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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박정희·근혜의 '주술'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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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박정희·근혜의 '주술'에 걸려 있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교주와 독재자가 남긴 암묵의 상흔
네이처 리퍼블릭이라는 회사의 비리로 시작됐다. 그 연결 고리는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힘겨루기를 거쳤고, 이화대학교의 자존심이 그 흐름에 가세했다. 급기야 한 방송국이 제시한 작은 휴대용 컴퓨터로 인해 본격적인 영계와 인간계의 드라마가 펼쳐지게 됐다. 그 와중에 결코 허물어지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철통 지지율이 무너지고 모든 국민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심정적 지지가 휴대형 컴퓨터 하나로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니, 과학 기술과 이성이 개인의 막연한 신념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부터 내려온 우주의 기운은 사적 관계를 통해 대통령과 국민의 일상을 규정하고 있었고, 대를 이은 유사 종교의 계시 속에 실질적 대통령은 교주의 딸이었다. 평소 과묵한 언사나 사람 대면을 좋아하지 않는 현 대통령은, 진중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아바타에 가까운 독재자의 딸 그대로를 보여줬는데, 이는 현실 공간에서 그 무엇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삶의 의외성을 새삼 일깨워준 일종의 희극이었다.

드라마의 주역인 교주와 독재자의 딸들, 그들은 그동안 주변의 고위 공무원들은 물론 새누리 국회의원들과 주류 언론에 의해서 철저히 변호되고 연출되어 왔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대통령까지도 포함, 검찰 수사 대상이 되었다. 물론 검찰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믿는 이는 별로 없다. 더욱이 국민의 하야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통 개각 속에 총리 내정자가 등장했다. 최근 대통령 담화 내용은 '내치와 외치 분리'라는 총리 내정자의 입장과도 달랐다. 앞으로도 정국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프레시안(최형락)

분노의 모습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깊은 사려, 상황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 등으로 보여졌던 대통령의 모습이, 실제로는 영계와 소통하고 혼을 거론하며 우주의 기운을 통해 이뤄진, 일반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황당한 무속에 가까운 형태였다니, 모두 아연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민 분노에 결정적 기여를 한 최순실 딸의 이화여자대학교 부정입학 의혹과 특혜는, 뼈 빠지게 일해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알바'를 하며 취직과 승진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식과 성실한 노력이란 무의미함을 맛보게 했다.

이는 가족도 없이 열심히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위엄 있는 대통령이 간혹 던지는 말 한마디에 의미와 무게를 부여하며 찬양하고 환호했던 국민들이 느낀 허탈감이었다. 이것이 성실히 노력하면 최소한 그에 상응한 대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철저히 우롱당한 배신감으로 이어진 것은 타당하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거국적 분노는 매우 정당하다.

그런데 굳이 쌍용차나 한진 중공업 사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린 학생들 몇 백명이 타살에 가까운 모습으로 수장되는 모습을 보고도, 공권력의 물대포에 의해 사람이 죽어가도, 역사를 비웃듯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비공개로 만들어도, 한반도 전쟁 위험을 높이는 정책이 무리하게 채택되도, 경제가 무너져도, 꿈쩍은 커녕 심지어 조롱까지 하던 국민도 있었다. 어찌 보면 늘 그러하듯 분노하던 이들이 분노했을 뿐이다. 정치자금 몇 천억은 이미 노태우 때도 있었다. 정치권력의 각종 비리나 구조적 문제는 결코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대한 강고한 기반 지지가 무너지고 전 국민의 분노가 등장했다.

그 점에서 지금의 거국적 분노는 공공성이나 민주질서 수립을 위한 분노라기보다는 허탈감과 배신감, 즉 개인적면서 동시에 이 사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한 국민의 열기로 인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회였다면 삼백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수장되었을 때 이런 거국적 국민 분노가 등장했어야 했다.

그 점에서 지금의 국민 분노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교주와 독재자들이 우리 내면에 심어놓았던 것, 그들이 기생하고 있던 그 암묵적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현 상황은 또 다른 형태의 교주나 독재자가 국민들의 이런 부분을 만족시켜준다면 의외로 허망하게 끝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암묵적 자기검열

일상의 대화를 포함해서 우리 삶엔 암묵적 부분이 많다. 글이나 말이라는 형식을 통해 서로 명확히 전달 가능한 명시적 지식이 강조되는 근대사회에 있어서도 암묵적 지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말과 글의 이면과 행간에 담겨 있으면서 '각자의 내면에 침투하여 서로 부지불식간에 공유할 수 있는 의미'이기에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다보니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서도 가장 극복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정치꾼들은 사회가 지닌 암묵적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고, 일상의 사기꾼들은 개인의 암묵적 지식을, 종교 장사치들은 집단과 개인의 암묵적 의미를 적절히 혼용하여 활용한다. 분야를 떠나 사기꾼의 특징은 우리가 공유하는 암묵적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굳이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지레짐작이라는 암묵적 지시로 상대방을 착각하게 만들어 행동을 유발시킨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말이 필요 없이 분위기로 죽여줄 때, 사람들은 환호하고 열렬히 지지하게 되며 상대가 주는 메시지를 쉽게 내면화한다. 감성적으로 작동하는 이것은 이성에 근거해 명시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교주와 독재자는 초기에는 말이 많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짓, 눈빛, 아니면 분위기가 담은 암묵적 지시를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굳이 말이 필요하면 가까운 주변 인물을 통해서 전달식으로 이뤄진다.

카리스마로 불리는 이런 암묵적 암시나 통제야말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는 물론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통치 수단이다. 일반 종교 집단에서도 이를 통해 사람들을 길들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를 위한 노력은 정치인들의 각종 포장된 이미지 연출로 나타난다. 독재정권 시절의 대한뉴스라는 홍보물이 심은 암묵적 영향은 60대 이상의 사회구성원들에게 지금도 작동하도 있다. 현 대통령이 아무 말하지 않음으로서 우리 스스로로 하여금 자신을 검열하고 비판하며 무릎 꿇게 한 자기검열 방식도 대표적인 암묵적 통제 방식이다.

국정운영자들에 의한 암묵적 대국민 최면은 이미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시작되었다. 4대강 국책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22조가 넘는 막대한 국가 예산이 토목건설 대기업과의 유착 속에 부실 공사만을 남긴 채 단 몇 년 만에 사라졌고, 해외자원 개발이란 명목으로 각종 부실 사업이 국가 예산을 탕진했으나, 국민은 분노하기보다는 여전히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이번 정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교주의 딸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청와대와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스스로 몸을 낮추었고 대기업들도 알아서 엎드렸다. 이렇게 사기업화된 국가는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국가정책마저 그들의 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쏟아져 나왔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성과 상식의 사회

그러나 정치나 사회 문제 변화에 있어서 투명한 공론화 과정이 필수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지금의 혼란 정국을 바로 잡는 과정에도 필요하고, 또한 우리사회가 지금과 같이 전근대적 형태로 국내외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요구된다. 특히 정치 문화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철통 지지가 아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지지율이 자리 잡는 것에도 필요하다. 이제 냉정한 이성과 상식을 되찾아 다시 한 번 사회와 미래를 긍정적으로 풀어갈 때다. 누구라도 뚜렷이 드러난 권력의 잘못된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반대나 시정 요구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드러난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 비리 사례처럼 사건을 조사해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사안별 접근은 그런 불미스런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이면의 구조와 문화를 놓치게 한다. 생각해보면 이번 국정농락과 이에 따른 국민 분노의 저변에는 국사독재 이후 끊어졌다고 생각되던 정치 권력의 일방적인 횡포들이 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이후 암묵적으로 내면화하면서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사교에 빠진 독재자의 딸이나 그녀를 이용해 국정을 농락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교주의 딸 및 관련된 자들의 횡포만이 아니다. 이들의 행태를 뒷받침한 새누리당과 보수 주류 언론에 의한 사회 기조의 붕괴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난 4년간 망가뜨린 수많은 국가 기조와 국정 현안들의 재검토와 사회 전반의 건강성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은 이번 국민 분노에서 드러났듯이, 해방 이후 위선자들이 우리에게 심어 놓은 암묵적이고 감성적인 지점이다.

정치는 대중을 따른다. 정치적 혼란 속에 권력 유지를 시도할 기득권들의 연대가 분명한 현실을 앞에 두고, 건강한 사회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민주사회나 공공성보다는 권력과 돈의 암묵적 권위 속에 개인 이해 관계의 감성적 차원에서 발언하고 움직이는 국민을 어떻게 변화시켜 깨어있는 민주시민으로 이끌어 낼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 시대의 종언

과거와 같이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이 없다면서 한탄하는 이들도 있다. 그 점에서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등의 시대는, 자의건 타의건 암묵적 감성으로 만들어지거나 선택된 지도자가 나라를 이끄는 시대였다. 하지만 21세기 건강한 한국사회를 위해서라도 이번 국민 분노는, 암묵적 이미지를 통해 형성되는 카리스마의 인물보다는 이성과 상식의 평범한 인물이야말로 좋은 정치인이라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필요가 있다. 87년의 행동이 밖을 향했다면, 이번엔 우리 안을 향한 외침도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허구의 낡은 카리스마 시대는 끝내야 한다.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인이 아니라 평범한 상식과 이성을 지닌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사회가 되어야 더 이상 암묵적으로 각종 기득권을 휘두르는 친일 기득권이 우리사회를 이끄는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 그래야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적 상황에서 국민의 분노가 거국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야 너와 나, 보통 사람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끝으로, 국민을 자신들을 위한 개, 돼지로 만드는 권력집단의 암묵적 횡포와 시도에 저항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스스로의 생각과 선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기다. 무심코 그냥, 적당히, 다들 그러니까, 혹은 좋은 것이 좋으니까, 더 나아가 노력해도 안될 것이기에 등과 같은 여러 이유로 생각 없이 저들의 암묵적 지시를 수용하기보다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이나 선택에 대하여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지'라는 잠시 동안의 멈춤 내지 알아차림을 통해 개인 삶과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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