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고백했다. 그래서 추구하지 않는다. 고백에 대한 보상으로 유형 또는 무형의 이익이 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신정아 씨는 새 출발을 하려고 출간했다. 그래서 추구할 수 있다. 자전에세이 '4001'이 자신의 새 출발에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도움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 장자연 씨는 자기를 '버리면서' 유서를 남겼을 수 있고, 신정아 씨는 자기를 '위해' 책을 출간했을 수 있다.
이 같은 차이는 평가의 차이로 이어진다. 장자연 씨가 밝힌 '직접 겪은 일'의 객관성과 신정아 씨가 밝힌 '직접 겪은 일'의 객관성에 대한 평가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물론 위험한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은 달을 바라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일과 같기에 본말을 전도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지적을 억누르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신정아 씨. ⓒ프레시안(최형락) |
크게 두 가지다. 신정아 씨가 밝힌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이다.
신정아 씨는 정운찬 위원장이 서울대 총장으로 있을 때 자신에게 미술관 관장직과 교수직을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함께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가끔씩 자신에게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어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시스템을 감안하면 그렇다.
제아무리 총장이라 해도 관장직과 교수직을 제 맘대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교수직은 해당 학과 교수들의 추천과 단과대학의 심사를 거쳐 총장 결재를 받아 결정된다. 설립자와 재단의 입김이 센 사립대에서조차 이 같은 임용절차는 형식적으로라도 지킨다. 그런데 국립 서울대의 총장이 사실상 '낙하산' 교수 임용을 감행하려 했다고? 그것도 자기 전공 분야와는 거리가 먼 학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코멘트 부탁'도 그렇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나 기자회견을 했을 때 청와대 '밖'의 의견을 청취하는 건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정무 파트에서 여론조사를 돌리거나 홍보 파트에서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수시로 미술계 인사에게 코멘트를 부탁했다고? 그것도 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는 대통령이 일부러 연락을 취해서?
그래서 배제하지 못한다. 신정아 씨가 자기 본위로 상황을 이해해 실상과 맥락이 다른 주장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물론 인정한다. 이 같은 의문이 정황에 기댄 '상식적 문제제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부분에 대한 의문이 전체에 대한 부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인정한다. 이 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신정아 씨의 주장에 상당한 사실이 포함됐을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해석이 다를지언정 행위는 있었을 개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신정아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검증이 끝나고 나서다. 상황과 사실이 신정아 씨에 의해 주관적으로 해석돼 전달됐을 가능성, 그리고 그런 가능성이 스며있는 부분을 가려낸 다음에 인정해도 늦지 않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사실로 간주하는 게 아니라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지금은 곧이곧대로 믿고, 마구잡이로 받아적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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