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에 대한 군사적 억제책의 일환이라는 논리로 재검토 여지를 성급하게 닫아버렸다는 평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집권 뒤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 달래기 차원에서 "전임 정부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난 데 이어, 28일 국방부를 통해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추진하겠다면서 "이미 배치된 장비의 임시 운용을 위한 보완 공사, 이에 필요한 연료 공급, 주둔 장병들을 위한 편의시설 공사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혀 기존에 배치된 사드 운용과 추가 배치를 할 수 있는 기지 조성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북한이 29일 2차 ICBM급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하자 곧바로 사드 잔여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미 측과 협의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가 '임시 배치' 형식이며 환경영향평가 뒤 사드 영구 배치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배치해 놓은 2개 발사대와 엑스밴드 레이더에 나머지 4개 발사대를 추가 배치해 사드 포대를 완전체로 실전 운용할 경우,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수단과 명분은 사실상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문 대통령이 강조했던 '북핵 폐기를 위한 외교적 카드'로서의 의미도 함께 사라진다.민주당 "사드는 ICBM 대책 못 된다"더니…
문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보조를 맞춰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표변도 눈에 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의 사드 임시 배치에 대해 30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한미 동맹 차원에서 사드를 임시 배치했다는 정부의 결정을 이해한다"면서 "시의 적절한 조치"라고 호응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만큼,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 4일 북한이 1차 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던 당시의 민주당 입장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드대책특별위원회는 북한의 ICBM 발사 이틀 뒤인 6일 "사드가 ICBM의 대책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사드특위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당시 "ICBM은 미국 영토를 향해 쏘는 고각인 반면, 사드는 요격하는 시스템"이라며 "미국을 향해 쏘는, 특히 대기권에 진입하는 북한의 ICBM은 워낙 고각이기 때문에 (사드로) 막아낼 수 없다"고 브리핑했다.
김영호 의원은 "사드를 괌이나 텍사스에 배치할 경우 (ICBM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겠지만, 성주, 김천에서는 대기권에서 올라간 미사일에 대해 ICBM을 요격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 전까지 무기 체계로서의 사드 무용론에 기울었던 점과 일치하는 의견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기조를 반대에서 찬성으로 바꾼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북의 전략적 도발로 한반도와 세계 평화 위협이 심각해지는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대화는 계속해야 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피해갔다.
이같은 표변에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일반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 말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로 추가 배치 지시했다"며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하루아침에 발생한 일도 아니고 상존하는데, 그로 인해 갑자기 전격 사드 배치로 이어지는 논리적 연결점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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