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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시 계절을 부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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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시 계절을 부려놓았다 [문학의 현장] 그때 우리는 유성에 서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 유성기업 등 사회 현안에 주목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들을 주제로 하는 시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프레시안>은 매주 한 편씩 이들의 시를, 그리고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 글을 올린다.

시간은 다시 계절을 부려놓았다


*

그때 우리는 유성에 서 있었다
자유실천위의 깃발을 앞세우고
유성 공장이 있는 허허로운 벌판에서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 깃발과 함께 서 있었다
봄은 아직 일러 아산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늦은 저녁 콩나물국밥 한 그릇씩을 받아들고
농작물이 비워준 비닐하우스에서
옹송옹송 서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이태가 지나
유성사측의 고소고발 징계 압박에
건장한 노동자가 죽음으로 갔다
노동자 분향소가 아산에서
서울 한복판으로 올라왔다
이제 자유실천위의 연대 깃발은
서울 중심 바닥으로 나앉았다
그때의 아산 소도시의 벌판에서처럼
시청 광장 밤바람 역시 차가웠다
옹송옹송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

시간은 다시 계절을 부려놓았다

삼월의 개나리꽃이 피고, 지고,
사월의 복사꽃이 피고, 지고,
오월의 찔레꽃이 피어났다

계절은 수시로 변화를 보이지만
유성자본의 아전인수는 달라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노동자들의 감시와 차별이 개선될 기미는 더욱더 없어 보인다

하얀 박꽃이 유월 달밤을 밝히기 전에,
칸나꽃이 칠월을 뜨겁게 달구기 전에,
해바라기가 팔월 태양을 향해 돌진하기 전에,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은 달라질까

현대자본의 이기심은 배제되어질까
구월의 국화꽃이
시월의 단풍꽃이
십일월의 서리꽃이
십이월의 흰눈꽃이
순결하게 피어나, 피어 나오면
한 노동자의 시린 주검은 비로소
편안한 휴식에 들어갈까

***

아직은 오월,
거리의 수국이 아프게 피어있는 계절

▲ 경찰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노조 유성기업지회 대표자들을 막고 있다. ⓒ금속노조(김경훈)

시작노트

봄 햇살이 들어오는 삼월에 한 젊은 생이 툭 떨어져 내렸다. 이승의 삶이 버거워 툭하고 목숨 내려놓았으나, 다사로운 대지의 품에 안기진 못했다. 춥지 않게 감싸줄 모포 한 장도 없이 여직도 캄캄한 냉동 잠에 놓여 있다.

젊은 노동자는 정말 부질없이 져버렸는가.
져버려 흔적만 남겨졌는가.
아니다. 노동자는 살아있다.
억울한 죽음 용인할 수 없어 열사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긴 세월 차가움으로 살아 싸웠고, 죽어선 뜨거움으로 싸우고 있다.

열사에서 불사조로 활화산으로 뜨겁게뜨겁게 떨쳐 일어나 싸울 것이다. 고통, 분노, 울분, 차별, 감시를 잠재우고 하나의 힘으로 응결시켜 기필코 승리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러니, 그대 숨진 젊은 노동자여!
사계마다 다른 꽃으로 피고지고 피고지다…… 끝내는, 붉은 동백으로 살아내시라. 차가운 밤 벗어던지고 하하하 붉은 꽃숭어리로 태어내시라. 모진 겨울바람 이겨낸 날에, 그대 젊은 동백꽃으로 뜨겁게 피어내시라.

그대 노동자들이여,
그리 되시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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