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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국민 탓할 때, 오바마는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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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국민 탓할 때, 오바마는 논문을 썼다

[서리풀 연구通] 오바마의 보건의료 개혁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주, 저명한 학술지 <미국의사협회지(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JAMA)>에 발표된 논문 한 편이 큰 화제가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단독 저술한 "미국의 보건의료 개혁 : 지금까지의 진전과 다음 단계"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된 것이다. (☞관련 자료 : )

전문 학술지에 현직 대통령의 논문이 실린 것은 미국에서도 처음이라고 한다.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도 재임 기간 중 각각 JAMA와 Science에 기고문을 실은 적이 있지만 이 때는 논문이라기보다 '의견'의 성격이 강했다 (☞관련 기사 : )

국내 소셜 미디어에는 '바빠서 논문 쓸 시간이 없다'는 핑계가 이제 더 이상 통할 수 없겠다는 연구자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네가 미국 대통령보다 바쁘냐?"라는 질문에 감히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나!

논문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실려 있을까?

글은 왜 보건의료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바마가 집권했을 당시 미국은 한창 경기 침체 상태였고 그 와중에도 국내 총생산의 16%를 보건의료에 쏟아 붓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도 미국인의 건강은 그저 쿠바와 비슷한 수준인데다, 심지어 7명 가운데 1명은 건강 보험이 없는 상태였다.

어린이 건강 보험 법, 담배 규제법 등 일련의 개혁 조치들이 이어졌지만, 근본적 해결의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는 보다 포괄적인 보건의료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10년 법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처음 제시한 개혁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그나마도 저지하려는 반대 세력의 공격이 60차례 이상 있었다. 법안 통과 이후에도 연방 정부 폐쇄 등 극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관련 기사 : "미국, 디모크러시가 아니라 클러지오크러시")

▲ [그림 1]. 미국에서 건강 보험이 없는 사람의 백분율(1963~2015년).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적정 부담 의료법(Affordable Care Act, ACA)이 시행되었는데, 오바마의 분석에 의하면 그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2010년 4600만 명, 전 국민의 16%에 달하던 무보험자가 2015년에는 2900만 명, 9.1%로 43%포인트나 감소했다([그림 1]). 이는 50년 전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제도가 시작된 이래 가장 큰 감소폭이다.

(메디케이드는 빈곤층을 위한 의료부조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의료급여 제도와 비슷하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적용되는 사회보험 프로그램이다.)

기존 보험 가입자의 보험 적용도 확대되어, 예방 서비스, 특히 여성의 피임약 처방이나 가정 폭력 상담 같은 서비스도 건강 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고 본인 부담액 상한제도 실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의료 제공자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개별 서비스 양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 결과와 연계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비용은 절감하면서 진료의 질은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오바마는 평가했다).

약물 부작용이나 병원 감염 같은 합병증 발생도 2010년에서 2014년 사이 17%포인트 감소했고, 메디케어 환자들의 퇴원 후 30일 이내 재입원율도 2010년 19.1%에서 2015년 17.8%로 감소했다. 경기 침체를 비롯한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보건의료 개혁이 이러한 개선에 기여한 것이 분명하다고 논문은 결론내리고 있다.

(JAMA는 오바마의 논문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논평 세 편도 함께 실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직 관료, 보수 싱크탱크 출신의 연구자, 사회정책학/경제학 교수들이 참여한 논평은 오바마의 개혁에 대해 조금씩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다만 한 가지 점에서는 모두 동의했는데, 개혁의 일차적 목표, 즉 의료 보장을 받는 인구의 증가는 확실하게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비용 절감 등에서는 비판적 견해가 우세한데, 개혁 그 자체보다는 경기 침체나 신의료 기술 확산의 둔화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오바마는 이러한 성과를 (학술 논문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 표현인) '자랑스럽다'고 밝히면서 남은 과제를 제시했다. 아직도 의료 보장 제도에서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과 메디케이드 확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의회의 노력이 필수적이고, 또 치솟는 의료비를 통제하기 위해 처방 의약품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학술 논문'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자료에 대한 실증 분석과 선행 연구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고 학술 논문의 '틀'은 갖추고 있지만, 근거 자료가 불충분한 '주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만일 일반 연구자가 이런 종류의 논문을 제출했다면 결코 게재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정치적 발언을 과학으로 포장한 JAMA 측을 적극 비판했다. (☞관련 기사 : , )

나는 논문을 읽으면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우선, 이것이 과학적, 중립적 언어로 포장된 고도의 정치적 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는 우려가 들었다. 객관적인 수치들을 나열하는 가운데에서도, 오바마는 재임 기간 내내 개혁안을 방해하는 의회(사실은 공화당)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시간과 노력을 보건의료 체계와 경제를 향상시키는 데 썼으면 훨씬 상황이 나아졌을 것이라는 깨알 같은 한탄을 빼놓지 않았다.

또 양당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정책 변화도 매우 어렵다면서, 이런 방해를 통해 공화당이 얼마나 이득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공화당 주도 지역에 거주하는 400만 명의 주민들은 건강보험 없이 사는 고통을 지게 되었다는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러한 접근은 데이터에 기반을 둔 논리적 추론과는 거리가 멀고, 논문이라는 '포장'으로 사람들을 호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동시에, 민감한 정책 이슈를 학술 언어로 '포장'하여 전문가 집단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감각을 가진 정치인이라니, '부럽다'는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보건의료가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이의 권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거나, "제약회사 같은 특정한 이해집단의 자금이 정치에 끼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모두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해도, 아예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 (혹은 할 생각도 없는) 정치인에 비해서는 훨씬 낫지 않을까?

똑같은 '바이오시밀러'라도 글로벌 시장 창출이나 경제 성장 동력으로서가 아니라, 비싼 특허 의약품을 대체하여 국민 의료비 부담을 절감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술하는 문장을 읽다 보면, 내가 가진 투표권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 쓴 그깟 논문 한 편을 읽고 투표권의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한다면, 그건 논문 탓이 아니라 무더운 날씨 탓이겠지? (☞관련 자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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