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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할수록 자살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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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할수록 자살은 늘어난다" [백년포럼 발제문] 한국 사회, 경로를 바꿔라 <중>

박형준 박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1960년부터 30년 간 삼성의 자산과 이윤은 국민경제의 발전 속도보다 20배 정도 빠르게 성장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외환위기 이전 10년간 기업 전체 이윤 대비 재벌그룹들의 평균 이윤 비율은 30대 그룹이 14.7퍼센트, 4대 그룹이 10.7퍼센트, 그리고 삼성그룹이 4.4퍼센트였다.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이후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이 평균 비율은 각각 55퍼센트, 34.2퍼센트, 17.1퍼센트로 높아졌다. 1997년 위기 전후로 재벌들의 이윤 비중이 세 배에서 네 배 정도 더 높아진 것이다.

한편 1997년 위기 이전에는 GDP 성장률과 법인기업이윤의 비중이 나란히 움직였는데, 이후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GDP 성장률은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연 평균 8.7퍼센트였는데, 2001~2010년의 연 평균 GDP 성장률은 4.2퍼센트로 낮아졌다. 그렇지만 법인기업의 이윤이 국민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2퍼센트에서 2010년 13.8퍼센트로 3배 규모가 되었다. 반면,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73.6퍼센트에서 63퍼센트로 약 10퍼센트 포인트 낮아졌다.

위의 사실들은 박정희 개발독재 이후 현재까지의 경제 성장이 생산은 온 국민의 땀으로, 그러나 그 과실은 재벌이 독차지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의 사회경제는 사회적 생산의 이윤을 재벌이 사유화해 온 과정이었다. 1월 백년포럼 "한국 사회, 경로를 바꿔라: '시장 대 국가'에서 '자본 대 사회'로"의 주요 내용이다. 포럼은 2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다. 내일(28일)에는 발제문의 결론이 소개된다.

1997 이전과 이후: 자본주의 권력양식의 압축성장

권력자본론은 그 동안 한국 사회경제체제 발전과정에 관한 중심 화두였던 다음 두 가지 문제설정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는 이른바 박정희의 공과 과라는 문제설정 방식이다. 둘째는 포스트-1997 구조개혁과 관련해 '천민자본주의' 대 '시장만능주의'라는 이분법적 논의 구도이다. 이 두 가지 문제설정 방식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한국 사회경제체제가 지나온 변화의 궤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동안 박정희 체제가 민주주의를 억압한 과는 있지만, 고도성장을 이룬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재벌활용 복지국가론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 주장을 설파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당시 성장모델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장하준 외, 2005; 2012). 이러한 접근방식은 성장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성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성장은 국민의 후생과 복지, 행복을 증진시킬 때만 의미가 있다. 앞에서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간 비교를 통해 확인했듯이, 이 점에 있어서 북유럽형 모델이 가장 뛰어났다.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사민주의적 코포라티즘이라 불리는 노-사-정 '협치'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형 모델도 북유럽형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 근간에는 민주주의적 협치가 자리 잡고 있다. 반대로 한국의 성장모델은 노동과 시민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재벌 동맹의 권력 강화를 위해, 그리고 경제개발을 위해 국민들을 순전히 수단으로 동원함으로써 만들어졌다. 박정희 체제는 루이스 멈포드(Mumford, 1970)가 말한 노동자들로 조립된 노동기계(labor machine), 군인들로 조립된 군사기계(military machine), 그리고 컨트롤 타워에 해당하는 관료기계(bureaucratic machine)의 복합체로 구성된 거대기계(megamachine)을 건설한 것이다(박형준, 2013: 150). 이른바 캐치-업 성장은 그 거대한 권력기계의 특성 중 하나일 뿐 독립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박정희 때 기본골격이 확립된 한국 사회경제모델은 발전국가론에서 흔히 국가자율성이라고 칭하는 군부독재의 '강한 국가'가 주도했다. "국가와 재벌의 지배 연합이 산업 발전을 위한 '관민 협력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재벌에 대한 성과 규율처럼 '발전 규율' 메커니즘이 작동하며, 다른 한편으로 세계 자본주의에 개방하는 방식과 국제 분업상의 위치가 잘 조절"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국가가 '자율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이병천, 2014: 26). 하지만 국가의 자율성이 계급적 이해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으로 해석되면 안 된다. 한국의 '강한 국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국가의 사회적 공공성은 전혀 강하지 못했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한국정부의 특성은 조금 거두고 조금 쓰는 매우 '작은 국가'이다. 국가의 힘은 국민들을 억압적으로 생산의 투입요소로 동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노동기본권, 정치기본권, 사회기본권, 공공복지제도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반면 '압축 성장'을 주도한 권위주의 국가는 재벌 기업들에게 직접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특별 이자율과 환율 혜택, 다양한 형태의 국가 보증, 외국 차관 배분, 수탈적인 노동 정책 및 보호무역 정책 수립 등의 특혜를 제공했다. 재벌들이 외국으로 돈을 빼내가거나 사치스럽게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발전 규율'일 뿐, 철저하게 재벌의 이익에 복무하는 '강한 국가'였다. 권위주의 국가는 억압적 정치로 재벌 기업들에게 순종적인 저임금 노동력을 무제한 공급해 주는 한편, 여러 특혜를 통해 나라 안팎의 경쟁자들이 그들의 사업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진입장벽을 설치함으로써, 재벌들에게 배타적으로 이윤의 흐름을 집중시켜 준 것이다.

아래 그림2는 이러한 재벌 밀어주기의 역사적 궤적을 나타낸 것이다. 여기서는 가용한 데이터의 한계 때문에 삼성그룹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차트는 삼성그룹의 자산총액과 이윤총액 변화를 각각 GDP와 국민처분가능소득의 증가에 대비해 표현한 것이다. 차트의 실선 그래프는 1960년의 삼성 총자산을 GDP로 나눈 값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그 비율이 반세기 동안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점선 그래프는 같은 방식으로 국민처분가능소득 대비 삼성그룹의 이윤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점인 1990년 두 값 모두 2100 정도로 커졌다. 이는 1960년부터 30년 간 삼성의 자산과 이윤이 국민경제의 발전 속도보다 20배 정도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때 만들어진 "관민 협력"에 기초한 "집단적 조직자본주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자본주의 모델을 지탱해 주던 두 개의 기둥에 균열이 간 것이다. 하나는 억압적 군부독재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냉전시대 반공의 보루로서 역할하며 받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다. 군사정권이 1987년 '전민항쟁'에 부딪혀 더 이상 독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한국은 대통령 직선제를 계기로 민주화의 과정에 들어선다.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민주노조 운동이 광범위하게 펼쳐졌고, 더 이상 재벌들은 순종적인 저임금 노동공급의 혜택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국내적인 정치역관계의 변화와 함께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일어났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것이다. 재벌들은 냉전시대에 누렸던 보호주의라는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을 위한 반공 진영의 보루를 역할을 하며 제공받았던 자금과 기술, 산업 시스템, 그리고 수출시장을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었다. 민주화와 세계화라는 이중적인 변화의 압력 속에서, 재벌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축적 양식과는 사뭇 다른 축적 체제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림 2.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모델


(*모든 데이터는 3년 이동 평균값.
출처: 한국은행; 삼성, 1998; 삼성 (Online, //www.samsung.co.kr);
박형준(2013: 230)의 그림 4.2 수정 인용.)

1994년 김영삼의 시드니 구상(혹은 세계화 선언)은 국가-자본 동맹의 새로운 컨센서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김영삼 정부는 보수대연합의 산물로서 1987년 체제가 형성한 민주화 세력 주도의 정치적 역관계를 다시 뒤집었다. 이후 이루어진 세계화 선언에는 외부에서 밀려오는 개방화, 자유화, 규제완화의 압력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해 새로운 지배전략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김영삼 정부는 '선진국 클럽'처럼 알려져 있는 OECD에 가입을 준비하며,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을 도모하는 한편, OECD 가입조건인 자유화, 개방화, 규제완화 등의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그런 가운데, 구체제의 상징인 경제기획원도 문을 닫았다. 국가 스스로 시장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개조운동을 펼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도정에서 갑자기 1997년 금융경제위기가 터졌다. 1997년 위기를 계기로 정치경제적 개혁이 엄청나게 가속화되었다. 단계별로 서서히 실시하려던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정책들이 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도입되었다. 그 결과, 한국 자본주의는 짧은 기간에 '거대한 전환'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한국의 경제 체제는 세계시장에 깊숙이 통합돼 버렸고, 더불어 급격히 팽창한 금융시장은 변동성이 심해졌으며, 안정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짧은 시간 동안 국가의 개입은 '죄악시' 하고, 시장은 '신성불가침'한 영역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이 정치권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심지어 진보 세력의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도 "권력이 시장[자본]으로 넘어갔다"고 말할 정도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러한 포스트-1997 구조조정과 관련해, 그동안 진보 진영 내에서는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1997년 위기는 물론 그 이후의 성장 동력 저하와 사회적 양극화가 영·미 주주자본주의 도입으로 진행된 '비생산적'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금융화 혹은 금융 주도 축적 체제 때문이라고 보는 그룹과 모든 것이 국가 주도 개발주의에서 만들어진 정실주의 재벌 시스템의 존속 때문이라고 보는 그룹이 논의를 주도했다. 그밖에, 노동자 착취 강화를 통해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그 본성이라고 보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견해를 비롯해 다양한 의견그룹들이 많이 있지만, 대중적인 논의는 앞의 두 그룹이 이끌었다. 장하준 교수로 대변되는 앞의 입장은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해 스웨덴 식 복지국가로 나아가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김상조, 장하성 교수로 대표되는 후자의 입장은 반독점 규제 강화와 전근대적 재벌 총수 '독재체제'를 해소하면서, 미국식 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로 전환해 가자는 경향이 강하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한국 사회경제모델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로 단정지울 수 없지만, 시장과 국가, 재벌과 외국자본을 다소 이상주의적인 입장에서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런 이분법적 접근방식이 정확히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지속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작업을 방해한다. 이병천(2014: 173)는 두 관점 모두를 비판하면서, 구체제에서 신체제로 이행에서의 연속과 단절을 설명한다(그림3 참조).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노동과 시민사회를 사회적 협력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국가-자본 동맹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한 것은 국가-자본 동맹의 구성과 위계이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적 개발 국가-국유 은행-재벌 간의 "삼각 연계"를 주축으로, 대내적으로는 국민 기본권 억압, 대외적으로는 보호주의를 통해 국적 자본의 고도성장을 추구하던 지배블록이 '정글의 법칙'을 추구하는 재벌-외국자본-시장지향 국가의 "신자유주의 삼각 동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구체제에서는 권위주의 국가가 지배블록 내에서 지휘봉을 잡았다면, 신체제에서는 재벌이 그 위치로 올라갔다고 본다. 권위주의 정부를 약화시킨 것은 학생운동이 주도한 민중항쟁이었지만, 독재 권력을 찬양하던 재벌들이 무임승차해 권력의 핵심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림 3. 개발자본주의 삼각 연계와 신자유주의 삼각 동맹


지배적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삼각 동맹은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2008년 세계금융공황 이후 구조적인 불황에 빠져, 현재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1997년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전보다 훨씬 자본 축적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림4은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2000년대 들어,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이윤을 집중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차트는 3개의 그래프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업 전체의 소득에 대비해 삼성그룹, 상위 4대 재벌, 그리고 30대 재벌 그룹의 순이윤 비율을 표현한 것이다. 각각의 비율이 매년 크게 변화하기 때문에 10년 간 평균을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위기 이전 10년간 기업 전체 이윤 대비 재벌그룹들의 평균 이윤 비율을 보면, 30대 그룹이 14.7퍼센트, 4대 그룹이 10.7퍼센트, 그리고 삼성그룹이 4.4퍼센트였다. 위기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이후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이 평균 비율은 각각, 55퍼센트, 34.2퍼센트, 17.1퍼센트로 높아졌다. 1997년 위기 전후로 재벌들의 이윤 비중이 세 배에서 네 배 정도 더 높아진 것이다.

그림 4. 기업이윤의 집중

(*전체기업이윤은 국민처분가능소득 중 기업소득. 모든 데이터는 3년 이동평균 값.
출처: 한국은행, 공정거래위원회, 삼성 1998, 삼성(Onlind); 박형준(2013: 362) 그림 6.3 수정 인용.)

재벌의 어마어마한 이윤 축적은 고용-임금-분배 없는 이른바 "3無 성장"을 낳았다. 대기업들의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이 수출호조와 이윤 급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일을 하청이나 파견노동으로 대체하고, 중소 하청기업에 대해 납품가 후려치기 등 이른바 갑을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이윤의 집중을 이루었다. '구멍가게', 카페, 빵집, 심지어 떡볶이 집까지 대기업의 손길이 뻗치면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과 그들에 딸린 '알바생'들은 사실상 대기업의 저임금 하청근로자로 전환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림5는 신자유주의 삼각 동맹이 만들어낸 '양극화 저성장체제'의 일면을 포착한 것이다. 차트는 3개의 그래프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실질 GDP성장률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처분가능소득 대비 법인기업이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소득을 나타낸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1997년 위기 이전에는 GDP 성장률과 법인기업이윤의 비중이 나란히 움직였는데, 이후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GDP성장률은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연 평균 8.7퍼센트였는데, 2001-2010년의 연 평균 GDP성장률은 4.2퍼센트로 낮아졌다. 그렇지만 법인기업의 이윤이 국민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2퍼센트에서 2010년 13.8퍼센트로 3배 규모가 되었다. 반면, 국민총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73.6퍼센트에서 63퍼센트로 약 10퍼센트 포인트 낮아졌다.

그림 5. 양극화 저성장 체제


(*모든 데이터는 3년 이동 평균값. 출처: 한국은행)

가계소득 비중의 전반적 하락과 더불어 가계 내의 소득불평등은 더 심화되었다. 그림6은 대표적인 불평등 측정 지표인 지니계수와 5분위 배수를 나타낸 것이다. 1991년에 지니계수는 0.259였는데, 2010년 이 수치는 0.320으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5분위 배수는 3.8에서 6.2로 증가했다. 이는 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구의 평균소득에 비해 소득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가구의 평균소득이 60퍼센트 더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소득불평등도가 증가한 것이다.

그림 6. 불평등의 심화


(*5분위 배수는 도시 2인 이상 가구. 출처: 통계청)

그림 5와 6의 수치들은 왜 우리 서민들 모두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지를 대략 보여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재벌 총수일가들은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10대 그룹 총수들이 보유한 주식가치의 변화를 보면, 2000년 9,370억 원에서 2011년에는 28조 3,560억으로 서른 배 규모로 성장했다. 게다가 그들이 받는 배당소득도 2001년 310억 원에서 2011년 17,80억 원으로 배당금 수령 규모가 여섯 배 수준으로 커졌다. 이런 사실들은 '투기적 외국자본'과 '생산적 국내자본'이란 이분법적 접근방식이 허구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자본주의 체제개편의 본성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펼쳐진 소유권과 축적공간의 통합이었고, 한국의 재벌들은 그 흐름에 편승해, "지역적 한계를 넘어 초국적인 부재소유자의 구조 속으로 스스로를 편입시켰다"(박형준, 2013: 351). 이는 국내적으로는 국가-자본 동맹체제에 외국자본을 한 주체로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했고, 이들 신자유주의 삼각 동맹은 양극화 성장전략을 통해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를 '효율적'으로 해내고 있다.

김승원•최상명(2014)로부터 인용한 그림7은 한국의 지배세력이 일군 압축성장의 본성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OECD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경제성장•소득분배•사회지표 간의 관계를 분석한 이 연구는 경제성장, 소득분배에 관련된 지표들이 경제성장 그 자체보다는 소득분배 수준과 더 많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이 연구는 이른바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특별한 현상을 분석해 주목을 끌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1인당 GDP의 상승과 자살률 하락이 동반되는 반면, 한국은 두 지표가 나란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두 지표 간 피어슨 상관계수(Pearson Correlation Coefficient)를 구해보면, 0.9647이 나오는데, 이는 매우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성장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삶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모순된 자살 친화적 성장 모델은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진로변경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림 7. 한국의 자살 친화적 성장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나타냄. 출처: OECD Statistics)

지배구조의 성격을 드러내는 한국의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권력자본론 관점에서 접근하면,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을 나라별 혹은 유형별로 사회세력 간 역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 왔으며, 싸움과 타협 속에 어떤 사회경제 질서를 형성해 왔는가를 말해주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 진영은 북유럽형 혹은 대륙형으로의 전환을 추구해 왔다. 이런 움직임들은 지난 대선을 전후해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소득주도 성장론' 등으로 담론화 되었고, 보수 정치세력이 차용해야 할 정도로 당위성을 획득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아직 통일된 사회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고, 우리와 유럽형 모델 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북유럽이나 대륙형 조정시장경제 쪽으로 경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와의 격차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배세력이 형성한 '자살 친화적' 사회경제 체제의 특성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경로를 변경할 것인지, 그를 위해 어떤 점들을 극복해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위에서 소개한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들 간 차이점들을 도해로 표현해 보겠다. 데이터 분석은 주로 OECD 통계를 이용했는데, 모델 별로 미국, 독일, 스웨덴, 스페인을 주된 비교국가로 삼았고, 일부 국가들은 차트를 단순화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제외했다.

그림 8. 소득과 공공사회복지 지출 수준 비교

(*모든 데이터는 최근 5년 평균값을 나타냄. 출처: OECD Statistics)

그림 8은 1인당 GDP와 GDP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예외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별로 비슷한 영역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OECD 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낮고 공공사회복지지출도 낮은 좌하단 그룹에 속해 있다.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GDP의 10퍼센트 정도로 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의 잔여적 복지국가를 대표하는 미국에 비해서도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진보 진영에서 선호하는 유럽형 모델인 스웨덴이나 독일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1인당 GDP도 예를 든 세 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주류의 '선성장 후복지' 담론을 비판하며 복지증대를 요구하는 진보 진영에서도 성장담론 자체는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류가 주장하듯 현 국민소득 수준에서 복지증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트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유형인 일본의 수준이나 OECD 평균, 심지어 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지금보다는 두 배 정도 공공복지비 지출을 늘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다만 성장 없이 복지비만 늘릴 경우 차트의 좌상단에 위치한 남유럽형 국가들로 향하게 되는데, 이는 '복지 망국론'을 외치는 보수세력의 주요 공격 '루트'이다. PIIGS 재정 위기로 이 경로는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길로 낙인 찍혔다. 정리하면, 남유럽형을 제외한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로 가든 영미식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가든 우리 앞에는 크게 성장-복지(혹은 복지-성장)의 선순환 발전관계를 꾀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정부의 성격변화가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장전략과 경제정책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둔다고 해도, 한국 정부는 지금보다는 훨씬 '큰 정부'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그림9의 위쪽 그림은 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와 국민부담률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좌하단은 저부담-저지출 경향을 가진 '작은 정부' 국가군을, 우상단은 고부담-고지출 경향의 '큰 정부' 국가군을 의미한다. 한국은 국민부담률 26퍼센트, GDP대비 재정지출 규모는 32.5퍼센트로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자유주의 시장경제형 국가들과 더불어 OECD국가 내에서 작은 정부 국가군에 속한다. 스웨덴은 국민부담률은 45퍼센트, GDP대비 재정규모는 52퍼센트로서, 한국보다 두 항목이 각각 20퍼센트 포인트 정도 높은 수준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두 항목이 각각 37퍼센트, 46퍼센트로서 스웨덴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한국이 따라가기에는 매우 벅찬 격차가 존재한다. 스페인은 국민부담률이 32퍼센트로 한국보다 6퍼센트 포인트 높지만, GDP대비 재정지출 규모는 46퍼센트로 14퍼센트 포인트 정도 높다. 차트를 보면, 이탈리아를 제외한 PIGS 국가들 모두 저부담-고지출 군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9. 정부의 성격 비교

(*모든 데이터는 최근 5년 평균값을 나타냄. 출처: OECD Statistics)

저부담-고지출은 정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문제로 직결된다. 2008년 세계금융공황 이후 PIIGS의 재정위기-경제위기가 불거지면서, 저부담-고지출 국가군은 반복지 세력의 '복지 망국론'에 주된 논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림2의 두 번째 그림이 보여주듯이, 복지체제가 잘 확립되어 있는 북유럽형과 대륙형 조정시장경제 모델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이 뛰어나고, 국가부채도 낮은 수준에 속한다. 차트를 작성하면서, 편의상 노르웨이는 제외했는데, 노르웨이의 국가부채는 GDP의 4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고, 지난 5년 간 평균 재정수지는 GDP대비 12퍼센트 흑자를 기록했다. 복지지출을 많이 한다고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복지제도의 확대로 얻는 혜택만큼 사회적 차원에서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는 연대와 책임성의 컨센서스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야 하며, 사회적 성원들 상호간의 신뢰도 강해야 한다.

그림 10. 사회적 신뢰도



(*국가청렴도와 신뢰지수는 부패지수와 정부신뢰지수를 평균하는 방식으로 통합
출처: OECD Society at a Galance 2014; 2011.)

그림 10은 갤럽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OECD가 만든 부패지수-정부신뢰지수와 사회성원 간 신뢰지수를 함께 나타낸 것인데, 북유럽형 사민주의 복지국가들이 정부신뢰도와 사회 성원들 간 신뢰도 모두에서 최상위 층위를 구성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회적 신뢰와 정부 신뢰 두 항목 모두 낮았고, 그리스, 포르투갈, 멕시코 등과 함께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복지가 잘 되어 있어 사회적 신뢰가 높은 것인지 사회적 신뢰를 잘 쌓아 복지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유럽형 조정시장경제로 나아가려면 성장-분배의 선순환과 함께 사회적 신뢰-복지 증대의 선순환 구조도 확립해야 한다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는 사실이다. 매우 낮은 사회적 통합과 정치권•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이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경로변경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다.

그림 11. 노조 조직률과 상대적 빈곤률


(*노조조직률은 최근 5년 평균값; 상대적 빈곤률은 2010년부터 최근 값.
출처: OECD Statistics)

경로변경을 추진할 사회적 주체를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림11은 OECD 각국의 노조 조직률과 상대적 빈곤률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사회적 조정의 한 축을 이루는 노동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리지표로 표현해 보았다. 여기서 두 요소 간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빈곤률은 노조의 힘뿐만 아니라 복지체제 전반적 재분배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다만 사회적 합의의 한 주체로서 노동의 역량을 노조 조직률로 살펴보고, 노-사-정 협력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상대적 빈곤률 수준으로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70% 전후의 압도적인 노조 조직률을 바탕으로 전국적 차원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노조 조직률은 노동 쪽의 주체적 역량을 매우 확연하게 드러내는 지표이다. 차트를 보면, 중위소득의 50퍼센트 미만 가구의 비율을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률도 전반적으로 다른 자본주의 모델에 비해 낮은 편임을 알 수 있다. 대륙형 조정시장경제 국가들은 노조 조직률이 보통 20퍼센트 전후로, 북유럽형에 비해서 많이 낮지만 상대적 빈곤률의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륙형 모델에 속한 국가들의 경우, 노조 조직률에 비해 단체협약 적용률이 매우 높은 데서 일차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표3. OECD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출처: OECD Statistics; OECD Employment Outlook 2012.

표3에는 OECD 국가들의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정리해 놓았다. 독일은 노조 조직률이 18퍼센트이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62퍼센트에 이른다. 오스트리아는 노조 조직률 28퍼센트에 단체협약 적용률은 99퍼센트, 프랑스는 노조 조직률은 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단체협약 적용률은 90퍼센트이다. 그만큼 사회적 연대의식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낮은 노조 조직률 속에서도 노동이 사회적 조정의 한 주체로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퍼센트 내외로 매우 낮은 편인데다가, 최저임금 이외에는 노-사-정 협의가 거의 없고, 이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노동이 사회적 조정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 중심으로 기업별 협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과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의 격차가 심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단체행동이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조직률, 단체협약 적용률, 상대적 빈곤률 지표를 중심으로 보면, 한국은 미국과 매우 유사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1인당 GDP, 공공사회복지비 지출 규모, 국민부담률, 재정규모, 사회적 신뢰도, 노조 조직률, 단체협약 적용률, 상대적 빈곤률 등의 지표를 가지고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간 차이점들을 살펴보았다. 한국 사회경제체제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저부담-저지출의 '작은 정부', 낮은 공공사회복지비 지출, 높은 부패지수-낮은 정부 신뢰도, 낮은 사회 성원 간 신뢰도,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지표들은 노동시간, 삶의 만족도, 산재사망률, 자살률 등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들에서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한국의 실정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갖는다(표4 참조). 이들 지표들 이외에도 더 많은 요소들 간 비교가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특색만으로도 현재의 한국 사회경제체제와 진보 진영이 추구하는 유럽형, 특히 북유럽형 사회경제모델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그만큼 한국 사회경제체제를 전환해야 하는 과제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표4. 주요 사회지표 국가순위 비교


(*데이터 별 최근 자료로, 기준년도는 상이함.
출처: OECD; 김승원, 최상명(2014), 273쪽 <표1>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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