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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간과한 독일 노동개혁의 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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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간과한 독일 노동개혁의 본모습! [김윤태 칼럼]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강자'가 되기까지
2011년 내가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 초빙교수로 강의할 때 들은 조크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술값은 누가 낼 것인가? 술값을 내는 사람은 독일 사람". 웃을 일은 아니다. 마크 트웨인이 말한 대로 원래 독일 사람들의 유머는 웃자고 하는 것이 아니기로 유명하다. 독일 사람들은 경제 위기에도 재정 지출을 줄이지 않는 남유럽을 비판했다. 반면에 독일 경제는 상대적으로 좋았다. 독일은 유럽 통합으로 출현한 거대한 시장에 독일 상품을 판매하고 대출을 통해 돈까지 벌고 있었다. 당연히 남유럽에서는 독일을 '흡혈귀'로 묘사했고 동시에 독일 은행은 시위대에 점거당했다.

''제2의 경제 기적'의 신화와 진실

이제 전 세계가 독일을 다시 보고 있다. 부러움과 찬탄이 쏟아지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독일 경제는 한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2010년 이후 빠른 속도로 경기가 회복되었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한 '유로존(Euro Zone) 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 경제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최근 독일 정부의 부채는 줄어들고 고용은 늘어난 반면, 인플레이션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꾸준한 경제 성장과 재정 건전성 강화, 고용의 대폭 증가를 일컫는 독일의 '제2의 경제 기적'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1990년대 독일 통일 이후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한때 '유럽의 병자(sick man in Europe)'로 불렸던 모습에 비하면 괄목상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왜 독일은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일까?

한국의 보수적 논평가들은 독일 경제가 2000년대 초반 슈뢰더 사민당 총리가 추진한 '아젠더 2010'의 노동 개혁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독일 복지 국가를 약화한 대가로 경제 경쟁력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슈뢰더 정부는 영미권에서 제시된 '제3의 길'을 따라 '신중도(Neue Mitte)'를 내걸고 사회민주주의 노선에서 이탈하여 법인세 인하, 노동시장의 유연화, 규제 철폐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은 이러한 개혁을 통해 독일이 '복지병'을 치유했으며, 한국도 이를 본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독일의 복지 국가가 여전히 건재하며 관대한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어떤 모습이 진정한 독일 복지 국가인가?

높은 복지 수준

한국의 보수적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은 재정 균형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긴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독일 경제의 성공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도입한 긴축 정책에 따른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2010년 이후 공공 사회 지출은 약간 줄어들었지만, 광범위한 복지 삭감 조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이 기민당-기사당-사회민주당 연정으로 교체되었던 시기인 2006년에 국내총생산(GDP)의 26.1%였던 독일의 공공 사회지출은 2013년 26.2%로 거의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즉, '제2의 경제 기적'에는 긴축이 아니라 기존의 높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면서 비효율적인 노동 시장 정책을 폐기하는 한편,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강화하는 전략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 산업의 국제 경쟁력

다음으로 중요한 사실은 독일의 높은 산업 경쟁력이다. 최근 독일의 경제 회복은 상당 부분 제조업의 강력한 경쟁력에 힘입은 것이다. 독일 제조업은 자동차, 기계 산업, 의약, 화학 산업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경기가 어려울 때도 제조업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숙련 노동자를 우대하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린 독일의 노동 시장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독일의 제조업은 2013년 현재 전체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지역 사회와 연계되어 추진되는 직업 교육과 훈련은 그 성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사 협력과 산업 평화

한국의 보수 언론이 간과하는 진실이 더 있다. 독일의 많은 기업에서 노사 합의로 2002년 이후 임금 인상을 자제하여 단위 노동 비용이 하락한 것도 가격 경쟁력에 기여하였다. 세계 금융 위기 이전에 맺어진 단기 실업에 대한 노·사·정 3자 협약을 통해 주문량이 일시적으로 적을 때 노동자의 노동 시간과 그에 대한 임금을 줄여 고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제조업 기업들은 1980년대와 반대로 숙련 근로자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노동 시간 단축과 같은 유연 근무를 선호하였다. 그로 인해 단체교섭에서 유연 근무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기업별로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가 도입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독일 정부는 더 많은 노동자가 줄어든 임금의 일부를 단시간 근로 수당에 의해 보충받을 수 있게 하여 노동자의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려 했다. 전반적으로 독일은 미국과 다르게 정부가 나서서 숙련 노동자의 해고를 막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독일에서는 전일제 노동자의 해고에 따라 증가하는 정부의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대연정의 힘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독일이 긴축 대신 확장적 재정 정책을 추진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독일 정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의회제 정부와 다당제 선거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 다양한 정당이 연정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2005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좌파당(Die Linke),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지만, 좌파당을 배제하기 위해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이 대연정(grand coalition)을 구성하였다. 2009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대패한 대신 자유민주당(FDP)이 약진하여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함께 새로운 연정을 구성하였다. 따라서 세계 금융 위기 직후 급진적인 정책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메르켈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초점은 확대적 재정 정책을 통한 사회보험과 고용의 안정화이었다. 메르켈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증하는 실업과 빈곤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자유시장에 의존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 대신,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통해 노동 시장의 내부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고 기업의 숙련 노동을 보전하려고 노력하였다. 주요 정책은 고용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고용 보호'과 인적자본을 강화하는 '사회 투자'라는 두 가지 차원의 전략으로 실행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연합뉴스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

한국의 보수적 논평가의 주장과 달리,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독일의 복지 수준은 크게 후퇴하지 않았다. 많은 학자는 금융 위기의 조건에서 급진적 개혁이 도입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실행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금융 기관에 막대한 긴급 자본을 투입하고 케인스주의 수요 관리와 임시적 사회 프로그램의 확대를 통한 시장 보호 정책을 실행하였다. 이처럼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복지 축소가 발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의 정치적 지지 때문이다.

2013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41.5%를 득표하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복지 국가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2005년과 마찬가지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좌파당과 연정을 하면 집권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좌파당과의 연정을 거부했다. 좌파당은 하르츠 개혁에 의한 실업 급여의 삭감 등의 조치를 원상 복구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편, 2009년부터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연정을 구성하던 자유민주당(FPD)은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한 득표율 5% 기준 달성에 실패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의석이 없는 원외 정당이 되고 말았다. 전통적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며 사유화와 탈규제를 주장해오던 자유민주당의 몰락은 독일 유권자들이 복지 삭감과 국가 역할의 축소를 수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강한 여자" 메르켈의 초당 정치

2013년 총선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승리를 거둔 것은 복지 개혁으로 인한 문제점을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대응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공개적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고 독일식 복지제도를 유지하려는 중도 노선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기민당의 선거 전략도 영국식 대처주의와 미국식 레이거노믹스가 아니라 '중도'(Mitte)를 강조하였다. 메르켈 총리는 '제3의 길' 또는 '신중도' 노선을 역설계(reverse-engineer)하여 시의 적절하게 타협책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최근 최저임금 제도의 개정은 초당적인 정치적 합의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저임금 일자리의 노동 조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05년 총선부터 사민당은 모든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제도의 적용을 주장했다. 그러자 메르켈 정부는 이를 수용하여 지난해 7월 독일 연방 하원에서 정부가 입안한 최저임금제 법안이 통과되었다. 독일에서는 그동안 국가 단위의 최저임금제 없이 노사 자율 협상을 통해 직종별로 임금을 결정했는데, 2015년부터 시간당 8.5유로(약 1만2000원)의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시간당 8.5유로는 프랑스의 9.53유로(1만3000원)보다 낮고, 영국의 7.91유로(1만800원)보다는 높다. 한국의 2배 수준에 달한다(한겨레신문, 2014년 7월 4일).

다른 한편, 임시직과 파견노동자의 곤경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자 메르켈 총리는 이들에 대한 보호를 약속했다. 다른 한편, 사회민주당이 세입자를 위한 임대료 통제를 주장하자 메르켈 총리도 임대료 통제를 공약했다. 기민당의 기민한 대응 전략은 기민당과 사회민주당 사이의 정책적 대안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독일 경제가 우월한 산업 경쟁력 덕분으로 유럽연합에서 예외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메르켈 총리의 자질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우세한 점도 기민당의 정책 주도권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합의 정치의 중요성

독일의 경험에서 주목할 점은 좌파당과 자유민주당을 제외한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회민주당, 녹색당 사이에 광범한 정치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슈뢰더 정부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논쟁과 합의와 타협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합의를 통한 변화는 독일의 숙의 민주주의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독일의 정치 제도는 다당제와 의회제를 채택한 데다, 연방정부, 주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전통이 강하다. 동시에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용자 단체와 노동조합의 의견을 반영하는 관행을 유지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대신, 정치적 양극화의 정도가 약하고 정책의 지속성이 높다.

자본주의와 복지국가의 공존

독일 복지 국가의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독일의 '고용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공 이면에는 노동 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났다. 시간제, 파견노동, 기간제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1990년대 초반 5분의 1 수준에서 현재는 3분의 1 이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독일에서는 여전히 사회 보험에 대한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0%, 전체 공공 사회지출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따라서 기존의 복지 국가가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하르츠 개혁이 아니라 기존의 독일 모형의 강점이 경제 위기의 극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독일에서 고용 친화적 사회정책과 사회 투자와 활성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복지 국가의 변화는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복지 국가가 그러하듯이 지속 가능한 복지 국가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혁은 오늘날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과 차이가 존재하며, 사회 정의를 지향하는 조세 개혁을 통해 국가 부채의 부담을 감소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정책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사회 협약과 함께,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해를 모두 충족하는 복지 개혁이 시급하다. 이러한 개혁은 반드시 반(反) 자본주의적 방향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 사회적 질서를 안정화하고 자기 파괴적 힘을 약화할 것이다. 독일 복지국가는 지속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있지만,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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