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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잉태하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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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잉태하는 땅 [문학의 현장] 사드 배치 반대 집회 낭독시
생명을 잉태하는 땅

보이지 않는 허공
철조망도 장벽도 없는 허공
보이는 것은 맑은 하늘과 솜털 같은 구름
햇살은 여과 없이 내리 쬐이고
논두렁 밭두렁에서 푸른 콩 한 포기 키우고
하우스에서는 달콤한 내음으로
황금빛 참외가 탐스럽다.

사드가 온다고 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냉전의 대립이
보이지 않는 전자파가
허공에 철조망을 치기 전까지는
여기는 생명의 땅이다
여기는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다
여기는 아웅다웅 이웃과 살 부비며 살아가는 고향이다

별을 보고 들로 나가
달을 지고 집으로 오던 고된 세월에도
참외넝쿨을 걷어내면
돈줄이 걷히던 기막힌 농사일에도
절망하지 않았다.
땅을 믿었고 생명을 믿었기 때문이다.

절망하지 않았다.
올해 흉년이 내년에는 풍년이라는 믿음으로
희망의 넝쿨은 걷어내지 않았다.
사드가 배치된다고 하기 전까지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고 하지만
꿀벌이 살지 못하면 사람도 살 수 없는 땅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전자파 철조망에 걸려 죽거나 떠나버리면
사람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는
죽음과 폐허의 땅이 된다는 것을
말 못하는 미물들도 아는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전쟁의 공포를 팔아먹고 사는 정치인과
전쟁의 위협으로 무기 팔아먹고 사는 무기상들은
사드의 전자파가 괜찮다고 하고
사드가 몰고 올 전쟁 위기를 괜찮다 하고
사드로 인한 경제 위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며
괜찮다고 떠들어댈 뿐이다.

여기는
천 년을 살아온 땅
여기는
천 년을 살아갈 땅이다

이 땅 어디를 가도
가시 돋친 철조망은 없었다

여기 보이지 않는 핵미사일과
여기 핵폭탄의 냉전과
여기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포연의 검은 구름이
여기 땀과 눈물이
여기 태어나지도 못한
평화의 생명이 미라로 울부짖는다.

여기는 한반도
여기는 성주
그 별빛이 아기의 눈망울을 닮은 성주다
여기는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작 노트

7월 30일 성주 농민이 참외밭을 갈아엎었다. 농민이 자기의 밭을 갈아엎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걸고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이다. 사드 고고도 미사일이 경북 성주에 온다는 발표가 나고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주 군청 앞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별을 보고 나가 달을 지고 돌아오는 농사 일, 성주 농민이 참외농사로 돈을 잘 버는 것 같아도 참외 넝쿨이 걷히면 돈줄이 걷힌다고 할 정도로 비료값 농약값, 비닐값을 빼고 나면 실제 도시에서 막노동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은 일도 아니다. 농사일은 마치 도박을 하듯이 흉년이 들 수도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참외밭을 갈아엎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드가 배치된다는 확정 발표가 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투쟁의 길을 걷고 있다. 성주는 농민에게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다. 전자파로 꿀벌들이 살 수 없으면 참외 농사도 지을 수 없다. 참외 꽃에 벌들이 수정을 해야 하는데 사드 전자파에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날, '생명을 잉태하는 땅'에 대한 시를 썼다. 이제는 성주는 평화의 성지라고 스스로 선언하고 있다. 거센 성주 농민들의 저항에 제 3후보지에 대한 연막을 치고, 지역 내 갈등을 부추기고 있지만 성주는 단호하다. 한반도 어디에서도 사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총칼을 들고 진압하는 군인은 없지만, 탱크와 공수부대는 없지만 성주는 80년 5월의 광주 같은 분위기다. 면단위 곳곳에 현수막이 걸렸다. 전쟁광들과 무기상인들과 전쟁의 위기를 부추기는 정치인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사드 반대에는 보수도 진보다 없다. 전쟁반대에는 늙은이도 젊은이도 없다. 핵반대, 전쟁반대에는 종교도 초월하고 있다. 부녀회가 나서고 청년회가 나선다. 교회와 절과, 천주교회가 나서고 유림들까지 삭발을 결심하고 있다. 8월 15일 815명이 삭발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성주는 생명을 잉태하는 땅이다.

(이 글은 8월 15일 이전에 작성, 낭독됐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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