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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폭력적인 <범죄도시>, 관객은 왜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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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폭력적인 <범죄도시>, 관객은 왜 찾는가 [김경욱의 데자뷔] <국제시장>의 눈물과 <명량>의 감동이 신파로 이동했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청년경찰>에 이어 <범죄도시>가 흥행에 성공했다. 이 두 편의 흥행이 화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순제작비가 40~50억 원 정도의 중급 영화임에도 1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군함도>나 <남한산성>에 비견할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를 중심으로 한 한국영화의 흥행 전략에 일격이 된 셈이다.

흥행의 과정을 놓고 <청년경찰>과 <범죄도시>의 차이를 살펴보면,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청년경찰>은 1102개의 스크린으로 개봉을 한 반면 <범죄도시>는 개봉일의 스크린이 600개에 불과했다. <청년경찰>의 스크린 수는 일반적인 경우처럼 점차 줄어들어들었지만, <범죄도시>는 개봉 6일차에 1315개 스크린으로 2배 이상이 늘어났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 참고).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과 관객 독식 문제를 논할 때, 하나의 해법은 흥행에 성공하는 중급 영화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도시>의 흥행 성공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장르의 측면에서는 흥행과 거리가 있던 장르거나 새로운 장르의 등장이 아니다.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는 2000년대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끌어온 주요 장르인 ‘조폭영화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조폭영화에 형사/탐정영화가 결합한 ‘혼합장르 영화’이다.

2001년, <친구>가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면서 최고흥행작에 등극했을 때, 그 여파가 이렇게 지금까지 미치게 될 줄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흥행성공 이후, ‘조폭영화’는 거의 10년 동안 한국영화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조폭영화는 매년 한국영화 최고흥행작 10편 안에 들어있었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등). 그 결과, 한국 대중영화 전반이 조폭영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화 <범죄도시>의 한 장면.

조폭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것처럼 보였을 때, 사라지는 대신 변형(또는 혼합장르)의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범죄도시>처럼, 형사/탐정 영화와 결합한 것이다. 예를 들면, <강철중>(2008)이 있다. 이 영화에서 형사 강철중이 맞서 싸우는 적은 거성그룹 회장 이원술이다. 이원술을 CEO에서 변신한 조폭두목으로 설정하면서, 조폭영화의 변형이 된다. 2000년대 조폭영화의 특징은 두목이 점점 CEO처럼 되어가는 것인데, 이원술은 아예 건설, 용역, 서비스 분야를 경영하는 그룹회장으로 등장한다. 그는 신입사원연수에서 “나는 깡패인데 밖에서는 건실하고 촉망받는 기업인으로 부른다”고 연설한다. 조폭두목이자 CEO인 악당들의 등장은 당시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조폭두목이 주식투자가나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하고, 건설업체를 끼고 돈 세탁을 한 다음 그 돈을 통해 정계와 지방행정에 진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프레시안>(2009.9.2.)의 경제학자 우석훈 인터뷰 참고).

대중영화는 현실성과 판타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범죄를 다루는 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더 현실성이 요구된다. 주인공이 범죄자인 경우에는 그가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 주인공이 형사/경찰인 경우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당을 잡는데 동의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조폭영화는 변형을 거듭하면서 은연중에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열하고 사악한 검사(<부당거래>), 잔인하고 냉혹한 재벌2세(<베테랑>), 부패하고 타락한 언론인과 재벌과 정치인(<내부자들>)을 보았다.

그런 다음 등장한 악당은 한국인이 아니라 <범죄도시>의 ‘조선족’ 조폭두목 장첸(윤계상)이다. 조폭영화의 유행 이후 흥행을 주도했던 스릴러 장르의 악당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였는데, 장첸은 그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거지를 보면 치밀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는 조폭두목이라기 보다는 잔혹한 폭력과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에 훨씬 가깝다. 그가 독사파 두목 등을 토막살인 할 때, 오원춘의 괴담과 오버랩 되면서 사실성을 획득한다. 또 그를 둘러싼 이 영화의 모든 설정에 사실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부에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이야기’라는 자막과 마지막에 ‘2007년 4월 26일, 금천경찰서 강력반의 흑룡파 32명의 검거’를 알리는 자막까지 더해진다. ‘범죄도시’는 조선족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청년경찰>의 범죄 공간이기도 하다)으로 한정되고, 그곳은 한국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치외법권의 공간이자 일종의 게토처럼 재현된다. 한국영화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공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명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기에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할리우드 영화의 슈퍼히어로처럼, 모든 무질서와 불법을 평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의 우위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면서, 다른 한 손만으로 칼을 든 조선족들을 간단히 제압함으로써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이 영화의 흥행을 주도한 마동석은 <베테랑>에서 구경꾼들을 위협하는 재벌2세를 야단치는 아트박스 사장 역할과 <부산행>에서 임신한 아내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좀비에게서 구해내는 용감한 시민 역할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젊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몸매를 연상시키는 마동석은 이전의 어떤 스타보다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마석도에게 이전 영화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든든한 영웅이자 형이나 아버지같이 친근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판타지와 현실성이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하나는 조폭영화에서 반복되었던, 좋은 조폭과 나쁜 조폭이라는 기이한 이분법이다. 이 영화에서는 한국인 조폭은 피해자로서 나쁘지 않게, 조선인 조폭은 가해자로서 아주 나쁘게 묘사했다.

또 형사 마석도가 피의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정당한 행위처럼 만들었다. 그렇게 하려면, 걸핏하면 도끼를 들고 팔 다리를 자르는 조선족 조폭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이 필요하다. 가공할 악당들을 일망타진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이 성립한다. <범죄도시>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돈 시겔의 <더티 해리>(1971)(이 영화에서와 비슷한 설정으로는 젊은 형사 강홍석이 부상을 당한 다음 강력계를 떠나려고 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에서, 형사 해리는 범죄자에게는 폭력이 답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영화는 ‘스콜피오’라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등장시킴으로써, 결국 해리의 생각이 맞다고 설득한다. 이 영화에 대해 G. 엡스는 “폭력을 범죄를 일소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나 야만주의, 인종차별주의, 권위주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파시즘적인 심성을 양성하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카메라 폴리티카] 92쪽 참고.). 또 이 영화에서의 ‘배제’와 ‘이상화’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 <범죄 도시>에서 조선족과 그들의 공간을 ‘배제’ 되어야 할 것으로 묘사하고 강인한 한국인 형사를 ‘이상화’하는 설정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전 조폭영화에는 IMF 이후 심화된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안과 공포 그리고 후유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청년경찰>과 <범죄도시>는 조선족을 범죄의 화신으로 설정하고 위험한 타자로 대상화할 뿐, 그 원인과 배경에는 무심하다.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해도 너무나 폭력적인 이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카타르시스에는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 것인지, <국제시장>의 눈물과 <명량>의 감동 따위가 이제 영웅을 찬양하는 신파로 이동한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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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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