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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쌓인 강정의 기억… "어찌 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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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쌓인 강정의 기억… "어찌 잊을까" [언론 네트워크] 강정기록전,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12월 2일까지
9년 전만 해도 누가 알았을까. 그들의 삶이 이렇게 통째로 달라질 줄. 평범한 농사꾼은 투사가 됐고, 웃음소리 대신 기계 굉음이 동네를 휘감고, 수 백년을 이어온 마을 공동체는 갈가리 찢겼다. 고통과 눈물 속에서 작은 희망을 좇아 몸부림쳤던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지난 9년의 기록이 생생히 눈 앞에 펼쳐진다.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24일 개막해 다음 달 2일까지 이어지는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다.

김진수, 김흥구, 노순택, 송동효, 이우기, 양동규, 조성봉 등 틈날 때마다 강정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왔던 작가 7명의 작품이 모였다. 캘리그라퍼 이강인도 힘을 보탰다.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된 후 달라진 마을 곳곳의 풍경, 주민들의 얼굴, 구럼비 바위가 깨지던 그 날, 철조망과 경찰 사이에 갇힌 평화활동가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강정 바다 속 연산호 군락의 변화상, 이제는 형태가 확 바뀐 강정 해안의 모습.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된 후 오늘날까지의 강정마을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주제어가 '적, 저 바다를 보아라'인 것도 이와 맞닿아있다.

여기서 '적'은 어떤 상태나 동작이 진행되고, 그 상태가 나타나 있는 시점 또는 그 때를 뜻하는 의존명사다. '저 바다를 보아라'는 신경림 시인의 시 '강정의 아이들에게'서 인용했다. 투쟁의 기록이자,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인해 달라진 마을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 증언인 셈이다.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사진은 소회를 밝히고 있는 문정현 신부. ⓒ제주의소리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제주의소리

24일 오프닝에 참가한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마을주민들도, 평화활동가도, 전시회를 준비한 작가도, 축하와 위로의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찾은 방문객들에게도 이번 사진전은 각별하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이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고 간직됐으면 좋겠다"며 "여전히 느껴지는 건, 강정이 옛날처럼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됐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고 말했다.

홍기룡 제주군사기지저지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그 동안 공동체를 지키고자 한 저항의 기억이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며 "연대의 기록은 2016년, 2017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길천 작가도 "지난 시간이 '새롭게' 느껴진다"며 "이 같은 전시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꾸준히 현장을 지켜왔던 문정현 신부의 눈가는 촉촉했다. 문 신부는 "사진은 절대 사람을 속일 수 없다. 진리도 결코 감춰질 수 없다. 예술을 통해 강정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며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니 눈물이 난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로 웃으며 사진 속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가가 촉촉이 젖은 채 오랜 시간 하나의 사진을 가만히 응시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한 관람객이 제주해군기지 추진 일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제주의소리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제주의소리

이번 사진전을 총괄기획한 양동규 감독은 "단순히 투쟁이나 논리적 싸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서 강정을 바라보면서 '저런 게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지금은 시멘트 더미 속에 묻혀버린 구럼비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인들을 위해 미국 인디언의 생명을 앗아갔던 '운디드니' 대학살에서 따와 '운디드니-강정' 시리즈를 내놓은 이우기 작가는 "여태까지 기록도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앞으로 더 가슴아프고 슬픈 일이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며 작품을 준비하며 느낀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강정기록전은 뚫을 수 없는 벽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정의 지난 9년을 되살렸다. 봉인돼버린 시간, 접근할 수 없는 장벽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는데 그 지향점이 있다.

지난 시간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는 제주를 넘어 뭍에서도 이뤄진다.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를 마친 후에는 서울 요기가표현갤러리로 장소를 옮겨 다음 달 9일부터 12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이번 전시는 강정마을회와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건설저지를위한전국대책회의가 함께한다. 아름다운재단의 '2015 변화의 시나리오'를 통해 지원을 받았다.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사진은 이우기 작가가 출품한 '운디드니-강정' 시리즈. ⓒ제주의소리

▲ 24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강정 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가 개막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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