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집행 과정에서) 인권 침해적 사례가 벌어진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사태가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피해자나 관련자 신고를 통해 입건되면 적절히 수사하여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처분이 내려질 것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강제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면 안 될뿐더러, 만약 일어날 경우, 처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법의 수장, 그리고 법을 이행하는 담당자가 한 말이기에 그 의미는 남다르다.
그로부터 1년 남짓 시간이 흘렀다. 과연 강제집행 현장에서 폭력은 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폭력은 여전하다. 지난 11월 9일 강제집행으로 세입자의 손가락 4개가 잘린 서촌 궁중족발이 대표적인 예이다. 왜 폭력은 반복되는 것일까. (아래는 강남 가로수길 곱창집 우장창창 강제집행 영상, 촬영 정용택 감독)
우선 강제집행을 담당하는 집행관 제도부터 살펴보자. 집행관은 강제집행 현장에서 국가를 대리해서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자를 일컫는다. 부동산 명도소송에서 이긴 사람(건물주 등)이 법원에 집행을 청구하면, 집행관은 해당사건 관련, 강제집행 권한을 법원으로부터 위임 받는다. 즉, 집행관은 강제집행 과정에서 잠긴 문을 철거하는 기술자와 짐을 옮기는 노무자를 고용할 권한이 생긴다.
주목할 점은 이 집행관 신분은 법원 소속 공무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집행관, 즉 개인사업자인 그들의 급여는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채권자(건물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 때문에 집행관은 물리적 충돌을 감수해서라도 채권자의 의사에 따라 집행을 완료시킬 유인이 생긴다.
강제집행을 수행하는 집행관은 사건 당 1만5000원 수수료를 채권자로부터 받는다. 근무 시간이 2시간을 넘을 경우 수수료는 1시간 마다 1500원이 늘어난다. 생각보다 많은 수수료를 받지는 않는 셈이다. 두 차례 강제집행이 일어난 서촌 궁중족발 사건 경우에 해당 집행관은 공식적으로는 총합 수수료와 여비를 비롯해 30만1000원을 받았다.
집행관의 수익은 강제집행 이후, 부동산 입찰에서 생긴다. 입찰절차를 진행하는 집행관은 만일 10억 원에 부동산이 팔리면 건물주로부터 수수료 390만3000원을 받는다. 수수료는 10억 원 이전까지는 비례해서 오르나 10억을 초과하면 해당 수수료는 390만3000원으로 같다. 이 수익이 상당하다. 2016년 국세청 자료를 보면 집행관 1인당 평균수입금액은 1억3000만 원이다.
물론, A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한 B건물 관련, 부동산 입찰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어제 B건물을 강제집행하면, 오늘은 C건물의 부동산 입찰을 집행하는 식이다. 이렇게 '강제집행→ 부동산 입찰'이 서로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주수입원은 건물주 주머니에서 나오기에 강제집행은 신속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강제집행 현장, 사람 위에 돈이 있다
집행관 제도를 담당하는 김우현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등기국장은 "집행관이 (채권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입을 충당하도록 하는 것은 집행관 업무의 책임성, 신속성을 강화하고 국가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는 입법적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국가의 경제적 부담’은 건물주가 입는 경제적 손해다. 손해를 줄이려 집행관은 신속한 강제집행을 하게 된다. 이때 집행관은 건물주가 사들인 사설용역을 활용하게 된다. 반면, 집행관이 신속하고 책임있게 강제집행을할수록 채무자의 인권은 외면 받는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이 심각하다. 집행관법 개정안을 발의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행관이 거둔 강제집행 실적에 따라서 소득이 결정되기에 무리한 집행이 이뤄진다"며 "현재의 집행관 제도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유발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강제집행 현장에 건물주가 고용한 용역이 투입되는 것도 폭력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다. 철거현장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이들은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용역이다. 건물주의 의지에 발맞춰, 즉 강제집행을 빠르게 진행하려다 보니, 이를 막는 이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리쌍 사태로 불리는 우장창창 강제집행에 동원된 용역은 112명. 이들 가운데 집행관이 고용한 용역은 22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90명은 건물주 리쌍이 추가로 고용한 용역이었다. 당시 세입자 측과 건물주 고용 용역 간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고, 이 과정에서 세입자 측 한 명이 호흡곤란으로 119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서촌 궁중족발은 사장이 손가락 4개가 절단되기도 했다.
경비업법 15조의2(경비원 등의 의무) 1항에 따르면, ‘경비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타인에게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2항에는 ‘누구든지 경비원으로 하여금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혀있다. 건물주가 고용한 용역은 경비업법에 적용 되지만 실제 강제집행 현장에서 법은 쉽게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집행관은 이러한 폭력을 막아야 하지만, 가급적 빠르게 강제집행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그런 폭력을 외면하거나 묵인하는 식이다.
폭력 난무하는 강제집행, 어떻게 막을까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은 집행관의 신분을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본부장은 "공권력은 균질해야 하는데 개인사업자인 한국 집행관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공권력을 행사 한다"며 "몇몇의 집행관은 집행과정을 중립적으로 감독하지 않고 상황을 방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본부장은 "국가가 손을 놓으면 폭력사태가 일어난다"며 "집행관은 국가를 대리하는 자로서 개인사업자가 아닌 공무원 신분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경우, 채권자와 채무자 이익을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집행관 제도가 설계됐다. 이는 한국과 달리 독일 집행관의 신분이 완전한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공무원의 법적 의무를 그들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 보니 채권자 이익만이 아니라 채무자 이익도 보호할 의무가 그들에게는 부여된다.
최 본부장은 집행관이 강제집행만을 하는 게 아니라 집행 전, 조율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 본부장은 "집행관이 단순하게 집행만 해서는 안 된다"며 "집행에 앞서 여러 차례 임대인-임차인을 만나 설득하고 태도와 의사를 확인하는 신중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집행관은 강제 집행 전, 채권자와 채무자간 조정권한도 부여받았다. 강제집행 전, 양자 간 테이블에 앉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 하지만 한국의 집행관에게는 이러한 조정권한이 없는 실정이다.
강제집행을 당한 서촌 궁중 족발 사장 김우식 씨는 "1차 집행 때 집행관이 건물주와 이야기해 보라고 말하였으나 건물주는 이야기 할 필요 없다고 가버렸다"며 "이는 의례적인 협상이었고 이후 단 한 차례도 협상이 시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집행단계에서 집행관에게는 강제집행 거부권한이나 채무자와 채권자의 이익을 서로 타협하고 조정할 권한이 법적으로 없다"며 "국회는 (집행관이)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도록 입법적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발의된 집행관법과 경비업법 개정안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경비업법과 집행관법 관련 개정안을 7월에 발의했다. 경비업법 개정안에서는 첫째 건물주, 즉 채권자가 현장에서 사설용역을 고용해 현장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둘째,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할 경우, 신분증을 왼쪽 가슴에 달도록 했다. 강제집행 현장에 나온 사람들을 법원에서 나온 사람인지 사설경비업체에서 나온 사람인지 구별하기 위해서다. 위법 행위 발생 시 책임소재를 파악하려는 의도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할 경우, 집행관이 짊어질 법적 책임을 강화했다. 기존 200만 원 이하 과태료,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정직 및 면직에서 2000만 원 이하, 6개월 이상 2년 이하의 정직으로 개정했다.
2012년 1월부터 2017년 3월, 약 5년간 이뤄진 총 12건의 집행관 징계는 모두 뇌물수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폭력사태가 유발되는 강제집행 과정과 관련해서는 단 한 건도 집행관 징계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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