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문제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해법을 다음 정부가 강구해야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 아니다.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그렇게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드 배치는 안보 문제임과 동시에 국제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득이 있는 반면에 실도 있다. 내부적으로 국회 비준절차 같은 공론화 과정이 필요했고, 대외적으로는 사드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졸속으로 사드 배치가 결정됐다. 국민도 갑작스러운 결정을 맞게 됐고 중국과 러시아는 더 반발하게 되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기면, 차기 정부가 국회 비준을 포함한 공론화 과정도 갖고 중국과 러시아를 대외적으로 설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15일에 게재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사드에 관한 입장이다. 한마디로 대단히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사드 논란이 벌어진 지 3년 가까이 지났고, 배치 결정이 나온 지도 6개월 넘게 지났다. 사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의 사드 인식은 진화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
먼저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그렇게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이다. 기실 사드 문제는 한국이 미국의 눈치나 볼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항의라도 해야 할 판이다. 누가 뭐래도 사드의 1차적인 주체는 미국이다. 미국이 만들었고 미국이 한국 배치를 요청했으며 미국이 운용할 "전략 자산"이다. 그래서 사드가 중국 및 러시아와 무관하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할 책임은 미국에 있다.
필요하다면 '사드 및 X-밴드 레이더는 절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법적 구속력을 갖춘 보장을 제시해서라도 중국과 러시아를 양해시켜야 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선 후보들은 이러한 점을 미국에 설명하면서 재검토를 제안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는 "차기 정부가 국회 비준을 포함한 공론화 과정도 갖고 중국과 러시아를 대외적으로 설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엉뚱한 방향을 잡았다. 가장 중요한 상대인 미국과 재논의해보겠다는 입장조차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사드 배치 추진을 전제로 한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실성도 별로 없는 대책이다. 먼저 국회 비준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가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드 배치 절차 '중단'을 전제로 한다. 공사가 시작되더라도 중단을 해야 국회 비준을 타진해볼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말한 국회 비준은 이에 대한 입장부터 먼저 밝혀야 성립할 수 있는 얘기라는 의미이다.
국회 비준을 추진하더라도 한미간에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간에 이미 합의되고 추진되던 사안을 한국 정부가 국회 비준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마뜩잖게 생각할 것이다. 국회에서의 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는 한국 정부가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정공법, 즉 트럼프 행정부와 솔직하고도 긴밀한 협의를 선택하는 게 더 낫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대외적으로 설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사드는 미국 것이다. 당사자인 미국도 하지 못한(혹은 하지 않은) 중국 및 러시아 설득을 한국 정부가 무슨 수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전제로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려고 했다간 강대국 간 다툼 한복판에 한국을 내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사드에 관한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과 인식이 후퇴하다 보니, 사드 자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말았다. 그는 이전에는 "득보다 실이 크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득이 있는 반면에 실도 있다"고 했다. 뉘앙스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언론에선 '안보 프레임'에 걸려드는 걸 사전에 방지하고 중도와 보수 표심을 의식한 입장으로 해석한다.
문 전 대표가 이를 의식한 것이라면 나는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어정쩡하고 오락가락하는 입장은 정치적 공세를 방어하는 데에 효과가 없다. 사드라는 이슈를 작게 만드는 데에도 효과가 없다. 오히려 정치적 공세를 야기하며 '사드 판'을 키워줄 공산이 크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 전 대표는 더 늦기 전에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게 옳고도 좋다. 사드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분명하다면 이를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 사드의 문제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이에 반대하거나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과반수를 넘겼다. 또한 문 전 대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스피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사드의 문제점을 말하면 이를 들을 수 있는 국민들도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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