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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민 스포츠 요가, 올림픽도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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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美 국민 스포츠 요가, 올림픽도 접수? [유라시아 견문] 요가 : 탈인도화와 재인도화
요가의 세계화

나는 요가 마니아이다. 2007년 입문했으니, 올해로 9년차이다. 책 읽고 글을 쓰다보면 목과 어깨가 자주 굳는다. 근육이 뭉치면 머리도 탁해지기 십상이다. 흐릿한 정신으로 쓰는 글은 아니 쓰는 것만 못하다고 여긴다. 타개책으로 삼은 것이 요가 수련이었다. 효과가 톡톡했다. 요가 한 시간이면 말랑말랑하게 풀어줄 수 있다.

한창 때는 술자리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요가를 하고 돌아갈 정도였다. 여유가 있는 날이면 서너 시간 씩도 했다. 못해도 1년에 300일은 했을 것이다. 지금껏 근 3000시간을 수련했다는 말이 된다. 하루라도 요가를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 듯하다.

작년(2015년)부터 유라시아 곳곳에서 요가를 하고 있다. 북방의 울란바토르서도, 적도의 자카르타에서도, 지금은 테헤란에서 하고 있다. 얼굴에 철판을 깐다. 현지에서 1년 이상 살게 된 특파원 시늉을 낸다. 며칠 수련해보고 가입하겠노라 하면 보통 2, 3일 자유 이용권을 주는 것이다. 조금 오래 머무르는 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여러 요가원을 순회한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타 요가, 빈야사 요가, 아쉬탕가 요가 등은 이미 표준화되었다. 강사가 몽골인이고 중국인이고 일본인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동작은 비슷하다. 그런데 동남아로 진입하는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인도인 강사가 영어로 직접 가르친다. 그 경계가 베트남의 하노이이다.

하노이부터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만달레이는 인도에서 온 요기(Yogi)들이 주를 이룬다. 벵갈루루와 첸나이 등 남인도 출신들이 많다. 남인도와 동남아가 벵골만을 '지중해'로 삼은 하나의 생활 세계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북미로 이주해간 숫자보다 남인도에서 동남아로 이주해간 인도인들이 더 많다. 히말라야가 자연적인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동북아와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하여 동북아와 동남아를 아울러 동아시아라고만 묶고 마는 것도 동북아인의 상투적인 편견일지 모른다. 종교망, 친족망, 생활망, 문화망에서 동남아는 동인도와 몹시 긴밀하다.

인도 견문 6개월, 응당 요가가 빠질 수 없었다. 석 달을 생활한 델리에서는 부러 마을 요가원을 찾았다. 대도시의 천편일률적인 요가에 싫증이 나던 차였다. 요가의 본고장을 찾았으나 콜카타나 뭄바이나 서울과 베이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숙소 가까운 곳에 작은 요가원이 나온다. 조금 더 일상적이고 전통적이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다.

방문해보니 놀랍게도 내 또래의 한국인 여성이 운영하는 곳이다. 20대 후반, 배낭여행 하다가 인도 사내랑 눈이 맞아서 눌러 앉았단다. 그것도 특별한데, 내가 한국에서 다니던 홍익대학교 인근의 한 요가원과도 연이 닿았다. 그곳 원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라며,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준다. 어쩜 이럴 수가. 남아시아 하고도 인도, 인도 하고도 델리, 델리 하고도 '마유르 비하르'라는 후미진 동네에서, 홍대 요가원 출신 한국인과 조우하다니.

하루는 그들 부부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김치찌개와 탄두리 치킨을 안주로 삼아, 참이슬 소주에 킹피셔 맥주를 섞은 인도-한국 우정주를 나누어 마셨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남편은 펀자브 출신. 무슬림이 많이 사는 북인도가 고향이었다. 그의 조부모는 카라치(현재 파키스탄)에서 오셨단다.

20세기 최대의 분단 국가, 파키스탄과 인도가 갈라서면서 펀자브로 이주한 힌두교 피난민 집안이다. 동아시아 대분단 체제와 남아시아 대분할 체제를 비교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나로서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뜻하지 않게 자자손손 구전되는 생생한 분단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글로벌 연결망과 요가의 세계화가 빚어낸 예기치 않은 인연이었다.

▲ 전함 위에서 요가를 수련하는 인도 해군. ⓒwikimedia.org

요가의 미국화

아무래도 남들보다 요가 소식에도 밝은 편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도 그랬다. 큰 이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남다른 시범 종목 이벤트가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요기들이 런던의 주경기장 앞에서 기묘한 몸부림을 선보였다. 요가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헌데 그 추진 주체가 이채롭다. 인도가 아니었다. 인도는 도리어 반대했다. 메달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요가의 본디 정신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인도다운 기질이다. 힌두교에도 '선교(Mission)'라는 개념이 없다. 나에게 좋다하여 남에게 (강)권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했던 동방의 윤리와도 차이가 있다. 나와 남의 관계보다는 철저하게 나에게 집중한다. 사회성을 담지한 '君子(군자)'보다는 개인성을 고수하는 '聖者(성자)'의 나라인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러했다. 인도에서 생겨난 국가가 대외 팽창을 시도한 바 거의 없다.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부터 무굴제국과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늘 외부에서 아대륙으로 진출해왔다.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원리와는 좀체 거리가 먼 것이다. 요가와 금메달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요가의 올림픽 진출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전미요가협회는 물론 미국 체육회도 전폭 지원한다. 그래서 올해 올림픽이 브라질의 리우가 아니라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더라면 수월하게 채택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요가 대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는 32개국 대표 100여 명이 참가해 우열을 가렸다. 이들은 요가가 올림픽 종목이 되면 요가 중흥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미국다운 발상이다. 표준화, 대중화, 민주화에서 단연 발군이다.

이미 요가는 대성황이다. 현재 미국의 요가 인구는 2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요가 월간지만 10여 개를 헤아린다. 수강비와 비디오, 요가복, 요가 매트 등 관련 산업은 6000억 달러 규모이다. 요가 강사는 10만 명을 돌파해, 인도의 17만 명을 추격하고 있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미국이 월등히 많다고도 하겠다.

기실 핫요가는 물론이요 하타 요가, 탄트라 요가, 아쉬탕가 요가 등 각종 요가의 명칭 또한 미국에서 고안된 것이다. 현재 미국의 특허청에 등록된 요가만 150여 개에 달하고, 요가원 상표는 2000개를 넘는다. 그래서 수련법의 소유권을 다투는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맥도날드화된 요가(McYoga)의 거두로 비크람 초드하리(Bikram Chowdhary)를 꼽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억만장자로, 핫요가 제국의 건설자이다. 저작권 분쟁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다. 26개의 동작과 두 개의 호흡으로 구성된 1시간 30분의 표준적 수련법을 창안한 원조이다.

자세뿐 아니라 온도(41도)와 습도까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의 비크람 요가 학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한다. 최초의 비크람 요가원이 로스앤젤레스(LA)의 올림픽 대로변에 있다. 마침 내가 살던 집에서 15분 거리였다. 몇 차례 다녀본 적이 있다.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이 뜨거워서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땀을 내고자 하는 인공적인 환경부터가 마땅치 않았다.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이었다.

최근의 논쟁은 "Yoga to the People"이라는 요가 보급 운동으로 촉발되었다. 온도를 낮추고, 수강료는 대폭 인하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덜 힘든 조건에서 요가를 보급하겠다는 취지이다. 허나 비크람은 이들을 고소했고, 손해 배상과 등록 말소를 요구했다. 핫요가는 반드시 자신이 정해둔 동작과 온도와 습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엄연한 '지적 재산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극히 미국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공유보다는 소유에 능하다. 실은 전미 요가 대회를 만들고, 요가의 올림픽 종목 채택 로비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 역시 비크람이다. '요가의 미국화'를 이끈 장본인인 것이다.

반문화(counter-culture)

비크람이 미국으로 건너와 LA에 첫 요가원을 차린 것이 1974년이다. 당시 적지 않은 요기와 구루(Guru)가 미국을 찾았다. 독립 이후 인도는 힌두교와 요가를 억압하지는 않았으되, 딱히 장려하지도 않았다. 세속주의와 사회주의를 양대 축으로 삼아 '근대 국가'를 지향하면서 전통 문화와 민간 문화는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구미에서는 근대성의 대안으로 동방의 종교와 수련법을 주목했다. 특히 196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68 혁명과 반(反)문화의 영향으로 요기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해졌다.

당시 반문화의 추세는 크게 둘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마오쩌둥, 호치민, 체게바라로 상징되는 제3세계 사회주의에 대한 열광이다. 미국뿐 아니라 소련의 '적색 제국주의'와도 척을 지는 비서구 영웅들이 68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에 반해 서구의 물질주의에 반감을 품은 히피들은 개인의 영성을 고양하는 동방 종교에 감응했다.

전자는 세계의 혁명을, 후자는 개인의 혁명을 꿈꾸었던 셈이다. 군자(혁명가)가 될 것이냐, 성자(수도자)가 될 것이냐. 꼭 갈리는 것만은 아니었으되, 방점의 차이는 있었다고 하겠다. 전자의 흐름은 주로 탈식민주의, 탈근대주의 등 대학에 기반을 둔 고급 담론의 변화를 촉발했다. 후자는 시장과 접속하여 '뉴 에이지(New Age)'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낳았다. 웰빙과 힐링 등 '대중문화의 종교화'가 전개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고등 종교와 대중문화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은 비틀즈였다. 당대의 아이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직접 인도를 찾았다. '만트라'와 '구루' 같은 어휘들이 유행하고, 호흡과 명상은 깨달음의 비법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비틀즈가 스승으로 모셨던 마하라시(Maharishi)도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을 누비며 강연 여행을 다니느라 분주했고, 각종 잡지와 TV 토크쇼에서 마하라시를 접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탈혁명, 탈정치 분위기와도 딱 들어맞았다. 저마다 내면과 자아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실 '자기 계발', '자기 관리', '자아 배려' 등 신자유주의의 수사학은 뉴 에이지 운동의 세속화된 후속물이기도 하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동방의 종교를 기민하게 소비하여 68 혁명의 파고를 타고 넘은 것이다. 반문화의 거점이었던 캘리포니아는 다문화로의 전환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만나고, 동과 서가 융합되는 곳이었다.

하더라도 전통 요가의 꼴은 유지되었다. 여전히 신성과의 합일에 도달하는 호흡과 명상이 강조되었다. 비둘기 자세와 고양이 자세 등 각종 포즈를 취하는 것은 요가의 지엽에 그쳤다. 그 말단이 요가의 전부인 양 돌출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몸을 가꾸는데 방점이 찍힌 미국식 요가가 전면화된 것이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이가 마돈나이다. 1998년 발표한 마돈나의 앨범 [Ray of Light]는 3개의 그레미 상을 수상하고, 2000만 장이 팔려 나간 메가 히트작이다. 이 앨범에 실린 오리엔탈 풍 노래에서 그녀는 샨티~샨티~ 산스크리트어를 암송한다. 힌두교와 불교에 심취했음을 알리고, 매일 요가를 수련한다고도 밝혔다. 요가가 MTV와 할리우드의 주류 문화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슈퍼스타 마돈나와 조우함으로써 요가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가꾸는 비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헬스클럽에서 에어로빅을 밀쳐내고 요가가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점차 명상은 줄고, 심박 수를 늘리고 땀을 흘리는 동작들이 강조되었다. 이제는 매트 위를 벗어나 공중에서도 수상에서도 요가를 한다. 어느덧 가장 핫하고 쿨한 피트니스가 된 것이다.

소비 문화

요가는 그 자체로 독특한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공원과 해변에서 수백 수천의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일제히 치솟는 풍경을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다. 야외 요가 수련이 일대 유행이다. 이 새 천년의 문화 현상에는 명품 요가 브랜드 '룰루레몬(Lululemon)'이 한몫 했다.

룰루레몬이 창립한 해가 마돈나의 앨범이 발표된 1998년이다. 현재 북미와 유럽, 아시아 각국에 14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현 CEO 크리스천 데이(Christine Day)는 스타벅스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은 베테랑 경영자이다. <포춘>이 뽑은 '독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CEO'로 등극한 적도 있다. 스타벅스의 '커피로 여는 아침'의 이미지 마케팅을 룰루레몬으로 옮겨와 '건강을 입는 옷'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굳혔다. 탁월하고 노련한 경영자이다.

룰루레몬의 슬로건은 "세상을 평범함에서 구하고 위대함으로 이끈다"이다. "작은 진리를 매주 고객들에게 전하는 기업"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 '이 주의 어록'을 발표하고 있다. 대개 인도 성자들의 잠언들이다. <바가바드 기타>와 <우파니샤드>, <요가 수트라> 같은 힌두 고전의 문구들도 인용한다.

차별화는 매점에서도 이루어진다. 요가 강사로 꾸려진 직원들은 '선생님(Educator)'이라 불리며, 고객은 '내빈(Guest)'이라고 한다. 요가로 맺어지는 공동체, '아쉬람'(Ashram)을 지향하는 것이다. 야외 요가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대부분이 룰루레몬 요가복을 입고 참여한다. 에브릴 라빈도, 브룩 쉴즈도, 케이트 윈슬릿도 모두 룰루레몬을 입는다.

허나 이들이 순전히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며 '룰루레몬 중독자(Lululemon Addict)'를 자처하는지는 의문이다. 엉덩이와 몸매를 예쁘게 돋보이게 해주는 체형 보정 기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한 벌에 100달러가 넘건만, 불티나게 팔리는 까닭이다. 룰루레몬을 입고 요가를 하는 늘씬한 몸매가 어느새 영성적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구별 짓기'의 징표가 된 것이다.

1960년대 반문화의 조류로 출발한 요가가 다문화의 한 요소가 되었다가 이제는 소비 문화의 정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히피가 여피가 되어갔듯, 뉴 에이지가 새 시대를 열어젖힌 것 같지도 않다. 과연 문화의 전파란 토착화를 거치기 마련이다. 고대 인더스 강에서 비롯한 특유의 영성 수련법이 20세기 태평양을 건넘으로써 탈인도화, 탈힌두화, 세속화되었다.

ⓒndtv.com

요가의 재인도화?

2015년 6월 21일, 뉴델리에서 야외 요가 행사가 열렸다. 룰루레몬이 주최한 것이 아니다. 인도가 주도한 첫 번째 '국제 요가의 날'이었다. 3만7000명의 요기 앞에서 모디 총리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70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삐딱한 시선이 없지 않다. '힌두 국가 만들기'의 일환이라고 비판한다. 국가가 앞장서서 전통 문화를 진흥시키는 '國風(국풍)' 운동의 혐의를 두는 것이다. 모디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학교와 군대에도 보급하겠노라 한다. 인도의 소프트 파워라며 대외 홍보에도 열성이다.

유엔(UN) 총회 연설이 상징적이다. 기후 변화의 대안으로 요기적 삶(The Art of Living)을 강조했다. 요가는 본디 산스크리트어이다. 신성과 하나 됨을 의미한다. 동방 식으로 옮기면 인성과 천성의 합일을 뜻한다. 인성을 갈고 닦아 천성을 밝히는 사람, 人乃天(인내천)을 실천하는 이가 요기이다. 요가의 그 다양한 자세 또한 신성과 하나 됨에 이르는 방법, 즉 修身(수신)의 기술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적인 평화의 달성, 해탈에 주력했다. 해방과 변혁이라는 정치적 기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도사에는 '역성 혁명'이 부재하다.

그런데 모디의 연설은 조금 더 나아갔다. '지속 가능한 지도자(Sustainable Leadership)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출했다. 대안적 지도자상을 입안하는데 요기적 삶이 요긴하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지도자'의 핵심 덕목으로는 영성(Spirituality)을 꼽았다. 정치를 통하여 개인과 사회와 세계의 영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 간(International), 세대 간(Intergenerational)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여 조금 더 나은 지구를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고 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해묵은 논쟁을 넘어서, '向上心(향상심)의 고취'라는 정치의 색다른 역할을 제시한 것이다. 언뜻 어디서 들어본 말인 것도 같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했던 100년 전 조선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종교적 선각자의 발화가 세속적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성과 속의 재결합, 재영성화의 징후로 접수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재차 모디의 연설을 동방 식으로 번역하게 된다. '지속 가능한 지도자'란 성자보다는 군자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利(리)'보다는 '義(의)'를 높이는 사람, 욕심보다는 양심을 따르는 사람,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이치를 따지는 사람, 이른바 '大丈夫(대장부)'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개인의 이익에서 출발하는 소인 정치였다. 계급적 이해, 지역적 이해, 성별적 이해 등을 충족시키는 방편으로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의 총합(=일반 의지)을 따른다. 그래서 질적인 판단보다는 양적인 판단을 추수한다. 소인과 군자도 평등하게 대접한다. 정치의 시장화, '합리적 선택 이론'이다. 반면으로 그 집합적 선택에서 초래되는 기회 비용들은 지속적으로 시장의 외부(투표권이 없는 외국과 후세와 자연)에 전가해왔다. 소탐대실을 경계하는 '지속 가능한 지도자'라면 지양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집권 2년차, '요기 총리'를 자처하는 이가 다스리는 인도를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국제 요가의 날'에 한없이 삐딱하기만 한 네루 대학교 학생들의 냉소와 비아냥거림에 마냥 수긍하지만은 않는 것이다. 당장 그들부터가 날이 선 이론서만 읽고 뾰족한 논리만 세울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고 잡념을 덜어내는 몸 쓰기 기술도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듯한 몸, 가지런한 마음을 다지는 방법이 그토록 가까이 있건만, 등잔 밑이 어둡다. 그리하여 小學(소학)와 小乘(소승)에 그쳤던 지난날의 요가도 아니고, 힌두 국가의 국책 사업에 동원되고 있는 국풍 요가도 아닌, 大學(대학)과 大乘(대승)에 값하는 요가로 진화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장차 요가의 재탈환, 재인도화를 가늠해보는 유력한 잣대가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도 주목되는 20세기의 요기가 있다. 스리 오로빈도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마을, 오로빌도 있다. 오로빈도의 사상을 받드는 세계인들이 꾸려가는 '지구촌'이자 '미래촌'이다. 심신단련에 그치지 않고, 대안적인 정치와 경제를 실험하는 창발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인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었다. 당장은 오로빌로 직행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 더 묵혀서 인도 견문의 대미로 삼는 편이 어울릴 것이다. 아직은 해야 할 얘기들이 산적하다. 그간에는 '힌두 민족주의'로 상징되는 21세기의 최신 동향에 집중했다. 이제는 20세기 현대사로 진입한다. 남아시아의 전쟁과 분단을 회감해 본다. 동아시아에 결코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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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물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www.byeong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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