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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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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 [인권으로 읽는 세상] 여성 혐오 넘어 소수자 혐오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강남역 여성 살해, 1주기

5월 17일은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다른 사회였다면 따뜻한 봄날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늘은 보낸다. 그리고 그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는 안도하기보다는 우연에 기대야 하는 여성 혐오의 사회에 분노한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보지 않고, 언제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죽이거나 때리거나 욕해도 되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여성 혐오다. 그래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여성이 수행한 일은 평가절하되곤 했다. '김치녀'를 넘어 '트렁크녀'까지, 죽음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폄하되는 여성 혐오가 이 땅을 덮고 있었고 그녀의 죽음은 그 가운데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될 수 있는' 세상에 아파하며 폭력적인 젠더구조를 인식했다. 수만 장의 포스트잇은 애도와 공감의 표현이었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은 더 이상 당신네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애도의 연대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겠다며 온라인에서 '#나는페미니스트다'라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만나 용기를 북돋았고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해졌다.'

그러나 국가는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경찰청장이 직접 방송에 나와 '여성 살해'(femicide)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행정명령으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인권 침해적인 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하나의 혐오가 다른 혐오로 가려지는 순간이었다. 여성 혐오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가려야 할 만큼 실체만이 아니라 언급조차 되어서는 안 되는 '금기어'임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게다가 정신 장애인에 대한 혐오에 달라붙은 공포의 감정은 여성들의 삶을 규율하는데 효과적이며 소수자들이 서로를 경계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여성 혐오에 의한 살인은 없다! 조현병 환자의 일탈적 범죄일 뿐이다. 국가는 여성 살해에 대한 어떤 방책도 세울 의지가 없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알아서 젠더 규범에 맞게 생활하라!' 이것이 여성 혐오를 극구 부인한 국가가 내뱉은 답변의 실체다.

그러나 여성들은 국가가 부인할수록 여성 혐오에 맞선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사회가 낳은 차별과 혐오의 덫을 수용하거나 두려워하며 살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선언이 늘어났다. 그런 여성들은 박근혜 퇴진 국면에서도 퇴진 운동이 여성 혐오로 왜곡되는 것에 대해 맞섰다. 그 결과 '저잣거리 아녀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운운하던 말들이 사그라졌다. 박근혜 탄핵은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권한을 남용하였고 그 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이어갔다.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으로 자신의 범죄를 가리려할 때 그를 규탄했을 뿐 아니라 집회시위 문화의 불평등함을 꼬집었다. 여전히 집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발화가 잔존했고 성추행이 발생했기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야만 했다. 박근혜가 물러나더라도 바꾸어야 할 차별의 문제들에 대해 함께 나누며 싸웠다. 여성 혐오를 넘어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는 싸움은 반차별의 감수성을 높이는 연대의 정치였다. 그 힘으로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 후보들이 잇달아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견고한 '차별의 벽'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와 여성 차별 발언이 잇따랐다.

ⓒ연합뉴스

페미니스트 선언한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에 여성이 지명됐다.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말이 놀랍지만 이 조차도 혁신적으로 읽힐 정도로 대한민국은 극심한 남녀 불평등의 사회로, 유리천장은 매우 높다. 장관의 여성 비율이 얼마나 될지가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불평등은 심각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만큼 그의 행보는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은 '페미니스트'를 선언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의 간극을 꿰뚫는 일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과 처지를 말하기조차 어려운 현실 말이다. 남성이고 엘리트인 그는 페미니스트 선언을 해도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지만 정작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순간, 물리적‧ 심리적 공격을 받는다. 밤길을 조심하라는 협박에 시달리고, 신상털기의 대상이 돼 사생활은 침해당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순간 '꼴페미'라고 욕을 먹고 공격을 당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여성 연예인에 대한 공격을 숱하게 접했다. 남성 연예인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심지어 넥슨에서 여성 성우가 '여성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계약 해지를 당하는 시대다.

또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면서 동성애 혐오에 찬동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페미니스트란 여성에게 시혜적으로 권리를 이전보다 좀 더 부여하는 것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가부장적 권력구조가 낳은 차별과 착취에 반대하며 함께 차별의 구조와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그/녀가 누구이든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기 위해 이분법적으로 성별화된 차별구조, 권력의 위계(섹슈얼리티의 위계 등)를 세심하게 보며 그것에 저항하는 가치이자 감각이 페미니즘이 아닌가. 이성애자 여성의 인권은 보장하지만 동성애자 여성의 인권은 부정하는 페미니스트란 언어도단이다. 게이이든 트랜스젠더이든 그/녀의 인권을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의 반대의 날이기도 하다. 작년 말 강남역 여성 살해에 반대하던 여성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연대했듯이 오늘도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혐오는 인간 존엄성을 부인하고 소수자들을 가르며 연결의 힘을 약화시킨다. 반면 차별의 권력(구조)은 허물어뜨리지 못한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차별금지법은 제정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동성애반대를 공적인 자리에서 말했던 과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제라도 여성 혐오, 성소수자혐오 등 소수자 혐오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래야 취임사에서 말한 '차별 없는 세상, 평등과 정의'에 한발 내딛게 될 것이다. 국가가 혐오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평등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때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삶에서 밀려나 죽음의 벼랑에 선다. 혐오의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는 숨을 쉴 수가 없다.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 등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다는 것을 공식적인 형태로 명시해야" 한다고 권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체제를 유지했던 혐오의 정치에서 벗어나는 게 새 정부가 해야 할 새 정치다.

나아가 우리는 누군가에겐 차별과 폭력에 맞선 생존의 언어인 페미니스트 선언이 누군가의 장식과 교양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것이 강남역에서 죽어간 그녀 외에도 거리에서 집에서 일터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또는 죽어가고 있는 여성들을 기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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