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을 추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일 양국은 연내 타결을 목표로 11월 1일부터 실무 협의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 핵 위협이 고도화되고 일본과 군사 정보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져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체제(MD)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미국 MD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은 'MD를, 미-일 동맹을 위한 협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일 동맹은 한-미-일 3자 MD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2009년부터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MD의 명시적인 대상인 북한, 잠재적인 상대인 중국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을 MD 네트워크에 편입시키면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방어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흡수 통일'을 꿈꾼, 그래서 미국과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이명박 정부는 이에 적극 호응했다. 하지만 비밀리에 추진하던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이 2012년 6월 발각되면서 무산됐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러한 움직임은 기어코 재연되고 말았다.
2014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한-미-일 군사 정보 보호 약정을 체결하는 '꼼수'를 부렸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미국을 끼워 넣어 반발 여론을 희석하려고 했고, '약정' 방식을 택해 국회 비준 동의도 피해갔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는 졸속적이고도 굴욕적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이 역시 한일 군사 협정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그리고 올해 말에는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까지 체결하려고 한다. 매년 12월마다 외교적으로 큰 사고를 치려고 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되는 만큼 안보 실용주의 차원에서 일본과의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민구 장관 역시 "우리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논의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3자 MD는 한국 방어에 실효성이 없다. 2013년 6월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한 보고서에도 "기술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미사일이 저고도로 수분 내에 날아와 3국 미사일 방어 공조에서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나와 있다.
반면 한국이 3자 MD에서 최전방 척후병 역할을 맡아주면 일본과 미국의 방어적 실효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미사일 요격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그래서 조기 경보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각각 동해와 태평양 건너에 있는 일본과 미국으로서는 한국에서 조기 경보를 울려주면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그는 8월 2일 한국국방연구원(KIDA) 포럼에서 "정보가 분산되어 있으면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기 위한 공통 상황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어렵다"며, "상황 발생 시 효과적 대응도 어려우므로 조기 경보 분야의 정보 공유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및 3자 간 MD를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이다.
이처럼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은 'MD를, 미일 동맹을 위한 것'이다. 우리에겐 안보적 실효가 없는 셈이다. 반면 우리가 떠안게 될 전략적 부담은 대단히 크다. 일본의 군사 자산에 한국 안보를 의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우경화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또 중국 봉쇄를 겨냥한 미-일 동맹에 편입될수록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의 앞날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을 다시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이명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던 이명박의 대북 정책은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질환으로 쓰러지면서 방향을 잡았다. 흡수 통일로 말이다. 그리곤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미국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일본의 군사 협조가 필요하다며 양국 간의 군사 협력을 주문했다.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통일을 도박이나 주문처럼 언급해온 박근혜는 한술 더 뜨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혹자들은 '박근혜가 아무것도 안 하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자해적인 조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 이후에는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과반수를 넘기고 있다.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서와 함께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치는 우리가 하기 여하에 따라 복원할 수 있다. 하지만 외치는 되돌리기가 훨씬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근혜는 최소한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은 차기 정부에게 넘기는 게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그리고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히 국회에 거국 중립 내각 구성을 요청하고 본인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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