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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무너진 정치, 망가지는 '밖'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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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무너진 정치, 망가지는 '밖'의 정치 [한반도 브리핑] 北 김정은, 박근혜 나가기만 기다린다?
우리는 흔히 정치를 '안'의 정치(국내 정치)와 '밖'의 정치(대외 정치)로 나눠서 생각한다. 그리고 둘 다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때로는 '밖'의 정치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대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가 자신과 국민의 생존과 안녕, 번영, 위신의 제고를 위해 국제 사회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 소프트 파워 등 각종 국력을 지혜롭게 행사하여 나라와 국민을 구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안'의 정치다. 내부 정치가 잘돼야 국력이 쌓이고 또 국력이 있어야 나라도, 국민도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의 정치는 '안'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밖' 정치를 보면, 대표적으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가 무너졌다. 남북 관계는 더 이상 어떤 새로운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 있으며, 한일 관계는 일본으로부터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우리가 갖고 있는 외교 자산을 하나씩 잃어가고만 있는 모습이다. 한미 관계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심각하게 터져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우선 남북 관계를 보면,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한미 양국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정책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며, 북한도 한미 양국을 마찬가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한미 양국이 소위 '진정성'을 갖고 대화와 협상에 나온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한-미-일 3국과 관계가 끊어져 이들로부터 오는 여러 요구와 압력이 없어진 현재의 상황을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핵과 미사일로 국제 정치판을 강력히 흔들어 자신들이 핵 보유국과 미사일 강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한 후에, 그 방향에서 국제 정치판을 안정화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은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질적으로 임기 제한이 없는 김정은이 느끼는 '시간'의 개념은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미 양국의 지도자들이 갖는 개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과 그의 가계를 공격하는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날리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막지 않으면서, 낮은 수위의 소위 '작은 통일'에 관련된 여러 제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금처럼 '상대방이 있는' 북한과 관계를 '상대방이 없는' 관계로 취급한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대북 전단 날리기 허용이 상징하듯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또 그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 즉 지도자 차원의 높은 수위에서 남북 관계가 막히면, 낮은 차원에서의 '작은 통일' 관련 제안들이 의미를 갖기 힘들다.

한일 관계도 참담한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관계에서 역사교과서 개정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본의 근대 산업 시설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조선인 강제 노역 표기 문제에서도 뒤통수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군함도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이 강제 노동을 했던 해저 탄광이 있으며 1974년 폐광돼 현재는 무인도다. ⓒ연합뉴스

물론 대일 외교의 경우 우리 정부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같은 편향된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자와 소위 '정상 국가'를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나 그동안 '상대방이 있는' 관계인 한일 관계에 대해 마치 '상대방이 없는' 관계인 것처럼 취급해온 박근혜 정부의 비상식적인 외교 정책으로 우리는 여기서도 비싼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한편, 동맹국들을 동원하여 중국에 대항하는 군사 안보·통상 체계를 만들어내려는 미국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들의 군사적, 물질적 자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미국에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하다. 더구나 한미 관계에는 한국 정부가 미·중 양국 간 균형 외교 정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감을 비롯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용인,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정책과 한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불만,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계획, 미국의 오산기지 실험실에 탄저균 반입과 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문제 등 다양한 시한폭탄들이 있다. 이것들은 지금은 박근혜 정부의 한미 동맹 협력 강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모두 폭발적인 이슈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등 '밖'의 정치가 무너졌는가? 답은 간단하다. '안'의 정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안이든 밖이든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이 무너지면, 즉 지도자에서부터 주변 핵심참모들, 핵심 국가기관 사이에서 공유되어야 할 핵심 가치와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가 무너지면, '안'의 정치가 우선적으로 무너지고 '밖'의 정치도 자연히 무너지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이며, 일본은 또 무엇인가?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며,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다중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북한은 상호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 화해, 평화 정착, 통일을 이뤄나가야 할 파트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함께 협력하면서 살아가야 할 가장 근거리에 있는 이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모든 가치와 목표가 청와대와 정부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무너졌다.

그동안 국정원이 '5163부대'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까지 모두 도청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이탈리아 보안업체에서 구입하여 선거 때마다, 또 새로운 스마트폰 기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은 맞지만, 연구용으로 갖고 있었고 국민들을 상대로 해킹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현 국면은 정부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상대로 해킹과 사찰행위를 하면서 그 동안 뼈대만 겨우 남은 한국의 민주 정치 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팎을 따질 것도 없이 국가와 민주정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국정원의 대국민 해킹 사찰 사태를 보면서 지도자든 국민이든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는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상과 가치, 철학이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정부의 정체성과 이익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바탕 위에서 '안'의 정치가 바로 서고, 그에 따라 '밖'의 정치 또한 바로 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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