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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누구 욕할 처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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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선일보>, 누구 욕할 처지인가? [가습기 살균제의 사건의 진실 ⑬] 뒤늦게 관심 가진 언론의 엉터리 보도
지난 10번 째 칼럼 '또 기레기, 홍수종은 가습기 의인이 아니다'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을 규명한 영웅 또는 의인이 아닌데도 엉터리로 의인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 언론의 '기레기'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나는 오랜 기자 생활을 했고 또 지금도 언론인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어 동료 집단을 비판하고 싶어도 주저할 때가 많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는 것은 사회 감시견의 구실을 해야 하는 언론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에 언론 비판의 칼을 다시 들었다.

또 언론 비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대학원 수업 때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의 글 내용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서울 모 대학교 대학원생에게 종강을 앞두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한 칼럼을 한 편씩 쓰라고 내준 숙제를 며칠 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간호사, 영양사들로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이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에 관해 관심이 많을 터이고 미취학 또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이들도 몇 명 있어 소재를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8명의 학생 가운데 무려 3명의 글에서 2008년 의사의 신고를 받은 질병관리본부가 이를 묵살하고 괴질의 원인을 조사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나 방송의 심층 프로그램, 기자 칼럼 등을 통해 이런 내용을 알고 그대로 글에 담았던 것이다.

보건의료계에 종사하는 대학원생조차 상당수가 2008년 질병관리본부가 역학 조사 신고를 묵살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일반 시민들 가운데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거짓을 진실로 아는 이들이 이 순간에도 많겠구나'는 생각을 하면 그 내용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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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한삼희 위원의 삐뚤어진 칼럼

이 괴담의 진원지를 캐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최초의 진원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하는 한 편의 칼럼을 찾았다. 대한민국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2016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의 '한삼희의 환경 칼럼'이었다. 이에 앞서 <조선일보>에 실린 같은 필자의 환경 칼럼 '가습기 비극, 4년 방역 허송만 없었더라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한삼희 논설위원은 기자 생활 30년이 넘는 베테랑 언론인이다. 오랫동안 환경 분야에서 취재, 보도, 논평을 해왔다. 환경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명도도 높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가습기, 논문만 쓰고 앉아 있었던 질병본부"란 제목과 "2008년 괴질 전국 조사 '78명 발병 36명 사망' 논문까지 발표했던 질병본부 실무자들, 3년을 손 놓고 있어 비극 확산 방치…조직 기강 다잡기 필요"란 부제목을 달아 질병관리본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자.

"방역 시스템으로 좀 더 일찍 가습기 살균제 괴질의 정체를 규명해 피해 확산을 막을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가습기 자료들을 뒤지다가 뜻밖의 논문과 마주치게 됐다. 2009년 3월 대한소아과학회지에 실린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이다. 2006년 초부터 원인 미상의 어린이 간질성 폐렴에 주목했던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수종 교수 등 15명이 저자로 돼 있다. (…) 그런데 문제의 논문 저자 명단에 당시 질병관리본부 바이러스팀장과 해당 팀 연구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두 명은 환자 폐 조직, 분비물 등을 분석해 원인 물질을 찾는 역할을 맡았던 듯하다.

(…) 만일 2008년 소아과학회와 질병관리본부의 전국 현황조사 직후 정밀 역학조사가 이뤄졌다면, 2009년 이후의 급속 확산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160년 전 영국 의사 수준도 못 됐다. 무엇보다 '78명 발병, 36명 사망' 사태를 놓고도 어떻게 그냥 넘어갔던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윗선에 보고가 안 됐던 것인지도 궁금하다. 실무자 실책도 있었겠지만, 개인 탓을 따지기 앞서 조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다시 드러난 질병관리본부의 모습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질병관리본부 실무자 논문 쓰기에 매달렸다는 비판은 심각한 사실 왜곡

'질병관리본부는 원인 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논문 쓰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식의 제목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환경 시민 단체, 그리고 일반 국민을 분노케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를 본 사람이라면 "아니 생명이 경각에 달려 원인 규명에 밤낮을 가리지 않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논문에 매달리다니"라고들 모두 생각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는 한삼희 논설위원이 전후사정을 전혀 모르고 쓴 글이다.

교수나 연구자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이를 잘 알겠지만 논문은 주저자를 비롯한 한두 명이 작성하고 실험이나 연구에 관여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을 모두 논문 저자에 넣는다. 그래서 어떤 논문은 저자가 30~40명씩 되기도 한다. 한 위원이 문제 삼은 논문에 15명이 저자로 돼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질본 관계자는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분석에 도움을 줘 홍수종 교수가 이름을 올려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국제 학술지(SCI)와 국내 학술지에 여러 차례 논문 저자로 올라가 있지만 이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수집한 데이터를 제공한 것 때문이다. 실제로 논문을 작성한 적은 없다. 저자 등재 수락과 논문 내용에 대한 검토 또는 감수만 잠깐 했을 뿐이다.

"가습기 자료들을 뒤지다가 뜻밖의 논문과 마주치게 됐다"고 밝힌 2009년의 <대한소아과학회지> 논문은 오래 전(2011년)부터 이미 언론에 소개돼 왔다. 2015년 초에 나온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백서>에도 그 내용이 들어 있다. 마치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것을 한 위원이 보물 찾듯이 찾아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 논문에 대단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5년이 지나서 뜻밖의 논문과 마주쳤다는 것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자기고백이나 다를 바 없다.

한 위원은 또 칼럼에서 "만일 2008년 소아과학회와 질병관리본부의 전국 현황 조사 직후 정밀 역학 조사가 이뤄졌다면, 2009년 이후의 급속 확산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대학원생들이 제출한 과제 글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하지만 전국 현황 조사는 소아과학회가 했고 질병관리본부는 소아과학회의 요구에 충실하게 그들이 건네준 검체에 대한 바이러스 분석을 해주었을 뿐이다.

재난이나 재앙 사건 때 정확한 보도가 언론의 생명

모임에 참여한 질병관리본부 실무자는 크게 보면 질병관리본부 소속이지만 거의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국립보건연구원 소속이다. 역학 조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서에 속해 있다. 따라서 역학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소아과 의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소아과 홍수종 교수 팀은 논문 어디에서도 정부 역학 조사가 시급하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국립보건연구원 실무 책임자는 당시 사태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인식을 바탕으로 역학 조사와 연결하지 못한 부차적인 책임이 있는 정도다. 이 또한 그가 충분히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인식하지 못했는지 소아과 의사들이 그런 인식을 그에게 심어주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

재앙이나 재난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이 정확하고 깊이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한 위원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관련해 우리 언론이 보인 보도 태도에 실망할 때가 종종 있다. 최근 방영된 한 종합 편성 채널 심층 프로그램에서는 2008년 소아과의사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국립보건연구원 실무 책임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마치 죄인 쫓듯이 뒤쫓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본질이 아닌 곁가지에 매달리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우리 대다수 언론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지난 5년간 사실상 외면했다는 표현을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로 꾸준한 관심과 의미 있는 보도를 이어오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각 언론사는 물론이고 언론 전체도 그런 반성을 정직하게 해야 한다.

이런 반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프레시안> 정도다. 이 두 언론사 관계자에게는 지난 5년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환경 피해자 대회'에서 3년 전 감사패를 전달한 바 있다.

<경향신문>에서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열심히 다뤄온 기자 가운데 한 명인 김기범 기자는 최근 세명대학교 대학원생이 만드는 <단비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이에요. 검찰 수사로 이 문제가 지금이라도 조명 받는 것은 다행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사회 전체와 언론이 이제 와 검찰이 흘린 정보에 집중하는 게 우습게 느껴지죠.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이며 제대로 된 언론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반성하고 미안해야 할 언론인들은 침묵하거나 엉터리 보도를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온 언론인이 되레 반성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진 2011년부터 피해자 실태와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한 수십 편의 글을 6년째 기고해왔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 총괄편집인을 맡았으며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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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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