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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이후, 정치에서 '압축성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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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이후, 정치에서 '압축성장'은 없다 [프레시안 뷰] '시민의회', 백마 탄 초인 아니다
'시민의회'와 관련해 여러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제로 우리 사회가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입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 DJ DOC의 공연과 여부에 대한 논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어에서 여성혐오적 표현을 놓고 벌어진 논란들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한 논란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식, 인권, 젠더 등과 관련된 여러 목소리들이 현장에서 주장되고, 논의되고, 논박되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대통령 직선제'만을 주장했던 1987년에 비해, 30년 뒤 우리의 민주주의는 또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민주주의는 본성상 시끄러운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누구나 표출하고 폭력이 아닌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체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와 병립할 수 없습니다.

'시민의회'와 관련해 최근 여러 논의가 있었고, 몇 가지 사건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의 생각도 조금 보태볼까 합니다.

추첨으로 뽑은 시민의회는 문제가 없다?

우선, 와글이 시도한 '시민의회'는 다소 성급한 실수였습니다. 물론 단순한 실수는 아닙니다.

그동안 와글이 기존의 대표제 정치체제를 대체해보겠다는 시도를 해 왔는데,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탈정치 혹은 반정치적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점은 다소 우려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정치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잊은 듯 합니다. 괜찮습니다. 실수는 바로 잡으면 됩니다.

오히려 최근의 시민의회와 관련한 논의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지식인들의 말입니다. 지식인들은 시민들 사이의 논쟁에서 주장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의 의미를 적절히 해석하고 풀어냄으로써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시민의회의 개념이나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자의적으로 말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와글이 시도했던 시민의회는 선출형인데 이를 추첨 방식으로 바꾸면 문제가 없으며 이 시민의회가 국회를 견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능합니다. 다만, 이 시민의회가 헌법기관인 현재의 두 대표기구(대통령/국회)와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합니다.

촛불 이후의 상황에서 시민의회가 국회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헌정적인 위상의 부여가 필요합니다. 법적 위상이 없는 시민의회는 기존의 대표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헌정체제를 위협하거나 포퓰리즘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사법부의 상호 견제체제에서 '대표기구'로서의 시민의회는 새로운 견제장치가 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통령과 국회는 이 대표기구의 순수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서로 상대를 견제하는 도구로 삼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 기구는 기존의 3각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체제가 더 나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가 어떠한 형태일지 저는 아직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보다 충분한 논의를 필요로 하고, 다수의 인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특정한 법안이나 예산상의 문제를 다루는 수준을 넘어서 기존의 헌법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의회가 헌정체제에서 상시적으로 존재한 경우는 아직 전례가 없어 보입니다. 스위스의 경우는 시민의회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인민이 스스로 수립한 대표기구가 법률 밖에서 시작해서 나중에서 헌정체제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은 혁명기에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제3신분의 대표들이 자신들을 '국민의회'로, 동시에 '제헌의회'로 선언한 사례가 바로 그렇습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을 선언한 식민지 대표들의 '대륙 회의'는 영국 헌정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 인민의 다수가 바라는 것이 기존의 대표제 민주주의를 혁명적으로 폐기하고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대표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표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 보완적 장치가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논의가 '시민의회'의 위상과 역할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의회'는 백마 탄 초인이 아니다

이 모든 가능성 가운데, 저는 오히려 '시민의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를 가장 경계하고자 합니다. 가령, 무작위 추첨을 통해 구성된 시민의회에서 '처음에는 전문성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곧 괜찮은 결론을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민이 직접 구성하는 새로운 정치주체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낙관주의를 표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을 갖는 것과 책임질 수 없는 주장을 피력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시민의회'가 참여민주주의인지, 직접민주주의인지, 심의민주주의인지에 대해서도 단정적으로 어느 하나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시민의회는 이 셋 중 어느 하나이기보다 여러 가지로 중첩된 형식을 띠게 될 것입니다.

특히 선거든 추첨이든 대표를 뽑아서 시민의회를 구성한다는 설명을 하면서 직접민주주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대표제의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시민의회의 의사는 시민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가장 위험합니다. 국회가 국민 그 자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의회도 결코 시민 그 자체가 아닙니다.

're-presentation'(재현, 혹은 대표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을 구성하든 'presentation'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re'-presentation의 본질입니다.

완벽하게 시민의 축소판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라도 시민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자리가 사람을 만듭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그렇습니다.

시민의회 논쟁은 여러가지 면에서 유용합니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의회가 또 하나의 백마 탄 초인처럼 인식되는 것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곧 좋은 정치는 아니듯이, 시민의회도 하나의 정치적 대안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을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가 하는데, 우리는?

마지막으로 최근 '시민의회'의 필요성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의 개헌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언론에는 가끔 인용이 되지만, 사실 이 두 나라에서 시민의회가 주도했던 개헌과정에 대한 국내 논문은 아직 단 한 편도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 학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 국민 다수가 이 사례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나라들의 헌정체제, 선거체제, 정치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시민의회'라는 것 하나만 뚝 떼 내어서 본다면, 오히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살펴 본 바로는, 아이슬란드에서는 국민투표에서 최종적으로 개헌안이 승인되었지만,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투표는 개헌의 참고사항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 헌법으로 따지면 이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슬란드 국민투표의 투표율은 48.7%였는데, 우리 헌법의 개정은 50% 이상의 투표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에서는 2012년에 시작된 개헌 논의가 지금도 진행 중이며 9개의 핵심 사안 중 합의되거나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한 조항은 아직 없습니다.

시민의회(혹은 시민회의)를 통한 개헌이 의미가 없거나 시도해볼 필요가 없다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해 볼만 한 시도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이슬란드 개헌 투표의 경우 6개 조항에 대해서 모두 따로 투표를 했고, 찬성률은 조항별로 57%에서 82%까지 다양했다는 점, 그리고 역시 개헌안에 대해 개별조항에 대해 국민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은 아일랜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선호이전식' 선거제도를 90년 동안이나 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우리가 함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시민의회'를 만들기 이전에 단일한 개헌안에 대해서 '예/아니오' 찬반만을 묻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것이고, 그 전에 '투표제도'를, 그리고 그 전에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정치에서도 압축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 정치는 약해서 곧 무너집니다. 무너지고 다시 쌓는 것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다져가면서 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좋을지, 이것에 대해서도 논의하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지금처럼 좋은 때는 여지껏 없었고, 앞으로도 좀처럼 없을 것입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지식인과 시민들이 잘 활용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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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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