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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뭘 했다고 개헌을 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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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뭘 했다고 개헌을 논해?"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개헌 생각
개헌 바람이 불고 있다. '87년 체제'가 한계에 달했으니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의 방향은 유력한 여권 정치인인 유승민 의원의 최근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민주는 조금 해 봤지만 공화는 별로 못했다. (…) 투표해서 이기면 자기 멋대로 하는 민주주의를 벗어나 공화주의로 가야 한다."

권력 독점형 대통령제에서 어떤 형태로든 분권형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니 서양 정치사의 맥락에서 공화(republic)를 이야기했겠지만, 동양에서도 공화(共和)는 유구한 전통이 있는 말이다.

주(周)의 여왕(厲王)이 폭정을 거듭하다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쫓겨났다. 그러자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왕을 대신해 함께 정무를 봤다고 해 '공화(共和)'라 하고 이를 당시의 연호로 썼다(<사기>). 이런 사례가 고대 로마나 근대 서구의 정치 제도와 비슷해 'republic'을 '공화'로 번역하게 된 것이다. 두 단어의 공통점은 군주제와 대립하는 개념이라는 데 있다.

오늘날 군주(君主)는 민주(民主)로 대체되었다. 공화의 역사적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주와 공화는 더불어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군주제의 주권자는 오직 군주뿐이기 때문에 정치도 군주 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군주제에서 공화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반면 모든 민주제는 공화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제에서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주권자이고 정치도 그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공화가 민주인 것은 아니다. 주의 공화제도, 고대 로마의 공화제도 민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귀족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과두제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벗어나 공화주의로 가야 한다'는 말은 위험해 보인다. 자칫 직접적인 민의와 상관없이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분점해 자기들끼리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체제를 지향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 앞에 '투표해서 이기면 자기 멋대로 하는'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나 이건 '네모 난 동그라미' 같은 말이다. 투표에서 이겼다고 멋대로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모순된 말을 하는 까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과거의 왕을 같은 '권력자'나 '통치자'로 혼동하는 데, 다시 말해 민주와 군주를 혼동하는 데 있다.

우리가 종종 대통령과 왕을 혼동하는 것은 문학적 비유가 아닌 한 국가주의적 역사관에 기인할 때가 많다. 왕을 과거 국가의 지도자로, 즉 오늘날 대통령의 선임자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가(왕조)가 번창할 때가 가장 발달한 역사적 국면이고 국가가 침체할 때가 가장 퇴보한 국면이다.

따라서 빼어난 군주(지도자)가 있었던 때가 상승기이고 군주가 무능해 나라가 흔들릴 때가 하강기였다. 이처럼 왕과 민주적 지도자를 혼동하는 사람들은 겁도 없이 대통령에게 역사 속 전제 군주의 리더십을 주문하곤 한다. 또 그런 태도는 종종 왕 같은 '절대적 지도자'를 바라는 일부 왜곡된 민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역사와 권력에 대한 이런 태도는 민주적 관점에서 볼 때 난센스다. 굳이 과거의 왕과 같은 존재를 현대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군주제에서는 왕 한 사람만이 주권자이고 나머지 모든 백성이 그의 노예였다. 반면 민주제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이다. 근대 들어 민권 사상이 발달하고 민중이 성장함에 따라 왕의 주권을 빼앗아 국민이 행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왕'인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자가 비민주적 리더십을 보인다면 그것이 민주만 있고 공화가 없어서일까? 그게 아니라 민주적 공화의 파트너가 될 수 없는 집단이 1987년에 살아남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심지어 권력을 놓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민주가 국민 주권이자 국민 권력이라고 할 때 이를 부정하거나 이에 적응할 수 없는 세력은 정치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 왕이 군주의 전제권을 부정하는 세력을 용납할 수 없었듯 국민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안타깝게도 이 원칙을 관철시키지 못한 채 출범해야 했다.

우선은 군부 독재 세력과 그 동조자들이 87년 체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고, 기왕 6.29 타협으로 그것이 물 건너 간 다음에는 야권 통합으로 선거에서 이기고 5공 청산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좌절되고 3당 합당으로 이어진 것이 87년 체제의 진짜 문제점이다.

따라서 87년 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면 그 책임은 통렬한 반성과 속죄 없이 민주 세력을 가장하고 권력 장악에 집착해 온 군부 독재의 후예들과 그들을 단죄하고 청산하지 못한 채 타협을 통해 스스로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간 보수 야당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지금 87년 체제의 근본적인 한계는 뒤로 한 채 기득권 수호를 위한 '공화제'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개헌은 여차하면 어떤 미사여구가 붙더라도 과두제적 공화제로 가기 십상이다. 가까이는 6월 항쟁, 멀리는 4.19 혁명을 경험했던 우리 국민이 그런 '민주 없는 공화'를 좌시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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