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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수준을 보여준다!…f(x)의 <4 W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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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수준을 보여준다!…f(x)의 <4 Walls> [화제의 음반] f(x), 트램폴린
f(x) [4 Walls] 7.5/10

에프엑스(f(x))는 에스엠(SM)의 걸 그룹 집단 중 정의하기 어려운 정체성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그 사이 7년이 지났고, 설리는 탈퇴했다. 얼핏 위기로 묘사될 수 있는 시기, f(x)의 네 번째 앨범 [포 월스(4 Walls)]는 SM이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고심한 해법을 담았다.

SM은 기존 f(x)의 콘셉트 중 '진보적 아이돌'로 세간에 회자될 여지를 담은 추상미를 그룹 이미지의 전면에 내세워 공백과 익숙해짐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다. 화제가 된 첫 싱글 '포 월스(4 Walls)'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변화가 바로 드러난다. 라디오로는 보컬의 개성을 살리기 어려운 아이돌 팝의 특성상, 대개 뮤직비디오는 개별 아이돌의 매력을 대중에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그룹의 개별 멤버가 섹시한 옷을 입고 그간 열심히 익힌 춤을 추는 모습을 카메라는 집중 조명한다.

'4 Walls'는 보다 '할리우드적'이다. 구체화되지 않은 이미지의 파편을 화면에 흩뿌리고, 멤버들은 어딘가를 응시하는 구도가 이어진다. 여기서 대중은 7년이라는 시간을 성숙으로, 설리의 탈퇴를 변화로 인지하는 해석의 틀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실제 의미가 무엇인지(또는 과연 의미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f(x) [4 Walls] ⓒSM
사운드에서도 작은 변화, 아니 작지만 큰 변화가 감지된다. f(x)가 데뷔했을 당시 이들은 아이돌 팝의 차별적 존재로 각인되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콘셉트가 뚜렷한 아이돌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대비되어 이들은 한국 대중은 (당시로서는) 익숙지 않은 클럽 사운드를 중심으로 팝의 요소를 일부분만 가져다 썼다. 아이돌이 소화한 전자음악은 당시로서는 강렬한 차별화 요소였다.

7년이 지나고 신(scene)은 변했다. 한국 팝의 시장은 보다 커졌고, 아이돌의 수는 지나치게 많아졌다. 경쟁의 구도가 강화되어 단순한 차별화로는 더 이상 개성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졌다. 팬덤이 강하다면 최소한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f(x)는 상대적으로 기성 아이돌에 비해 주축이 되는 팬덤의 기세도 약한 편이다.

SM은 [4 Walls]에서 기존처럼 유행의 최전선에 선 전자음악 비트를 받아오는 한편, 보다 안정적인 댄스 팝 사운드의 지위를 강화하는 절충으로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기존의 개성 강한 콘셉트를 흐리더라도 보다 대중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4 Walls]는 여러 모로 그룹의 과도기적 앨범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앨범 전체에서 관습적인 아이돌 팝의 상투적 보컬과 이를 극복하려는 긴장 구도가 이어진다.

첫 곡 '4 Walls'부터 변화가 감지된다. 그룹의 보컬을 신비롭게 깔고, 사운드 효과는 점층된다. 일직선의 곡 진행에 새로운 혁신은 없다. 곡의 절정부인 코러스 대목으로 진입하기 전 늘어지는 긴장감은 전형적인 아이돌 팝의 스타일이다. 박력 있는 '데자 뷔(Deja Vu)'로 넘어가기 전 쉬어가는 느낌의 '글리터(Glitter)'는 변칙적인 멜로디 진행의 전반부를 지나 미국 주류 팝의 기운을 가진 코러스부로 나아간다. 이 곡에서도 과도기적 긴장감이 드러난다.

힘이 잔뜩 들어간 'Deja Vu', '파피(Papi)'는 당장 클럽에서 틀어도 부족함이 없는 테크노풍 하우스 트랙으로, 전형적인 f(x) 스타일에 가장 맞아 떨어진다. 전체적 기운은 통통 튀지만, 세부적으로는 성실한 효과음이 곡의 빈 곳을 메우고 엠버의 매끄러운 랩은 적재적소에서 주의를 환기한다. 매끄러운 보컬은 딱 듣기 편한 정도를 유지한다.

'X'는 듣는 재미가 가장 좋은 곡이다. 앨범에서는 가사 전달이 가장 좋은 곡이기도 하다. 아이돌 팝에서 흔히 들리는 습관, 즉 잠시 진행을 멈추고 보컬의 절창(?)에 집중하는 브리지나 뻔하게 솔을 베끼는 창법을 찾기 어렵다. "첨 봤던/날부터/상상은 셀 수 없이 했는데"라는 브리지에서 다시 코러스로 넘어가는 부분도 과하지 않은 정도로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코러스 부분은 세밀한 효과음의 변주로 익숙함을 덜어냈고, 귀를 잡아채는 리듬감이 번뜩인다.

'다이아몬드(Diamond)', '캐시 미 아웃(Cash Me Out)' 등은 상대적으로 아이돌 팝의 진부한 구성이 보다 명징하게 드러난다. 기분 좋게 곡에 집중하려는 순간 드러나는 아이돌식 보컬의 절정부는 이제 한국인이라면 너무도 익숙한 곡 구성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곡들에서도 적소에 치고 들어오는 랩, 매끄러운 코러스의 강조 등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4 Walls]는 이전 f(x)의 어떤 앨범보다 팝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앨범이다. 전체적인 곡의 수준이 고르게 높다. '케이-팝'의 수준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앨범으로 손색없다. 그러나 앨범 곳곳에서 느껴지는 원숙함과 과감함의 묘한 긴장관계 혹은 묘한 타협은 이 앨범이 f(x)의 과도기 작품임을 실감나게 한다. 다음 앨범은 어떤 콘셉트를 가지게 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트램폴린 [Marginal] 9/10

차효선의 1인 밴드로 시작한 트램폴린은 이제 차효선·김나은·정다영의 3인조가 되었다. 3인조 체제의 첫 앨범인 [마지널(Marginal)]은 이전 어떤 앨범보다 밴드 체제에 걸맞은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신시사이저의 지배력이 보다 약해진 대신, 기타와 베이스로 합류한 멤버들의 입김이 확실히 귀에 들어온다.

앨범은 하나의 덩어리로 들린다. '블랙 스타(Black Star)'는 낭만적 인트로로 시작해 차분한 기타가 따라붙고, 보컬 이펙트가 찬찬히 덧씌워진다. 이런 구성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데, 마치 비치 하우스(Beach House)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선무(Sunmoo)', '복서스 라이프(Boxer’s Life)', '폴리가미(Polygamy)', '리틀 버드(Little Bird)'로 이어지는 네 곡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만하며, 변화의 상징으로 인식할 만하다. 이전의 곡들과 같이 시작한 'Sunmoo'는 곧이어 베이스가 긴장감을 높이고 리듬은 어느새 댄서블하게 변화한다. 반복되는 스트로크를 따라가다 이어지는 'Boxer's Life'부터는 몽환, 댄스라는 단어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순간이 이어진다. 곡은 트랜스적이면서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절정부로 치닫는 곡은 좋은 리듬은 반복하고, 같은 구절은 점차 힘을 얻는 보컬을 따라 절정으로 상승한다. 주류 케이-팝에서는 결코 얻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가져오는 힘이 느껴진다.

신스의 차가운 질감과 따뜻한 정서가 묘하게 충돌하는 'Polygamy'는 기존 트램폴린의 곡 서사와 변화가 한데 어우러진 곡이다. 곡 후반부로 진입하면 곧바로 이전의 곡들처럼 트랜스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반복구간이 온 정신을 집중하게 만든다. 80년대 빈티지 신스 팝에 보다 가까운 'Little Bird'는 밴드 구조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순간, 브리지 부분에 들어 변화를 맞고 이어서 다시 전통적 구조로 돌아간다. 편안한 구성의 '매드 포 유(Mad for You)'는 곧바로 긴장감을 높이는 '머신스 아 휴먼(Machines Are Human)'으로 넘어가며 앨범이 끝난다. 제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영향력도 느껴진다.

앨범 프로듀서를 맡은 박민준(DJ 소울스케이프)의 영향력은 'Little Bird', '베터 댄 어 차일드, 레스 댄 어 맨(Better than a Child, Less than a Man)' 등의 빈티지한 질감이 두드러지는 곡에서 곧바로 느껴진다. 신스 팝 앨범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 이전 시대와 최근 조류가 함께 느껴진다. 트램폴린이 여태 낸 앨범 중 최고작이며, 올 한해 나온 모든 일렉트로닉 앨범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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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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