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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민낯, 거짓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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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민낯, 거짓의 민낯

[기자의 눈] 박근혜 가고 세월호가 왔다

온 국민의 비웃음을 샀던 박근혜의 명언,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말은 어쩌면 정말인지도 모른다.

박근혜 구속, 세월호 인양.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 일들인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두 가지 바람이 끝내는 이루어졌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그것도 한 날에. 2017년 3월 31일은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아마 누군가는 벌써 달력에 동그랗게 원을 그려놓았으리라.

▲구속 영장 발부 전후의 박근혜 전 대통령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의 민낯, 세월호 가족의 민낯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서 포착된 박근혜의 모습은 지금껏 봐온 것과는 사뭇 달랐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는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 없이 부스스하게 늘어뜨려진 채였다. 변해버린 외모는, 3주 사이 대통령에서 수인(囚人)으로 급격히 바뀐 그의 처지를 설명하는 듯했다.

한순간에 추락한 그의 풀어헤쳐진 그의 머리칼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3년 전쯤 진도에서 광화문에서 만났던 얼굴들. 동혁이 엄마, 소진이 엄마, 경주 엄마, 그리고 지현이 엄마, 다윤이 엄마, 은화 엄마…. 하루하루 허물어져 가는 사람들이었다. 화장기 없는 그들의 민낯에선 생기라곤 도통 찾을 수 없었고, 눈가는 늘 퉁퉁 부어있었다.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을 부르짖느라 엉망이 되어갈 때, 이들의 아이들이 찬 바닷속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갈 때,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곱게 머리를 빗어 올리고 있었다. 대통령이 외모를 가꾸는 것을 두고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오히려 '외모 신경 쓰느라 국정은 뒷전일 것'이라며 여성 대통령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을 배격한다. 다만, 그날의 올림머리는 흔히 말하는 'TPO(Time‧Place‧Occasion)'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참사 대처가 미진했던 점은 물론이고, 그 급박한 와중에서도 외모를 정돈한 안이한 태도에 국민은 분노하고 경악했다. 국민과 박근혜 사이의 괴리는 이 '올림머리' 하나로 거의 모든 게 설명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올림머리'는 거의 '국민 혐오 단어' 수준이 됐다.)

▲31일 목포신항에 온 세월호 선체를 바라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가 만든 질긴 악연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박근혜와 세월호의 '악연'은 계속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는 세월호와의 악연을 스스로 초래했다.

참사 후 한 달, 박근혜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릴 때까지만 해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믿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의 말이었으니.

이후 공중(公衆)에는 참사에 대한 왜곡된 사실, 희생자 가족에 대한 음해성 이야기가 떠돌았다. 희생자 가족들은 '설마 청와대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고(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에 담긴 세월호 관련 내용은 일종의 '탄압 일지'였다.

'세월호: 통화내용 제출 요구, 유가족 과도한 요구'(2014년 6월 16일), '선장·선원의 배반적 유기행위, 해경 출동 구조 작전의 실패, ○○​○​ 일당 탐욕'(7월 8일), '철저 수사 중인데도 유족들 수사권 부여 주장-경과, 방향, 의지 등을 소상히 알려 국민 납득 요망'(7월 20일)

계속되는 선체 인양 연기, 4.16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훼방…. 박근혜가 시도한 세월호 참사 은폐의 증거들은 한마디로 '차고 넘친다'. 어느 샌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박근혜'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국가 원수(元首)가 아닌, 철천지 원수(怨讐)가 되고 말았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민낯으로 광화문 광장에, 진도 팽목항에 머문다. 검게 그을린 그들의 민낯은 가족에 대한 사랑, 진실에 대한 열망의 증거다.

그들은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고 노래해 왔다. 그렇게 3년 만인 오늘, 참이 거짓을 이기는 광경을 목도했다. 진실의 민낯을 한 그들 앞에 거짓으로 점철된 추악한 권력자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리고,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예은 아빠 유경근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가 구속되니 세월호가 뭍으로 온다. 너무 좋아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하는데 또 다른 참담함에 잠조차 잘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대로, 덩실덩실 춤만 출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수습자 수색 과제가 남아있고 선체 조사를 통해 3년 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어찌 보면 박근혜의 구속과 세월호 인양은 진실에 이르는 한 관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것이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 먼 길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노잣돈이 생겼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은 그저 노랫말이 아니었다. 2017년 3월 31일, 대한민국 국민이 깨달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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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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