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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산자부에도 돌을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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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습기 살균제, 산자부에도 돌을 던지자 [기자의 눈] '야매 살균제' 도 업주 처벌로 끝인가

사건이 불거진 후 무려 5년이나 지나서 검찰의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뒤에야 '안방의 세월호 참사'로 부각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장 많은 사망자와 피해자를 낸 살균제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 등 기업과 이 제품을 처음 제조해 시판한 당시의 최고경영자 신현우 씨는 이제야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이 재조명 받으면서 옥시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5적'으로 환경부를 꼽았듯이 정부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중에 사실상 한 개인이 인터넷을 보고 수입 살균제 성분을 대충 물에 섞어 판 '세퓨'라는 '야매 상품'도 버젓이 팔렸다는 점은 옥시의 행각 못지 않게 충격을 주고 있다.


'살인 살균제', 개인도 만들어 팔 수 있는 나라


세퓨라는 제품에 들어간 살균제 주성분은 옥시가 제조한 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보다 독성이 4배나 강하다고 한다. 불과 3년간 팔린 이 제품은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27명(그중 14명 사망)이 발생해 두 배 이상 오랜 기간에 훨씬 판매량이 많은 대기업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제품들 중 홈플러스를 제치고 사망자 숫자에서 3위를 차지했다.


또한 애경이 판매한 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은 보건복지부가 당초 "피해를 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정해 뒤늦게 환경부가 독성을 인정했지만 지금도 조사 대상에서 빠져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정부의 무책임도 반드시 따져야 할 사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공업용으로 허가된 화학물질, 인명 살상용으로 쓰여도 규제 없는 나라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은 원래 공업용 살균제로 허가됐다. 당시에는 생활화학용품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2일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 관계자는 <프레시안> 전화 통화에서 "2005년 1월 화학물질평가법(화평법)이 시행되면서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을 관리하게 됐다"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될 당시 환경부가 관리 책임을 진 2차 제품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부는 화평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화학물질만 관리하지, 화학물질을 사용한 2차 제품에 대한 관리 권한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인체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유독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는 파문이 일어난 2011년 말에야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시판 당시에 가습기 살균제는 그저 가습기에 쓰이는 신종 세정제로 취급받는 상황이었다. 2일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검찰 조사 대상인 6종의 가습기 살균제 중 한 업체만이 KC마크(국가통합인증마크)를 받았는데, 그것도 정부의 인증을 거친 KC마크가 아니라 업체가 자율적으로 검사해서 신고하면 서류 검토 후 신고필증을 발급해주는 KC 자율안전확인 신고필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지난달 30일 "가습기 살균제 최대 피해 원인 제품인 옥시 제품에 국가인증 KC마크가 부착됐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며 "'품공법(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서는 일반가정에서 바닥, 욕조, 타일, 자동차 등의 물체를 세정할 용도로 사용하는 세정제만을 관리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KC마크의 진실, "업체가 신고하면 내주는 신고필증"


그러니까 당시에 가습기 살균제는 화학물질을 사용한 신제품으로, 공업용 세정제도 아니어서 어느 부서의 소관인지도 정해지지 않은 제품이었는데, 코스트코의 PB상품 '가습기 클린업' 제조사 글로엔엠이 KC마크 신고를 해서 받아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 관계자는 "원래 KC인증은 정부가 검사하던 것인데, 업체 부담 경감 차원에서 업체가 시험인증 전문기관에 의뢰해 시험성적서를 받아오면 서류를 검토해서 신고를 받아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주범으로 피해자들이 꼽은 '5적' 중에 정부부처 중 유일하게 포함된 곳이 환경부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참사의 원인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유독물에 해당 안된다"고 보장한 부처이기도 하다.(☞r관련 기사: 옥시·환경부…가습기 살균제 참사 '오적'은?)

그런데 환경부가 억울해야 할 측면이 있다. 공산품 관리의 주무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인데, 아예 비판의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끼리도 권력서열의 차이가 있다. 기업을 위해 규제완화를 외치는 산자부가 환경부보다 갑인 것이 현실이다. 공업용 살균제 성분으로 허가된 화학물질을 인체에 흡입이 되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해도 재심사 의무 조항이 없게 된 이유도 환경부 등이 입법을 추진해도, 산자부를 중심으로 한 '산업진흥족'들이 규제 강화를 번번히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야매' 가습기 살균제까지 시판될 수 있었던 것도 공산품에 쓰이는 화학물질은 허가 당시의 용도 이외로 어떻게 사용하든 안전사고 이외에 독성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닌 엉터리 규제 체제로 인해 가능했다.


1996년 12월 유공(현 SK케미칼)은 정부에 옥시가 살균제 주성분으로 사용한 PHMG 제조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신고서를 보면 SK는 "이 물질은 항균카펫 등에 첨가된다"며 "사용할 때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작업자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히 환기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듬해 3월 환경부는 이 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 결과로 "유독물에 해당 안 됨"이라고 관보에 고시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이를 바탕으로 2001년 이 물질을 활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당연히 환경부가 용도 변경에 따른 재심사를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규제 조항이 없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800만 명이 노출된 사건


옥시 제품이 인기를 끌자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주성분을 그대로 베껴 각각 2004년, 2006년 제품을 출시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연간 약 60만 개가 팔렸고, 첫 제품이 나온 1994년부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2011년까지 약 800만 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 피해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자만 해도 엄청나다.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1500여 명, 가습기 살균제를 자주 사용한 탓으로 호흡기 질환 등이 의심되는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있고, 인과관계가 확인된 사망자만 정부가 확인한 숫자가 146명, 그리고 현재 확인중인 피해자까지 합하면 246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참사다.


이런 대형참사의 책임을 묻는 노력은 제조업체 처벌 정도에서 그치면 안된다. 제2의 세월호,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월호 참사보다 더 끔찍하고 중대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피해가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와 임산부에게 집중됐다는 점도 있지만, 무려 5년 동안 검찰이 침묵해 왔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가 "유독물이 아니다"면서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가한 물질을 이용해 기업들이 인체에 유독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지 자체 검사할 법적 의무도 없이 "합법적으로 제조.판매했다"고 주장할 근거를 제공했다.

공업용 화학물질이 용도 변경을 통해 인체에 쓰여도 독성 검사 의무를 부여하는 규제를 "기업 부담 경감 차원"에서 한사코 반대하는 산업 진흥 부처의 논리가 득세하고, 이들이 규제를 좌지우지하는 한 화학물질에 의한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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