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이후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를 놓고서 갑론을박이 많습니다.
주로 더불어민주당, 특히 문재인 전 대표 지지자는 이번 호남의 선택이 "지역 이기주의"이자 "호남 고립"을 자초한, 앞으로 대선의 "야권 분열"을 예고하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주장합니다. 이를 놓고서 자신을 "호남 누리꾼"이라고 소개하는 윤중대 씨가 반박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윤중대 씨는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이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런 주장에 숨어 있는 자가당착의 논리를 꼬집습니다. 4.13 총선에서 드러난 호남 민심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을 싣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 재반론도 환영합니다. ([email protected])
호남이 국민의당을 찍어서는 안 된단다. 왜? 야권이 분열하니까. 야권이 분열하면 안 되는 이유는? 어부지리로 새누리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대승을 거둘 수 있으니까. 그러니 호남은 무조건 민주당에게 몰표를!
하지만 호남은 국민의당에게 몰표를 던졌고, 결과는 새누리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들의 반응은? 호남이 잘못했단다! 왜? 국민의당을 뽑은 게 지역주의니까. 그럼 애당초의 야권 분열 논리는?
오히려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표를 잠식해서 야권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건 국민의당에도 불구하고 '달님' 덕분에 수도권 대승을 거두고 부산-경남에서 10석을 확보한 것이란다. 그러니 오히려 호남이 '당혹스러워' 해야 한단다.
좋다. 그럼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가 지역주의인 이유는? 국민의당 호남 정치인이 '호남의 이익'을 말했기 때문이란다. 아니, 그럼 호남은 '이익'을 구하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부산-경남 공략을 위해서는 신공항을 안겨줘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제2의 경제권인 영남에 약속하는 이익은 착한 이익, 산업화에 소외돼 낙후 지역으로 전락한 호남이 요구하는 이익은 나쁜 이익인가?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 마저 빼앗기리라?'
그리고 고립 타령. 국민의당을 찍으면 호남이 고립된다? 애당초 호남 고립의 레토릭은 1980년 광주와 3당 합당 이후의 호남을 극우 패권의 관점에서 조롱할 때 사용하는 수사. 자신들이 곧 국가라는 패권 세력의 자아도취에서 나온 표현이다.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 대항한 호남은 고립된 소수자라는 그 극우적 정서. 그 못된 레토릭을 차용해 민주당을 안 뽑았으니 고립된다고 협박하는 이들의 정체는? 일베 좌파? 문베충? 밥상머리 진보? 아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당 대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다.
수도권은 더민주당이지만 호남은 국민의당이라 고립된다? 대한민국이 각 지역 정당끼리 전쟁을 벌이는 내전 국가라도 되나? 만약 그렇더라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편먹어서 새누리당과 싸울 확률이 90% 이상. 지금도 일부 경제 정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슈에서 두 야당은 공조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당연하다. 국민의당 자체가 '민주당 우파'와 호남의 합작 세력이니. 그럼, 영남 고립인가?
호남이 지역주의에 매몰됐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지식인들. 그들 호적을 좀 살펴보자. 어이쿠! 영남 출신이 태반. 그래 이번에 영남에서 새누리당이 몇 석을 얻으셨더라? 아. 부산-경남에서 민주당이 10석을 확보했다고요?
근데 독재자, 반역자, 학살자, 외환 위기 주범, 국토 파괴범, 접신한 공주님에게 압도적인 몰표를 퍼부어 대통령으로 만든 지역은 어디? 수십 년간 독재 세력과 극우 패권 세력에게 표를 준 이들이 이번에 10석 만들어줬다고 황송해해야 한다? 이 어이없는 골품제적 자뻑.
그리고 어차피 경상도는 이번에도 80%가 새누리당. 퇴출되어야 할 극우 패권 정당에게 또 몰표를 던진 고향은 10석이나 민주당이 나왔으니까 "새로운 희망", 하지만 영남 유권자의 몰표에 맞서 공화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간 표로 항거해 온 호남은 국민의당에 좀 기웃거렸다고 "망월동 묘지에 콘크리트를 부어야 한다"고 아우성.
'X시 내고향'에 대한 사랑도 너무 지나치면 병이다. 참고로 호남이 안철수와 '야합'을 한다고 뜬금없이 꾸짖은 어떤 원로 지식인의 고향이 슬슬 '유사 경상도화' 되어가고 있는 신(新) 새누리당 텃밭 충청도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보수적으로' 봐도 '중도 보수' 정당에 불과한 국민의당을 찍은 것,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의 이익을 내세우는 것 모두 정치학적 관점에서 하등의 하자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치 행태. 반새누리 전선 하에서 정치적 선택권을 다양화하려는 호남 유권자의 욕망이 국민의당이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배태한 근본 원인. 그것을 지역주의라고 매도하는 자들, 결국 민주당에 몰표를 주고도 대가는 받지 않는 박제화된 '민주 성지' 호남이 사라질까봐 겁이 나서 그러는 것이다.
지금껏 호남의 공짜표로 재미를 봤는데, 앞으로는 표 값을 내야할 것 같으니 화가 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인지 유독 말끝마다 부채감 타령. 아니 부채가 있으면 부채를 갚고, 없으면 안 갚으면 될 일이지, 채무 관계에 왜 '감정'이 개입하나. '부채' 아닌 '부채감'을 말하는 것은 결국 부채가 있는 건 아는데 안 갚겠다는 의미.
부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잠자고 있던 그 부채 의식이, 호남에 삿대질 할 때만 선택적으로 발동되어 '이번에 없어진 그 무엇'으로 나타나는 신묘한 신경학적 메커니즘. 다음번에 호남이 민주당(혹은 단일 야당)에게 몰표를 주면 자연스럽게 다시 잠들 것으로 예측된다.
정작 호남이 몰표를 줬을 때는? 지역주의라고 욕하던 게 이들이다. 대표적인 이가 '경북'에 소재한 동양대학교 교수 진중권. 호남의 민주당 몰표를 "전라인민공화국"이라고 조롱하던 입으로 이번에는 민주당에게 몰표를 주라고 협박했다. 민주당 몰표를 주면 전라인민공화국, 몰표를 안주면 퇴행적 지역주의.
결국 뭘 해도 지역주의라는 이 어이없는 궤변의 바탕에 자리하는 건 호남 몰표를 지역주의라고 매도함으로써 호남의 기여를 무시하고 지분을 배제하겠다는 정치적 욕망과, 그 몰표가 집권에 필요하다는 실제적 이해관계 간의 정면충돌이다. 이 논리 파탄이 거의 상시화되어 버린 한국 정치에서 호남은 몰표를 줘도 욕먹고, 안 줘도 욕먹는 영원한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기에 돌 얹어놓는 진중권 같은 지식인이 한국에서는 '진보'와 '정의'를 참칭하는 코미디.
참고로 호남의 노무현 지지는 "암 환자의 모르핀 투여"라며 조롱하더니 이번에는 '평민당 프로젝트' 운운하며 호남에게 민주당 찍으라고 협박하던 유시민도 있다. 각각 진보와 개혁을 대표하는 이 두 지식인이 주도하는 한국의 지역 정치 담론.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누가 이겨도 희망은 없다.
정리하자. 수도권과 호남이 분열했는가? 아니다. 범개혁 진영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것. 이는 정상적인 정치적 갈등과 권력 투쟁의 양상이지, '고립'같은 신군부스러운 레토릭을 동원해서 호들갑 떨 상황이 아니다. 두 정당이 큰 틀에서 공조하면서 새누리당과 대립하는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애초에 호남은 '반새누리 자유민주주의'의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민주의 수도권 대승에는 호남 출향민의 교차 투표가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호남의 이익은 지역주의인가? 아니, 대한민국은 민주화도 하고 산업화도 하는데 호남 사람들은 민주화만 해야 하나? 결국 호남이 풀만 뜯어먹어야 한다는 진보 버전의 반호남주의에 불과하다. 호남에게 민주 성지 강요하는 그 사람들에게 '민주'만 있고 '산업'은 없는 호남의 낙후된 지방자치단체로 단체 이주하라고 해봐라. 100명 가운데 1명도 응하는 이 없을 것이다.
본인들은 '강남'도 하고 '좌파'도 하겠지만, 호남은 '좌파'만 하라는 도둑놈 심보. 그래놓고 부산-경남에는 신공항 안겨주자는 강자영합주의. 영남 패권의 존재를 타파해야 할 모순이 아닌 수용해야 할 선험적 질서로 내세우면서 호남에게 '전략적 포기'를 강요하는 굴절된 패권주의. 결국 진보 가치관과 호남 차별 의식이 교묘하게 결합한 결과다.
이런 사기꾼들과 결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이번 호남 선거의 본질이다. 열심히들 욕하시라. 바퀴는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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