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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무엇을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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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무엇을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인가 [김경욱의 데자뷔] 문화의 다양성으로서 설 자리 잃고 있는 한국영화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CJ E&M의 블록버스터 <군함도>는 흥행몰이를 하기위한 최선의 조건에서 출발했다. 저녁 시간에 단돈 50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7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 개봉일을 잡았다. 문화의 날의 존재가 긍정적인 면도 많겠지만, 배급사가 주력하는 대규모 영화를 수요일에 개봉하도록 하는데 일조한 면도 있다(지난해 대부분의 흥행작이 수요일에 개봉했다). 전국 2,575개의 스크린에서 2,168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26일 단 하루에 97만 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렇게 10여일만 가면 천만관객 영화가 될 수 있다.

레나타 살레츨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박광호 역, 후마니타스 펴냄)에서, "현대인들이 너무 많은 선택지에 압도되어 선택의 불안이라는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멀티플렉스를 갔는데 한 편의 영화가 80% 이상의 스크린을 장악한 상황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으니 한국 관객들의 정신건강에 유익할 수도 있겠다. 영화가 단지 상품에 그친다면 말이다.

<군함도>를 <옥자>와 비교해보자. 3대 멀티플렉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서 개봉이 배제된 봉준호의 <옥자>는 6월 29일에 개봉해 최대로 확보했던 스크린은 111개였다(3대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전체 스크린은 189개이다). 이 영화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상영하고 있으나 관객은 지금까지 30여만 명 정도 들었다. 만일 이 영화를 CJ E&M에서 제작, 배급했다면 관객수는 얼마가 되었을까? 두 영화의 개봉 운명이 뒤바뀌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 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몇 년 전부터 영화마케팅 종사자들 사이에서 "천만관객 영화 만드는 거 어렵지 않다"는 말이 나돈다. 천만관객까지는 어렵더라도 700만~800만 관객은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 가능한 수치일 것이다. 알려진 <군함도>의 제작비는 220억 원이며 손익분기점은 700만 관객 정도, 여기에 홍보 마케팅 비용을 더하면 손익분기점이 천만관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CJ E&M은 사상 초유의 스크린 싹쓸이라는 무리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물론 개봉에 앞서 <군함도>는 제작 단계에서 한국영화의 온갖 흥행요소를 버무려넣었다. <베테랑>으로 천만 관객 감독으로 등극한 류승완이 연출을 맡고, 여기에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등 다양한 연령층이 다양하게 선호하는 스타를 배치했다. <암살> <밀정> 같은 영화를 통해 흥행성을 입증한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군함도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다.

그런데 흥행을 위해서는 대규모 스펙터클 장면이 필요하고, 그것을 개연성 있게 만드는 장르가 도입되어야 한다. 영화사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류승완은 "군함도의 섬 사진을 보는 순간 탈출 스토리가 떠올랐다. 거대한 감옥 같았다. 이걸 영화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일본에서는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다음 '근대산업혁명의 유적지로서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지만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일본최초의 여러 복지시설을 만들었다고 홍보하는 중'이다.

류승완은 탈출스토리를 떠올리고 대규모 스펙터클을 상상하고 난 다음에는 <암살>이나 <밀정>을 참고할 생각을 하면서, 군함도에서 벌어진 실재 사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건이 대부분 허구이지만, 그렇다 해도 가장 이상한 점은 주요 인물의 설정이다.

군함도에 모여드는 인물을 보면,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은 일본에서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딸 소희와 동료들을 이끌고 군함도로 오게 된다. 경성에서 명성을 날리던 주먹 최칠성은 부하들과 함께 군함도에 오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던 오말년은 이강옥처럼 속아서 군함도에 오게 된 것 같다. 여기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박무영(이 낯익은 이름은 <쉬리>(1998)의 북한8군단 소좌의 이름이기도 하다)이 군함도에 억류되어 있는 독립운동 진영의 주요인사 윤학철을 구출하기 위해 잠입한다.

이 인물들의 역할은 스타이미지에 맡게 배치된다. 이강옥/황정민은 자신과 딸의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가벼운 기회주의자, 최칠성/소지섭은 의리 있는 조폭 두목, 오말년/이정현은 남성 중심의 드라마에서 양념처럼 끼어드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반복, 박무영/송중기는 <태양의 후예>의 특전사 대위 유시진을 복사한 캐릭터(송중기는 유시진의 연기를 놀라울 만큼 그대로 반복한다), 윤학철/이경영은 <암살>의 친일파 강인국을 답습한다. 이들은 군함도의 탈출극이라는 메인 플롯과 함께 다양한 층위의 관객을 겨냥해 가족과 연인의 멜로드라마와 신파, 음모와 배신의 반전드라마 그리고 조폭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씨네21>(2017/07/26)의 이모개 촬영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류승완 감독은 군중의, 군중에 의한, 군중을 위한" 작품을 원했다. 화면 안에 개인이 아닌 군중이 잡히게 함으로써, 그 시절 군함도에 있었던 조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군함도에는 그렇게 재현하고 싶었던 800명 정도의 조선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참혹하게 노동력 착취를 당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요인물 가운데는 실재했던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재 이야기도 없다. 실재 주인공들이 사라진 영화에서 일본인들의 만행과 조선인들의 수난은 관습적인 재현을 답습하며 소비될 뿐이다. 단지 흥행만을 위해 실재했던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 대신 엉뚱한 인물들과 완벽한 허구(특히 박무영이 등장하고 윤학철의 정체가 밝혀지는 설정은 너무 터무니없다)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했던 것일까? 관객의 마음에 생생하게 남을 수 있는 일본인들의 만행을 재현하거나 강제 징용된 조선인 또는 노동자 계급을 주요 인물로 설정하는데 어떤 저항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항상 관심을 갖는 설정은 주요 인물 가운데 누가 죽고 누가 생존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강옥, 최칠성, 오말년, 윤학철이 죽는다. 다시 말해서 기회주의자, 깡패, 유곽에서 일했던 여성, 기회주의 친일파들은 죽고, 광복군과 어린 소녀는 살아남는다. 이러한 결말을 다소 과도하게 해석하면, '부정적인 인물들을 모두 일소(여기에 생존자들이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버섯구름을 지켜보는 마지막 장면을 더해서)하고, 긍정적인 인물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메시지 같다. 그러므로 기이한 계몽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한국영화 흥행작을 분석할 때,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를 비교하면서 질적으로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로써 <군함도>보다는 <암살>이 더 낫지 않은가?

'천만관객'이라는 양적인 수치에 집착하면서, 흥행요소를 이리저리 버무려 버라이어티쇼로 만들려고 할수록 한국영화는 질적으로 좋아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한국 관객의 취향은 대규모 스펙터클과 자극적인 볼거리 그리고 열광할만한 몇몇 소재들(<군함도>에서는 욱일기를 반으로 가른다든지, 촛불 집회를 연상시키는 장면 등)을 나열하면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분명 다른 취향을 가진 관객(예를 들면 <라라 랜드> <너의 이름은.> 같은 영화의 흥행 성공)이 있음에도 그런 식의 편견이 조장되고 강화되는 가운데 문화의 다양성으로서의 한국영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가 나빠지는 걸 구경한 다음에는 세상이 나빠지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은 정말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하는 것일까? 우리는 앞으로 좀 더 나은 한국영화를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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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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