧오영진‧윤여일 등 13명의 인문학자는 이 책에서 인간‧기억‧국가‧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비판한다.

인문학의 본령이 성찰에 있는 바, 이들은 먼저 세월호 이후 인문학자로서 혹은 문학가로서 자신이 한 성찰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자신들에게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가'란 화두를 던졌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쓸 수 없다"던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처럼, 이들은 세월호 이후 인문학의 의미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한다. "몇 개의 희미한 문장이 떠올랐지만 그 문장들을 기록하려는 순간, 문장들의 무력감이 통증처럼 느껴져서 지워버린다"며 괴로워하고, "'사건 이후의 문학'은 말할 수 없는 자의 언어의 자리에서 그 모순과 분열을 '견디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지독한 통증을 겪으며 깨달은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란 결국 "담화의 주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는 일이다. "담화의 주체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지 않으면 사건 이후의 말들은 문학과 담론 시장의 '경쟁'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인 주체는, 비판의 주체인 자신을 그 비판의 가장 가혹한 대상에 위치시킨다. 정말 나 자신은 그 고통에 연루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윤리적 주체의 최초의 질문이다. (…) 사건은 자기 자신에 대한 뼈아픈 윤리적 질문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 끔찍한 사태는 그것을 만들어낸 이 체제 안에서의 자신의 존재 방식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다시 창조하는 사유를 요구한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84쪽)

자기 자신에 대한 뼈아픈 윤리적 질문은 비단 인문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터. 이들은 이 시대와 이 시대 구성원들에게도 자기 성찰을 권한다. "기만적인 권력을 비판하고 우리의 각성을 촉구할 때, 그 말을 하는 주체는, 개인을 '자기 자신의 사업가'로 만드는 권력 테크놀로지에서 벗어나 있느냐"고. 이는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던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통찰과도 맞닿는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남겨진 사람들이고, 같은 이유로 누군가는 우연히 죽어야 했다. 우리의 생존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며 남겨진 이들은 타자의 고통에 빚짐으로써 살고 있다. 모두가 몫 없는 자들로 밀려나고 있고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외부를 만들어냄으로써 작동하려 들고 있다. 대통령부터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까지 계속해서 돈벌이 경제를 외쳐댄다면 미래는 요원하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275쪽)

에리히 프롬에서 수전 손택, 오준호에서 13명의 인문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회의, 비판, 불복종이다. "역사상 이 시점에서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던 프롬의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집회에서 '진상 규명'이라는 구호와 '재발 방지'라는 구호가 한 덩어리인 걸 35년 전 세상을 떠난 프롬은 아마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우연히 남겨진' 우리들이 진실에 가 닿으려는 움직임은 더 처절해져야 한다. 진상 규명 요구는 청와대만을 향한 게 아니다. '진상 규명' 팻말을 흔드는 이 모두 역시 세월호 사건에서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으리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세월호를 기록하다>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우리 모두 함께 져야 한다고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이토록 절절하게 갈파하고 있다. 그러니 청와대여, 두려워 말고 어서 먼저 문을 열고 나와 당당히 진실과 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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