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 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소개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민음사, 황금가지, 리더스북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든 출판계의 신화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를 선정해 책의 성공 원인과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이번에는 문학 작품 두 권을 다뤘습니다. 휴양지에서도 ‘오베 열풍’을 일으킨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베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펴냄)가 첫 번째 책입니다. 스웨덴의 평범한 블로거였던 저자가 쓴 첫 책이 5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 영화로도 나옵니다.
또 다른 책은 <황금방울새>(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펴냄) 입니다. 기념비적인 데뷔작 <비밀의 계절>(이윤기 옮기, 은행나무 펴냄)로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도나 타트가 11년 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도나 타트는 2014년 퓰리처상을 가져갔습니다.
두 책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는 데 더해, 우리는 이 자리에서 교훈도 얻고자 합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소설은 베스트셀러 30위 안에 단 한 편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독자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독자에게 좋은 책을 알릴 방법은 없을까요? 이제부터 짚어 봅니다!
문학의 본령은 '상실로부터 일어서기'
장은수 : 첫 대담이 나간 후 페이스북 반응을 살펴보니 기대보다 훨씬 많은 분께서 우리 이야기를 공유해주셨더군요. 우리의 대담이 개별 출판사들에 도움이 되고, 독자에게도 좋은 책을 알릴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인문과 실용 사이의 작품을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문학의 계절에 맞춰 두 편의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와 <황금방울새>입니다. 재미있게 보셨나요?
이홍 : 모처럼 흥미로운 문학 작품을 접할 기회였습니다. 특히 두 소설의 스타일이 아주 달라서, 읽는 동안 느끼는 감흥과 긴장이 색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이토록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거의 같은 시기에 읽었던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소설의 특별한 공통 요소도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오베라는 남자>에서는 부인의 죽음,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죽음이 모티프가 됩니다. <황금방울새>도 어머니의 죽음을 딛고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성격의 소설이지만, 작품 속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을 견인하는 강력한 인자는 죽음인 셈이지요.
죽음에 따른 상실과 고독, 그로 인한 관계의 꼬임과 파행, 주저앉기와 일어서기는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오래도록 많은 문학 작품의 탄생을 이끈 탯줄이 되기도 했지요.
장은수 : 두 작품은 문학의 기본 중 하나인 '상실로부터 일어서기'에 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하셨듯이, 두 소설의 답은 매력적입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아내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려 했던 한 남자가 살아갈 이유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황금방울새> 역시 테러의 현장에서 어머니를 잃고, 명화 <황금방울새>를 우연히 손에 쥐게 되면서 시작되는 한 소년의 뒤틀린 운명이 스릴러 구조에 얹혀 실감 나게 묘사됩니다.
두 소설에서 아내와 어머니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의미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 중심이 있어야 풍요롭지만, 이를 잃고 나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두 소설은 상실로부터 나아갈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두 소설이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두 작품은 스타일이 다릅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사건 중심적입니다. 핵심을 짚는 사건들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읽다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느낌이 듭니다. 포털 사이트 등에서 최근 시도되는, 소녀 취향의 아름다운 삽화와 함께 읽는 에세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야기마다 반드시 교훈을 주죠. 독자가 좋아하는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 상담까지 받는 기분이 듭니다.
반면 <황금방울새>는 요즘 미국 소설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인생의 아주 사소한 장면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끈질김이 빛나는 소설입니다. 강박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냥 두면 망각의 강물 속으로 녹아 사라질 것 같은 삶의 세부들, 그 세부들에서 의미화되어 반짝거리는 밀도 높은 감성이 읽는 사람들을 빨아들입니다. 레벨이 높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운명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기억의 힘에 따라 천천히 전진합니다. 처음엔 이야기에 빠져들기 어렵지만, 읽어나갈수록 이야기의 매력이 늘어나면서 한 남자의 생을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는 철학적 작품입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이르면 미술사를 공부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미술이 삶의 한순간을 화폭에 붙잡아 놓음으로써 불멸을 갈구하듯, 소설 역시 인류의 기억을 통해 한 사람의 사소한 인생을 불멸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삶이란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볼 만한 것이구나, 이런 느낌과 함께 깊게 감동했습니다.
이홍 : <오베라는 남자>가 왜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이유를 고민해봤습니다. 예전에 나온 <출판 천재 간키 하루오>(간키 하루오 지음, 문연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에는 베스트셀러의 열 가지 조건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이 책의 분석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문장이 독자의 언어여야 한다는 겁니다. 둘째로 예술보다 도덕성을 중시해야 합니다. 독자는 등장인물 삶의 방식을 자신의 생활에 견주어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삶’이라는 문제를 근저에 깔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셋째는 세상이 불합리할수록 독자는 불의를 증오하며, 부정을 바로잡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정의를 추구하는 심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베라는 남자>는 이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니다. 그리고 간키 하루오의 책에 등장하지 않은 한 가지 요소를 더하자면 '캐릭터'입니다. 이 책은 근본적으로 20대 전후 독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이 흥미를 느낄 캐릭터들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나이가 50대 후반인데 말입니다.
교보문고가 제공한 데이터가 이를 입증합니다. 20~30대 구매율이 가장 높게 나왔고 40대도 괜찮습니다. 젊은 층의 언어, 즉 독자의 언어를 가장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책에 사용된 문장이 특별히 문학적이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책의 구성도 단락별로 끊어 읽기 편하도록, 블로그 연재를 보는 느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인터뷰에서 '오베'가 블로그에 본격 연재된 글이 아니라고 했더군요.
<황금방울새>는 베스트셀러의 조건 중에서 '독자의 심리와 감정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한 책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닙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기존 독자가 아니라면 흔쾌히 접근하기에는 장벽이 많아요.
사실 저는 이 책을 덮으면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평범한 독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반전에 대한 기대, 강한 잔상이 남는 결말, <황금방울새>라는 작품의 존재와 관련된 미스터리의 해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거든요. 물론 10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인데도 독자의 지적 기대감, 감정의 소용돌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힘은 굉장히 강합니다.
오베라는 남자, 우리가 원한 남자
장은수 : 이제 본격적으로 <오베라는 남자>의 성공 요인을 이야기해보죠. 앞서 언급이 됐습니다만, 저는 무엇보다 캐릭터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베는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펴냄)의 주인공과 비슷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지만, 마음은 따뜻합니다. 두 인물 모두 자본주의적 질서에 완강한 거부감을 품고, 타협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죠. 하지만 고집불통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 덕분에 두 인물 모두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인간미를 풍깁니다. 환상이지만 매력적이죠.
현대 소설은 캐릭터를 무의미한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개성적인 인물이 현실에 있기는 힘드니까요.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소설이란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라는 말도 있듯이, 이 세상 어디쯤엔가는 있을 법한 매력적 주인공이 패배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밀어붙일 때 독자는 감동하죠. 저는 솔직히 이 책을 읽다 조금 울었어요. (웃음)
이홍 : 저도 울었습니다. (웃음)
스웨덴이 북유럽에 속하잖아요? 오베는 북유럽 자본주의 모델에서 등장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닐까요?
오베는 유별나게 사브(SAAB)를 고집합니다. 보통 소비자가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성능이나 디자인 따위는 안중에 없지요. 자기 나라 차라서 좋아하는, 보수의 전형인 애국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집요하게 관공서에 민원을 넣고, 운전 금지 구역에 자동차는 절대 못 들어온다고 고함을 지릅니다.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거나 합리적인 질서가 존중되지 않는 걸 참지 못합니다. 막무가내 고집불통 영감이라기보다 원칙론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반공주의자나 '꼴통'을 생각하지만, 원래 보수주의자의 상징은 명예와 긍지, 도덕심, 애국심입니다. 오베는 이러한 가치를 모두 지닌 인물입니다. 독자에게 이런 오베의 모습은 신뢰와 믿음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이런 보수주의자를 본 적이 없으니까요.
대중의 정치적 지지 성향을 떠나 심정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주의자입니다. 보수주의자가 도덕적일 때 가장 믿음직하지요. 이렇게 단단한 사람이 부모의 죽음, 부인의 죽음으로 인해 겪는 상실감에 독자는 무의식적인 동질 의식을 갖게 됩니다. 연약하면서도 믿음직한 그를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거지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야기 아닌가요?
장은수 : 동의합니다. 그에 더해서 오베는 독자가 주인공에게서 얼핏 기대하기 힘든 것들을 다 끌어안습니다. 컴퓨터를 거부하지만 아이패드를 사고,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지만 결국 집에서 쫓겨난 게이 소년을 구해 주고, 옆집으로 새로 이사 온 아랍 이민자에게 감화되지요.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낯선 가치를 끌어안는 포용력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오베’라는 사람을 통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의 존재를 끌어안아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스웨덴 사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장르상 제너럴 픽션(통상 '일반 문학' 혹은 '대중 문학'으로 번역한다. 특히 본격 문학 작품이 아닌 장르 문학에 친숙한 독자를 겨냥해서 잘 읽히는 스토리텔링을 내세운 문학 작품을 통칭한다.)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순문학도 아닌 무엇인가입니다. 그냥 이야기 소설이라고 부르면 딱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오쿠다 히데오, 파울로 코엘류 등 외국의 제너럴 픽션 작가가 최근 한국에서 계속 성공하는 이유에 다른 건 없습니다. (제너럴 픽션이 선사하는) 현대 소설이 잃어버린 이야기의 재미,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인간적 감동에 한국 독자가 끌리는 거지요.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후, 인간다움을 확인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의 풍경을 그려내는 이야기를 한국 현대 소설에서는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있다면 공지영,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정도가 아닐까요. 많은 독자가 좋아하는, 그 비어 있는 공간을 외국 작품이 해소해주는 거지요.
이홍 : <오베라는 남자>의 성공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하신 <남쪽으로 튀어>의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는 한마디로 체제 파괴적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하고 현실을 부정하지요. 그래서 후련했습니다. 맘껏 부정해주었으니까요. 지난 시대 대중이 원하던 캐릭터였습니다. 물론 이런 캐릭터의 유효성이 지금 소멸한 건 아닙니다.
아무튼, 오베는 다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아이패드 잘 쓰는 노인, 마을을 바꾸자고 외치고 다니는 노인을 원할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오베의 인기는 우리 사회의 대중, 특히 이 책의 주요 독자인 젊은이들이 혁명적인 캐릭터보다 조금 안정적이지만 따뜻하고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인물을 원한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장은수: 전 세계적으로 삶의 안정성이 파괴된 시대이다 보니, 안정된 삶에 대한 희구가 반영된 셈이군요.
<오베라는 남자>의 판매율도 들여다봅시다. 이 책은 5주차가 되어서야 목표치에 이르렀습니다. 10주 동안 꾸준히 판매량을 늘렸습니다. 요즘처럼 책이 빨리 소진되고, 정점에 오르면 쉽게 사라져버리는 시대에 놀라운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12만 부 정도 팔렸다는데, 출판사의 끈질긴 마케팅과 독자의 입소문으로 이만큼 올라왔습니다.
네이버 뉴스에서 검색해 보니, 현재까지 <오베라는 남자>는 271건이나 보도되었습니다. 마케팅 초기에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와 협력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까칠남 오베'와 '인기 블로거 소설'이라는 마케팅 콘셉트도 잘 잡혀 있습니다. 여름에는 역시 소설이라는 기대감이 있고, 6월 초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유일한 소설이라는 점이 이후 시장을 독점한 주요 이유라고 봅니다. 신경숙 사태 이후, 한국문학이 더욱 위축되면서 경쟁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베라는 남자>의 2차 마케팅 방법은 작가입니다. 지금 잠재 독자가 쌓여 있으므로 작가를 초청해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읽을 이유를 보충해 주면 판매량 그래프가 가팔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다산북스 :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초청하면 작가가 언제든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내년 3월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 때문에 초청 시기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이홍 :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압니다. 저는 작가 초청 시기를 다음 작품 발표 때로 잡는 게 좋으리라고 봅니다.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알릴 기회가 아닐까요?
<오베라는 남자>의 판매 그래프는 굉장히 이상적입니다. 20~40대가 전체 문학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54.9%인데 <오베라는 남자>는 60%를 넘습니다. 핵심 독자층이 두껍고, 20대에서 50대까지 분포도 좋습니다. 확장성이 좋다는 거죠.
<황금방울새>, 순문학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장은수 : 이제 <황금방울새> 이야기를 해 보죠. 이 작품의 매력은 작가와 소재(소재를 통해 표현되는 주제) 두 가지라고 봅니다. 순문학을 판매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작가입니다. 작가 이름이 절반 이상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도나 타트는 10년에 한 편 정도 작품을 쓰는 작가인데, 완성도가 매우 높아서 작품을 낼 때마다 세계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서양의 정신사, 예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작가에 대한 신뢰를 높여줍니다.
대학에 다닐 때 이 작가의 첫 작품인 <비밀의 계절>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소설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죠. 이 소설 역시 <황금방울새>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평범했던 한 사람의 운명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그 사건 이후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지 않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끔찍한 무게를 견뎌내지요. 사실 인간의 삶이란 본래 이런 겁니다.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상사가 발령받아 오거나, 지하철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우연한 사건만으로도 인생은 180도로 달라지지요. 그 우연의 의미, 그 우연이 일그러뜨린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바로 순문학의 매력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나 타트는 순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독자가 믿고 살 만합니다.
주인공의 삶을 통해 오늘날 세계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는 거지요. <황금방울새>에서 작가는 지속적으로 예술 작품, 즉 영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어찌 보면 테러의 결과로 죽은 어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을 우연히 사고 현장에서 들고 나온 <황금방울새>라는 그림의 운명과 겹쳐서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이 덧없는 세계에서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끝없이 던집니다. 빠르게 읽히는 작품은 절대 아니지만, 읽으면서 삶에 대한 눈이 조금은 밝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은 '그림 한 장이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 하나만으로 이렇게 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스릴러 구조에 인생에 대한 깊은 탐구가 얹혀 있습니다. '독자 너희의 관심은 미스터리에 있겠지만, 나는 인생을 보여 주련다'라고 작가가 넌지시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웃음)
이홍 : 이 자리는 고담준론을 전재하는 문학 평론의 자리는 아니니까요. (웃음) 목적에 맞게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한 번 찾아봅시다.
김빠지는 소리가 되겠지만 저는 <황금방울새>가 2015년을 장식할 대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마무리 결정타가 아쉽습니다. 힘이 다소 부칩니다. 작가의 의도가 있으니 이를 나쁜 장치나 결말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상업적 배려의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결말이 아닙니다.
사실 다소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 오면서도 저자가 작품 곳곳에 배치한 장치적 배려는 완독률 90% 이상을 가능하게 한 힘이었는데, 그래서 결말의 아쉬움을 거듭 제기하게 됩니다.
장은수 : <황금방울새>를 더 많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 책은 순문학입니다. 순문학은 <오베라는 남자>와 같은 소설과 마케팅 전략이 달라야 합니다. 독자 친화적 대중 문학은 확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순문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자 확장성에서 한계가 뚜렷합니다.
이홍 : 그래서 출판사에 여쭙고 싶어요. 퓰리처상 수상작이고, 작가의 명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출판을 결정했다는 출판사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틀림없이 <황금방울새>를 내기 전에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당장 이야기되는 힘이 떨어지는 결말에 대한 지적이 적잖은 독자에게서도 나왔습니다.
은행나무 : 저희는 결말을 좋게 보았습니다. 애초에 작가가 뉴욕과 암스테르담이 가진 '황량함'을 키워드로 잡고, 이를 어떻게 소설화할까를 고민하다 그 매개체로 그림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끝날 때, 독자는 이 책이 주는 배신을 고맙게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장은수 : 교보문고 제공 데이터를 보죠. <황금방울새>는 출간 2주차에 주간 판매 목표량의 80%를 달성했습니다. 이후 큰 등락 없이 100%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간 첫 주부터 언론이 관심을 둬 주었고, 작가를 알고 있던 순문학 독자들이 빠른 속도로 작품을 구매했습니다. 순문학 마케팅의 전형적 결과입니다. 1차 마케팅은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빛났던 게 '완독률 98.5%'라는 홍보 카피입니다.
이홍 : 치명적으로 성공한 카피입니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저 카피를 만든 사람에게 보너스 주셔야 합니다. (웃음)
장은수 : 명문구죠. 조금 이르지만 '올해의 카피상' 감입니다. (웃음) 은행나무에서 <황금방울새>의 마케팅에 이 문구를 빌린 것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라고 봅니다. 이 완독률 수치는 미국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제공하는 전자책 리더 킨들을 통해서 측정한 '호킹 지수'입니다. 미국 출판계가 최근 몰두하는 데이터 마케팅의 한 결과죠.
<황금방울새> 홍보에 사용된 완독률은 그 결과가 반영된 자료입니다. 저 카피 한 줄로써 언론을 설득할 수 있었고, 독자의 흥미도 확 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황금방울새>의 약진은 초기 홍보 전략의 승리로 보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판매를 늘리기 위해 순문학 독자에서 일반 독자로 확장할 수 있는 2차 마케팅 수단을 찾아야 합니다. 순문학은 장르 특성상, 사회적 공론을 일으켜서 판매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어떻게 학교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한테 필독서로 읽힐 것인지, 각종 매체에서 활동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책을 읽고 칼럼 등을 쓰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아직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교사, 사서 등 핵심독자들에게 어떻게 이 책을 알릴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을 강제로 읽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문학 서적은 의무로 읽힐 방법을 찾는 게 유일한 길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솔직히 말해 얼마나 되겠어요. 학교 수업 과제 등으로 읽는 거죠. (웃음)
이홍 : <황금방울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나이는 20대입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류(同類)의식이 작동한다면 젊은 층에 호소해야 할 작품인데 해당 연령대 독자층이 얇습니다. 20~40대 비중이 40% 수준입니다. 턱없이 낮은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소설 작품의 나이 분포와는 반대입니다. 50%가 넘어야 평균이거든요.
소설 시장의 주 대상에 대한 공략이 부진했거나, 혹은 좋게 이야기하면 이 연령대의 시장이 남아있는 거겠지요. 만약 아직 남아있다면 확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전 다소 비관적입니다. 어느 정도 실적은 보이겠지만 동력은 약해 보입니다. 출판사도 기획 단계에서 이 점은 인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은수 : 소설 전체 평균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8.7%인데 <황금방울새>는 12.3%에 불과합니다. 이 연령대가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이메일, 소셜 계정 등을 통해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그 제품을 홍보하도록 만드는 기법)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 아쉬운 수치죠.
문제는 40대와 50대로 독자층이 치우쳐 있다는 겁니다. 비중이 합쳐서 49.2%에 달합니다. 거의 두 명 중 한 명이네요. 젊었을 때 문학을 읽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그 시절 유명 작가가 쓴 신작을 읽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순문학 전체가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작가가 좀처럼 시장에 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노쇠 현상이 심한 거죠. <황금방울새>의 숙제는 이제 40대와 50대가 읽고 20대에게 추천하게 하는 방아쇠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될 겁니다.
이홍 : <황금방울새>의 이야기 구조 특성상 2차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약합니다. 영화 정도가 가능할까요? 하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는 아닐 테고요, 문제작 정도는 연출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삶이 우울한데, 근본적으로 이 주인공의 상황 돌파력이 시원하지 못해요. 한국 독자가 열광할 DNA 보유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홍보하기도, 캐릭터를 홍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황금방울새>도 모티프일 뿐이지요. 2차 마케팅이라고 한다면 이야기의 힘에서 나오는 파생력이나 주변 요소의 '주제화'가 필수적인데, 모두 아쉽습니다. 다만 이런 요소가 약하다고 해서 작품 자체의 가치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은수 : 이 때문에 <황금방울새>는 마케팅을 서점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리라고 봅니다. 시장에 새로운 독자들이 유입되도록 하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작품은 현재 순문학 장르에서는 판매량이 가장 높습니다.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최세희 옮김, 민음사 펴냄) 정도를 제외하면, 이 시장에서 이 책을 넘어설 작품은 아직은 나올 조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순문학 독자가 올해 딱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라는 말을 어떻게 퍼뜨릴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지한 독자는 항상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김연수, 정여울 등과 같은 순문학의 소셜 인플루엔서(사회 연결망 서비스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가 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독자에게 샘플 북을 나누어주는 것보다,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책 자체를 과감하게 증정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문학도 마케팅이다
<황금방울새>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제 개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문학 마케팅'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오베라는 남자>의 초기 마케팅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가제본을 미리 뽑아 서점 MD(머천다이저 : 책의 구매, 진열, 판매를 결정하는 직책)들에게 미리 돌려서 우선 반응을 얻고, 독자에게도 적극적으로 책을 알렸습니다. 감동이 있는 이야기이니까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을수록 입소문도 점점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해운대, 대천 등의 피서지에서 책을 나누어주고 인증사진을 얻어낸 공격적 시도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20대와 30대가 모이는 장소에서 책을 홍보한 건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이런 직접 마케팅과 함께 전자책을 활용한 문학 마케팅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령, 독자 1000명을 선정해서 전자책으로 미리 초판 전문을 읽도록 만듭니다. 독자는 읽은 소감을 소셜 미디어 등에서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냅니다. 미국은 마케팅을 출간 전에 주로 수행하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언론 기자들한테도 전자책으로 책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자책 파일 안에는 추적 엔진을 심어,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는가에 대한 데이터를 출판사가 수집합니다. 왜 특정 페이지에서 독자가 읽기를 멈추는지, 왜 특정 페이지가 되면 읽는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지, 어떤 구절에 주로 밑줄을 그었고 어떤 구절을 공유하는지 등 각종 데이터를 모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마케팅과 편집에서 모두 활용합니다. 가령, 어떤 부분에 가서 독자들이 읽기를 포기한다면, 편집자들이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고를 자세히 검토해서 수정하고, 어떤 부분이 많이 공유되었다면 그 의미를 분석해서 마케팅에 반영하는 겁니다. <황금방울새>의 완독률 마케팅이 바로 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오베라는 남자>의 마케팅은 훌륭했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혀 독자 데이터에 기반을 두지 않았고, 이를 수집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독자 움직임 예측치를 갖고 사전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문학 마케팅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독자 데이터가 부족한 한국 출판 시장에서 당장은 수행하기 어렵죠. 미국 사례에서 우리 출판계가 더 많은 점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홍 : 단순한 책의 내용 전달을 넘어선 콘텐츠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책이 1차 정보라면, 2차 정보를 독자에게 줘야 합니다. 최근 샘플 북과 관련된 마케팅 사례가 기사화되었는데, 필요한 시도였지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샘플 북을 모조리 요약본 형태로 만들었더군요. 독자가 원하는 게 단순한 맛보기였을까요? 단순 요약본이 아닌, 새로운 정보 전달 도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보도 자료를 만들 때도 언론이 흥미를 느낄 만한 책에 없는 사실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은 <황금방울새>가 잘했습니다. 출판사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명화를 소개했더군요. 진지하게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줬더군요. 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어떨까요. 특히나 이처럼 진중한 작품이라면, 시각적이거나 작품에 없는 자료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독자 확산의 측면에서도 단순 문학 독자가 아닌,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요소도 되지요. 책은 읽어야 하지만 샘플 북은 '보는 재미'가 있다. 나쁜 생각인가요?
장은수 : 순문학의 경우, 기존에는 문예지를 통한 서평 마케팅이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더는 통하지 않습니다. 문예지, 신문 문예면, 독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다시 미국 사례를 보죠. 자료에 따르면, 문학의 마케팅 수단 중 독자가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은 작가 홈페이지입니다. 독자는 작가와 직접 소통하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작가의 소통 활동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문학 마케팅의 핵심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문학 마케팅을 위해 필요한 콘텐츠를 편집해서 생산하는 '콘텐츠 편집'의 개념입니다. 미국 출판사들은 보통 책 자체를 만드는 편집자뿐만이 아니라 작가나 독자의 활동을 도와주는 마케터나 에디터를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랜덤하우스 출판사는 '브라이틀리' (☞바로 가기 : ) 라는 도서추천 사이트를 새로 열었습니다. '부모의 평생 독서 활동을 돕겠다'는 취지의 사이트입니다. 저는 랜덤하우스 책만 소개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추천 목록에 들어가면, 다른 출판사 책들도 과감하게 홍보해 주고 있습니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찾고 싶은 사이트를 만들고, 철저하게 독자를 위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거지요.
한국에서는 마케팅 하면 주로 서점을 중심으로 하는 외판 마케팅을 생각합니다. 아니면 매체를 상대로 하는 홍보를 생각하지요. 이런 정책으로는 책을 알리는 데 한계가 뚜렷합니다. 새로운 마케팅 환경에 맞추려면 마케팅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합니다. 한국의 문학 출판사도 콘텐츠를 활용한 다층적 마케팅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 때입니다.
이홍 : 독자와 언론의 주목도를 높일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장은수 대표께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요. 은행나무 출판사에서는 <황금방울새> 출간을 결정할 당시 '올해의 퓰리처상 수상작과 하퍼 리의 작품이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대작으로서 주목도가 분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하셨습니다.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국내외 작가의 대작이 같은 시기에 나와서 문학판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대체로 '우리 책만 독점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여러 책이 동시에 나와야 여론이 주목하고 시장이 커집니다.
'여름 휴가철 미스터리 대전'과 같은 식이 되어야 언론도 기사를 쓰지요. 독자들이 웅성거리면서 서로 책을 나눠 읽을 수 있어야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시장이 작다고 불평인데, 작은 시장의 1등도 중요하지만, 관심을 끌어와 시장 자체의 판을 키우는 대범함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은행나무 : 저희는 절묘한 시점에 책이 나왔다고 봅니다. 한 주만 일찍, 한 주만 늦게 나왔더라도 반응이 달라졌을 겁니다. <황금방울새> 뒤로 비슷한 대작이 쭉쭉 나왔습니다. 저희가 조금 앞선 효과를 누린 셈입니다.
장은수 : 영화계에서는 보통 그런 식으로 판 자체를 키웁니다. 영화인들은 계속 만났다 헤어지면서 작업하니까, 출판인보다 연대감이 강해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에서 같은 시기에 대작을 쏟아내면서 판을 키우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기사 몇 줄 때문에 독자의 관심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기회를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책의 사전 마케팅이 사후 마케팅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책 소개 기사가 책이 나오기 6개월 전부터 나옵니다. 책이 실제로 출간될 무렵에는 '승자는 누구냐'는 보도가 추가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 전체 시장이 커집니다. 이번 주에 새 책이 나와 시선을 잠시 끌다가, 다음 주에 다른 책이 나오면 그 책으로 대체되는 방식으로는 책을 충분히 알리기 어렵습니다.
이홍 : 사실 시장을 이해하는 문제이고 발매 시기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여서 정답을 따질 사안은 아닙니다. 다만 독점적으로 신문의 토요판 북 리뷰를 장악하고, 이를 받아서 월요일 신문 광고 올리고 인터넷 서점 대문에 거는 현재의 방식만이 유효하냐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장악한 놈만 살아남는 승자 독식 방식인데, 저는 모여서 판을 같이 키우자는 쪽입니다. 그리고 사전에 지속해서 마케팅하고, 이를 통해 대기수요 독자를 불러 모으는 방식이 바르다는 입장이고요.
결국, 앞으로의 출판 마케팅은 저자가 특정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계속 사전 교류를 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주에는 이 책이 관심을 다 받았다'와 같은 영웅담은 사라지게 될 겁니다.
한국 문학, 구원책은 무엇일까
장은수 : 이제 이번 대담에서 추가하고 싶은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죠. 요즈음 한국 문학이 버림받고 있습니다. 문학 베스트셀러에서 한국 문학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두 책의 성공 사례를 통해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얘기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 두 책은 올 상반기 문학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러나 전체 도서 시장에서 문학의 비중은 과거보다 무척 줄어들었습니다.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 문학 독자가 줄면, 전체 독자도 결국에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장기 침체 현상은 문학에 전면 개혁이 필요한 시기라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홍 : 서사 구조는 가장 오래된, 가장 중요한 형식입니다. 이 형식을 잘 담아준 게 책이었는데 요즈음은 스크린 등의 다른 매체가 이를 대체하고 있지요. <오베라는 남자>가 잘 팔린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책을 보면 모든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지죠. 아마 영화가 만들어져도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요즘 독자는 '읽되,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을 원하는 것 아닐까요. 상상력을 방해한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만,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장르 소설은 대체로 공감각적 이미지를 많이 끌어오죠.
우리나라 작품이 그 정도로 안 읽히는 게 아닙니다. 소위 문단 권력의 주목은 못 받지만, 인터넷 소설가들을 보면, 새로운 독자들이 요구하는 묘사나 언어에 충실합니다. 한국 문학이 죽었다고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그들을 정당한 구조 안에서 대접받게 해야 합니다.
장은수 : 사실 작품의 질보다 출판의 시각 문제가 큽니다. 비즈니스로 출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문학 쪽에서 특히 약합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인터넷 소설에서도 어떤 장을 만들 수 있고, 장르 소설이나 스크린셀러(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주목받는 원작)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전체 콘텐츠 플랫폼을 아우르는, 일종의 스토리 비즈니스의 장으로서 문학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쪽의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커지는 시장을 버리고 기존의 경쟁 시장, 즉 순문학에 더 많은 자원을 쏟아 부으려 하는 데 있습니다.
그 결과, 작가와 편집자 모두 문학 내부의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차별화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세분화가 지나치게 진행되면,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정작 그 작품을 읽어줄 독자가 없는 경우가 빈번해집니다. 대부분 문학 출판 모델이 이런 식입니다. 극도로 좁은 경쟁 시장에 더 많은 작품을 밀어 넣으려고 계속해서 작품마다 특징을 개발하는 겁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작은 차이를 가진 작가를 발굴하는 비용이면,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인 추리, 스릴러, 로맨스 같은 장르 시장을 훨씬 탄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문학 출판사 한 곳이 관리하는 작가의 숫자는 외국 문학을 포함해 거의 50배는 늘어났습니다. 전 세계 일급 작가들이 전부 대형 문학 출판사의 소속 작가처럼 되었습니다. 가만히 기다려도 잘 편집된 그들의 책이 계절마다 계속 쏟아집니다. 달리 말하면 이제 한국 문학 작가들은 쿤데라, 하퍼 리 등의 세계적 작가들과 무한경쟁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소한 차별화는 몰라도 독자의 머릿속에 각인될 정도의 결정적 차별화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이런 경쟁 구도에서 추리, 미스터리 장르를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최상급 작품이 이 장르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에 집중하는 순문학에서는 노벨 문학상 작가를 배출합니다. 산업적 균형 감각의 결과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 문학이 실패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균형을 잃은 문학 출판사 잘못입니다.
은행나무 : 추리나 판타지 시장이 바깥에서 보시는 것만큼 잘되는 곳이 아닙니다. (웃음)
장은수 : 대형 문학 출판사가 문예지를 운영하기 위해 한 해에 쓰는 돈만 수억 원입니다. 그 돈을 적절히 분배해 다른 장르에도 투자했다면 양쪽 시장이 모두 균형 있게 발전했을 겁니다. 그러지 않으니까, 문학성도 높지 않고 재미도 없는 애매한 작품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문학적 의미를 부여하느라 과도한 비평적 언어가 동원되어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까지 가버렸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독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독자가 옳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출판 시장 구조를 볼 때 이 시장에서 100만 부 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성적입니다.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공급자의 잘못이지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도그마에 빠지는 꼴이 됩니다.
우리 문학이 독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10년 전 작가, 20년 전 작가가 여전히 세대교체 되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바뀌었는데 작가는 그대로입니다. 이건 출판사가 새가슴인 탓입니다. 출판사가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장은수 : 동의합니다. 장르 문학이 안 팔린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최근 5년 동안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는 장르 문학이 상당수였습니다. 정유정과 같은 소수의 국내 작가를 제외하면, 외국 작품이 많을 뿐이죠.
순문학이 더 많이 팔렸으면 하는 편집자의 바람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도록 한 겁니다. (저도 그런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사상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비즈니스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하려면, 현실에 눈감아서는 안 되겠지요. 문학 시장에서 한국 문학이 잘 안 팔린다면, 우선 이야기 문학을 키우지 않은 출판사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합니다.
이홍 : <오베라는 남자>가 새 시장 발굴의 사례입니다. 이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이 책까지, 스웨덴 소설 붐이 생긴 느낌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웨덴 제너럴 픽션 독자가 짠하고 나타난 게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싶은 욕구는 있었는데, 그 욕구에 맞춰 출판사가 문을 열어준 것이지요. 다산북스는 처음부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성공을 염두에 두고 <오베라는 남자> 출판을 기획한 것인가요?
다산북스 :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스웨덴이 굉장히 낯설고, 작가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출판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캐릭터도 강합니다. 결국, 스웨덴 독자와 우리 독자의 접점이 있으리라고 봤습니다.
이홍 : 독자의 욕구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문열의 독자, 신경숙의 독자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나고 보니 스웨덴 소설 독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걸 주도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독자의 변화는 읽어야 합니다.
장은수 : 젊은 새 작가를 만들지 못하는 한, 좀처럼 한국 문학은 탈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문학 출판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소명감이 강한 은행나무에 박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소명 의식은 분명 건강합니다. 이를 더 넓은 시야로 확장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죠. (웃음)
예전에 출판사 황금가지가 판타지 소설 시장과 추리소설 시장도 키우지 않았습니까. 이런 과감한 시도는 자연스레 작가와 독자의 충성도를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 분야에서 황금가지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이유라고 봅니다. 일단 외부 문학 시장이 활성화되고 나면 순문학 역시 독자와 소통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할 것입니다. 이 전환의 시기에서 출판사 내 업무 분화가 좀 더 선진적으로 일어나고, 그 결과로 편집자는 시장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문학의 탈출구가 보일 겁니다.
이제 두 번째 대담도 끝났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볼까요?
이홍 : 두 책의 선전에 자극받아 더 재미있는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부디 한 권짜리 책을 정하도록 하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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