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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쌀 수입과 쌀값 안정의 이율배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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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밥쌀 수입과 쌀값 안정의 이율배반성 [작은것이 아름답다] 수입쌀이 온다·①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는 11월 14일 박근혜 정부의 농업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상경한 농민 2만여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농민이 행복한 새누리당(의) 진심'이라며 '우리 쌀을 반드시 지키겠다' '쌀값인상 17만 원을 21만 원대로' 등의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1일 쌀 시장은 전면 개방됐고, 쌀값(80Kg)은 15만 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올해는 대풍(大豊)입니다. 더욱이 쌀 관세화로 수입쌀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우리가 쌀을 수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대한민국은 콩과 옥수수 같은 GMO 곡식을 식용으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농지가 줄어들고 있어 수입한다고요? 농지를 공업용지/주택지로 바꿔 난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아몰랑'하고 있습니다. 이슈 '수입쌀이 온다'를 통해 하나하나 짚어보죠.

우리가 밥쌀을 수입할 필요가 없는 이유


지난해까지 우리나라는 해마다 쌀 의무수입 물량 30%를 반드시 밥쌀용으로 수입해야 했다. 밥쌀을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이 두 나라에 특혜를 준 것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밥쌀용 의무수입 비중이 폐지되었다. 밥쌀용이든 가공용이든 필요에 따라 그 용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농민들은 국내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하락하는 상황이므로 굳이 외국에서 밥쌀을 수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량 가공용으로 수입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정부는 몇 가지 이유를 대면서 밥쌀 수입을 강행했다. 7월 말에 밀어붙이듯 밥쌀 수입에 대한 입찰을 실시했고, 미국산과 중국산 밥쌀 3만 톤(t) 수입을 결정한 것이다.

정부는 밥쌀 수입과 관련해 초반에는 밥쌀에 대한 국내 수요가 있다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쌀 협상에서 513% 관세율을 확보하기 위해 밥쌀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최근에는 세계무역기구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규정을 내세워 밥쌀 수입을 하지 않는 것은 내국민대우 원칙과 국영무역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밥쌀 수입을 합리화하려는 정부의 근거를 위 세 가지 이유를 중심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 정부는 지난 7월 밀어붙이듯 미국산과 중국산 밥쌀 3만 톤 수입을 결정했다. 쌀값 폭락을 부추길 밥쌀 수입은 중단돼야 한다. 수입을 강행하면서 쌀값 안정을 내세우는 건 이율배반이다. ⓒ김기돈

정부의 근거 1. 밥쌀에 대한 국내 수요가 있어서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


밥쌀 수입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부 쪽 논리로 초반에 주로 이야기하다 최근엔 이런 식 주장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 주장의 요지는 수입산 밥쌀을 요구하는 국내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입산 밥쌀에 대한 수요 자체는 정부가 억지로 조작한 것이지, 소비자로부터 자연스럽게 마련된 수요가 아니다.

지난 2004년 쌀 재협상에서 세계무역기구 일반원칙에도 어긋나는 밥쌀 30% 의무수입 비중을 정부가 받아들여 해마다 일정량의 밥쌀을 의무 수입했고, 이것을 처분하기 위해 정부가 시중에 수입산 밥쌀을 풀었던 것이다. 수입산 밥쌀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극히 미미한 상황에서 수입산 밥쌀이 다 판매될 수 있도록 수입산과 국내산을 혼합해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2013년 이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혼합미 자체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혼합미는 마치 국내산인 것처럼 포장되어 시중에서 중저가 쌀로 팔렸고, 이것이 쌀값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국내 쌀 생산농민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조작된 수요를 근거로 수입산 밥쌀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정부의 정책 실패 책임을 쌀 생산농민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

정부의 근거 2. 쌀 협상에서 관세율 513%를 확보하려면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

이 주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쌀 협상에서 최종 관세율 513%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협상 상대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밥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말하는 협상 상대국은 우리나라에 밥쌀을 수출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 스스로 종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뒤집는 자가당착 주장이다. 왜냐하면 관세율 513%는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문에 명시된 계산 방식에 따라 적정하게 산정됐는지를 검증하는 것일 뿐이지 다른 사안과 연계해 주고받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 스스로 수차례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농민단체나 전문가들의 견해도 동일하다. 그런데도 513% 관세율을 확보하기 위해 밥쌀 수입 같은 사안에서 양보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정부가 말하는 것은 자신의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가당착 주장이다.

관세율을 최종 확정하는 협상이 쉽게 타결되지 않고 장기화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관세율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9월에 세계무역기구에 통보한 대로 513% 관세율이 계속 적용되기 때문이다. 즉, 513% 관세율을 확보하기 위해 밥쌀 수입을 양보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정부의 근거 3. 밥쌀을 수입하지 않고 전량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것은 내국민대우와 국영무역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밥쌀을 수입해야만 한다

쌀 시장이 관세화로 개방된 상황에서 쌀 수입은 세계무역기구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일반원칙과 규정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 주장처럼 의무수입 물량의 일부를 반드시 밥쌀용으로 수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무수입 물량을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것이 내국민대우 위반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해당 규정을 해석하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 쪽 전문가들은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것이 내국민대우 위반이라는 해석을 제시하고, 다른 전문가들은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더라도 내국민대우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느 해석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다. 이 사안에 대한 해석 권한은 세계무역기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유사한 사례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세계무역기구의 판결 선례도 없다.

결국 이 사안은 해석의 차이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 규정과 관련해 이런 해석의 차이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국가 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이러한 해석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는 분쟁해결 절차와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상대방 국가가 세계무역기구에 제소를 하고, 그에 따라 세계무역기구가 토론자를 구성해 사안을 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밥쌀 수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 있다. 첫째, 이러한 분쟁의 발생과 세계무역기구 토론단의 판정은 무척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일수록 제소를 하거나 혹은 제소를 당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 제소를 당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무조건 제소를 피하기 위해 굴욕 양보를 해 왔던 한국 통상관료들은 이러한 사실 자체를 농민이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통상 관련 분쟁을 당하면 대외적 국제무역에서 국가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우리 통상관료들의 주장은 현실과 정반대 주장이다. 분쟁이 많은 국가일수록 협상력이 높아지고, 분쟁을 두려워하는 국가일수록 국제 '호구' 취급을 당하는 것이 통상 관련 분쟁의 진실이다.

둘째, 밥쌀 수입 문제와 관련해 설사 제소를 당하고 분쟁 절차를 거쳐 최종 세계무역기구 판정에서 우리나라가 진다고 해도 손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계무역기구가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것이 내국민대우 위반이라고 판정하면, 그 뒤 가공용 말고도 밥쌀도 적정하게 섞어 수입하는 방식으로 개선조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 판정 이전에 벌어진 전량 가공용 수입에 대해 무슨 처벌을 받거나 배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밥쌀수입 중단을

지난 7월 말 정부는 미국산과 중국산 밥쌀 3만 톤 수입을 결정했다. 이것으로 올해 밥쌀 수입 문제가 끝난 것일까? 하지만 정부는 3만 톤에 그치지 않고, 밥쌀을 더 수입하려 시도할 것이다. 밥쌀 수입 문제는 하반기에도 뜨거운 화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하반기에 정부가 밥쌀을 추가로 수입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먼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첫째, 지금까지 논란은 의무수입 물량 가운데 밥쌀을 수입할 것인지 아니면 가공용으로만 수입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러나 7월 말 정부가 미국산 밥쌀 3만 톤을 이미 결정해 버렸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가 내세운 내국민대우와 국영무역 위반, 국내 수요 충당 같은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졌다. 전량 가공용으로만 수입하지 않고, 이미 밥쌀도 수입한 마당에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정부는 무슨 명목으로, 무엇을 근거로, 어떤 이유로 밥쌀 수입을 강행할 것인가?

둘째, 제2차 식량정책포럼에 참석해 전량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것이 내국민대우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정부 쪽 전문가도 "만약 법령이나 제도를 통해 전량 가공용 수입을 강제로 규정하지 않고, 국내 쌀 수급 상황을 고려해 올해처럼 국내 쌀 공급이 넘칠 때는 가공용으로만 수입하고, 반대로 나중에 쌀 공급이 부족할 경우에 밥쌀도 일부 수입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밥쌀 수입 문제를 탄력 있게 시행하는 것도 내국민대우 위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정부는 밥쌀 수입을 추가로 강행하기 전에,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하지만 무엇보다 사실상 이러한 원론에 해당하는 질문에 앞서 쌀값 폭락이 예상되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 쌀값 폭락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밥쌀 수입은 당연히 중단돼야 한다. 밥쌀 수입을 강행하면서 쌀값 안정을 내세우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 지난 10월 17일에 열렸던 도시농업축제한마당 워크숍 '서울의 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자료집 가운데, 장경호 부소장의 글 '2015년 쌀의 현주소–우리는 얼마나 쌀의 처지를 알고 있을까'를 정리했습니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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