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는데, 세상은 왜 이 모양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는 모임, '백년포럼'이 지난 17일 저녁 세 번째 토론회를 열었다. 장소는 앞서와 같다. 서울시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이 만났다
김상준 경희대학교 교수가 "공존체제, '다른 백년'의 세계상"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진화하는 민주주의> 등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던 김 교수는 이번에도 16세기에 시작돼 세계로 확산된 장기 유럽 내전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통찰을 선보였다. 냉전 및 좌우 대립의 종식이란, 근대국가 체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립 구도에 따른 실천은 의미가 희미해졌다. 적극적인 공존을 도모하는,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함께 토론했다. 37세인 조 소장은 최근 '2세대 진보정치'라는 구호를 내걸고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장년과 청년, 학자와 실천가, 망원경과 현미경이 만난 자리였던 셈.
직선으로 걸어갔는데, 왜 제자리인가?
하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이념의 선명성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다. 김 교수는 기존의 좌파-우파 구분이 이젠 의미 없다고 본다. '공존이냐 냉전이냐, 평화냐 대결이냐'라는 구도가 있을 뿐이다. 조 소장 역시 그저 선명하기만 한 실천에 거리를 둔다. 작더라도, 패배하지 않는 싸움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1980년대 내내 민주화 운동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는 "정치와 사회 운동의 현장에서 한발 떨어져 있었으므로 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김 교수의 또래 세대, 즉 1970~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의 한계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과거 사회 운동가들은 민주화 운동이 직선이라고 믿었다. 6월 항쟁을 통해 확보한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잘 밀어붙이면, 결국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이뤄지리라고 믿었다는 게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믿음이 틀렸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 세대가 공유했던 세계관이 지닌 한계 탓이다. 땅 자체가 흔들리는데 직선으로만 나아가봤자,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없다. 감옥에서 탈주한 이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다시 감옥 문 앞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냉전 종식, 근대국가 체제의 내리막길"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이들을 향한 감정적인 비난에 대해 김 교수가 동의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그들이 보수 세력과 타협했기 때문에, 현실이 이 지경이다'라는 진단은 틀렸다는 말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서 있는 땅의 변화다. 이는 냉전의 종식과 맞물려 있다. 김 교수의 설명을 옮긴다.
"냉전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이라고들 했다. 이 대립 구도의 연원은 유럽의 1848년 혁명이었다. 이때 사회주의 사상이 현실정치의 힘으로 최초로 출현했다. 그러면 사회주의가 극복 대상으로 본 체제, 즉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는 언제 성립했는가? 유럽에서 그 초기 형태는 1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지배적으로 된 것은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의 서유럽 몇 나라에서부터다. 유럽의 그 16세기는 어떠한 시대였는가?
유럽 국가들이 먼저 종교 문제, 나중에 식민지 문제를 놓고 치열한 전쟁에 돌입했던 때다. 유럽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는 이때부터 시작된 길고 긴 (갈수록 확산되고 참혹해진) 전쟁 속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말한다, '전쟁이 서구 근대국가와 근대세계체제를 만들었다'라고. 그 근대국가체제와 근대세계체제 안에 자본주의/사회주의, 제국주의(서구)/식민지(비서구)의 대립이 있었다. 냉전은 바로 그러한 근대국가체제와 근대세계체제의 산물이었고, 냉전 종식이란 근대국가 체제와 근대세계 체제가 그 생애 주기(life cycle)의 정점(頂點)을 치고 이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냉전 체제' 및 '냉전 체제 민주화 운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요컨대 냉전의 종식이란, 그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 진영이 이겼다는 차원이 아니다. 유럽에서 태동한 근대국가 체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는 뜻이다. 동구권이 무너진 1990년대 초 이후를 자본주의의 승리, 미국 일극(一極) 체제라고만 이해하는 건 짧은 생각이라는 것. 김 교수는 동구권 몰락 이후의 세계는 다극(多極) 체제로 진화했다고 본다.
민주화 운동 세대 역시 비슷한 오류를 저질렀다. 한 편에선 냉전 종식을 자본주의의 승리라고만 봤다. 다른 편에선 여전히 전통적인 좌우 대립 구도에 집착했다. 둘 다 오류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했어야 했나.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포용하는 태도다. 이념에 따른 꼬리표를 붙이고 배척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현 집권 세력과 야당은 모두 꼬리표 붙이기에만 골몰한다. 집권 세력은 걸핏하면 반대 진영에 대해 '종북' 꼬리표를 붙인다. 이런 정치 행태에선 정책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진다. 정책 일관성도 망가진다. 공공성 추구보다 상대를 찍어내는 게 더 급해지면, 정책 방향이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태도는 야당 역시 다르지 않다. 김 교수가 비판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진보 지식인들이 흔히 쓰는 "분단 체제"라는 표현도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분단 체제 극복'을 외칠수록 분단 체제의 구속력이 강화된다"라는 설명이다. '분단 체제'라는 설정 자체가 대립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냉전 체제'에서 비롯된 개념이라는 것. 따라서 김 교수는 "'냉전 체제' 및 '냉전 체제 민주화 운동'의 프레임에서 모두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자들의 싸움은 패배해서는 안 된다"
이날 발언 역시 이 책 내용과 겹친다.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힘은 과격한 열정에서 나오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너무 큰 희망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이를 긍정해야 한다. 아울러 과감하게 타협하는 용기가 절실하다.
조 소장이 이날 소개한 알린스키의 발언이다.
"약자들의 싸움은 패배해서는 안 된다. 만약 패배할 것 같다면 무조건 도망치고 이길 수 있는 싸움만 골라서 해야 한다."
세상살이는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다. 정의를 쫓아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약자의 편에 서는 것과 대부분 겹치는 이유다. 그런데 실패와 패배는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돈, 지식, 넉넉한 시간 등을 지닌 이들은 적당한 패배가 보약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겐 성장을 위한 진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 약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성장을 위한 진통 따위를 감내할 여유가 없다. 따라서 약자는 약간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게 알린스키, 그리고 조 소장의 생각이다.
그는 "'참여'는 부족하지 않다. 시민은 때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제는 허약한 정당"이라고 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골라내는 안목, 그리고 필요하면 과감하게 타협하는 용기를 지닌 정당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분단 체제 프레임, 우리를 농락한다"
냉전 체제의 관성에서 벗어나, 공존을 도모하자는 김 교수의 생각은 이 대목에서 조 소장과 만났다. 싸움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 약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그걸 위해 타협이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타협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와 다른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그게 공존이다.
김 교수와 조 소장의 토론이 끝난 뒤, 포럼 참가자들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공존 체제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 대립이 필연인 경우가 있지 않느냐는 게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이 평화 공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두 강대국의 패권 경쟁을 충돌로 몰아가는 구조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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