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신임 조직위원장에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선임이 확정되면서 영화제 측 승리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은 연휴 기간 세 번에 걸친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공식적으로 전혀 제의받은 바가 없다"고 끝까지 연막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프레시안>은 영화제 측 다른 고위 관계자를 통해 연휴 기간 내에 물밑 합의가 있었음을 확인했으며, 이 관계자는 "정작 김 위원장 본인은 공식적인 제의를 받지 못했다는데"라는 기자의 질문에 안타까운 듯 "연휴 기간만 지켜봐 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로 기사를 준비하던 기자는 그 말을 믿고 기다렸고 결과는 '역시'였다.
9일 김광호 영화제 사무국장 대행은 "오늘 오전 김동호 위원장께 새 조직위원장 제의가 갔고 김 위원장도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안다"고 <프레시안>에 공식 확인해 줬다. 아마도 연휴 말미 직전 결정이었던 것 같았다.
이날 오전 부산영화제 사무국도 공식 보도 자료를 내고 "오늘 협의 과정에서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가 중요한 첫걸음을 함께 내딛게 됐다"면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위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정관 개정이 불가피하다.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 당연직이 되는 조항을 삭제하고, 민간인이 조직위원장이 될 수 있도록 개정을 변경해야 한다.
김 국장은 "칸 영화제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명예위원장이 돌아오는 5월 셋째 주에 임시총회를 열어 김 위원장을 합의 추대하기로 했으며, 정관은 내년 2월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신임 조직위원장 자리를 놓고 몇몇 인사들이 거론돼 왔지만, 부산시와 영화제 측 갈등으로 순탄치 않게 흘러온 것이 사실이다.
부산시는 애초 영화배우 안성기와 임권택 감독을 물망에 올려 접촉했지만 영화제 측과의 사전 협의 없는 진행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면서 최악의 카드를 선택한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기소된 영화제 측 관계자들과 그 계를 같이하는 인물로 부산시가 자체 평가했던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힌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한때 안 씨 측근이 연휴 기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다는 불분명한 입장을 취해 수락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틈을 엿보이게 했으나 "영화제 측과 사전 협의 없는 수락은 '영화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었다.
임권택 감독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조직위원장 제의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 단체는 물론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긴 부산시는 강수연 위원장에게 선임권을 전폭적으로 넘겨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버렸다.
자신들이 내세웠던 '개혁'이라는 대의도 명분도 전부 내려놓고 무장해제당한 상황에 놓인 꼴이 된 셈이다.
김동호 위원장도 <프레시안>의 끈질긴 취재가 이어지자 "(내 비용으로 가지만) 이번 칸 영화제에서 유치 활동을 벌일 것"이라는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여 사실상 제의를 수락할 것임을 암시하면서 영화제 사태는 사실상 주말을 고비로 엉킨 실타래를 풀게 된 느낌이다.
부산시가 완전히 포기한 모습이지만 과연 이것으로 영화인들이 승리한 것이고 축배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제 조직위의 자성 노력은 필요 없는 것일까.
한해 120여억 원이 소요되는 부산국제영화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영화제 관계자들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우선 부산시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예산의 집행부터 먼저 투명해야 한다는 시각이 한 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나날이 어려워지는 경제 여건 속에서도 매년 60여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지원해 온 것은 비단 '그들'만의 축제를 축하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엄연한 과제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것이다.
20여 년 동안 수백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영화제를 성인으로 성장시킨 부산 시민들은 지금 '그들'에게 간절히 묻고 있다. "이제는 집안 경제에 도움을 줄 만큼 크지 않았느냐"고. 자식을 키운 어미의 심정으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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