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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이라고? '인간 살생'은 어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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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이라고? '인간 살생'은 어찌하고 [기고] 도시재생 사업,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도처에 도시재생에 대한 '찬양'이 넘친다. 정부가 최고로 호들갑이다. 마치 이전까진 본 적 없었던 대단히 합리적이고 평화로우며 은혜로운 도시개발의 방식을, 지구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저 먼 행성에 사는 외계인한테서 사 온 것처럼 군다. 탓에 도시개발 정책에 일일이 관심 두기 어려운 대중은, 도시재생 사업을 기존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과는 완전히 다른,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무엇'이라고만 막연히 여긴다. 물론 이는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다. 내 보기에 정부는, (정당이 툭하면 "새로 태어나겠다"라면서 간판을 갈아치우듯이)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로 도시개발 사업에 관한 세간의 부정적 시선을 털어내려는 것 같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평당 3000만 원 지역에 개발이 필요한가")

작금 현장에서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대충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짜장면집 스티커처럼 쓰인다. 가령 뉴타운 사업이 좌초되면, 우선 정부가 거길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천명한다. 그러면 소위 활동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투입되어 일부 주민들과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하면(예컨대 주민공동이용시설이라도 하나 조성하면) '도시재생 사업'이 된다. 서울에서 뉴타운이 최초로 해제된 지역인 종로구 창신·숭인동이 꼭 그러하다.

근처 '돈의문 박물관 마을'도 얼추 비슷하다. 거기도 뉴타운 사업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간판을 바꿔 단 지역이다. 인근 '경희궁 자이 아파트' 등의 용적률을 상향하는 조건으로 조합이 해당 공간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곳으로 정하면서, 뉴타운 사업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둔갑했다.

그곳은 도시재생 사업이 결코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진실의 장소'다. 2015년 3월, 서울시가 현 돈의문 박물관 마을 자리를 '서울형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은 뉴타운 사업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는 내쫓기는 세입자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2016년 4월, 결국 세입자 대책위 위원장 고 씨가 온몸에 시너를 뿌린 후에 불을 댕겨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관련 기사 보기 ☞ 칠순 여행한다던 고 씨는 왜 제 몸에 불 붙였나?)

▲ 현 돈의문 박물관 마을 자리의 예전 모습.

따져본다. 고 씨를 죽인 건 뉴타운 사업일까? 도시재생 사업일까? 도시재생 사업이 만약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과의 단절이라면, 고 씨를 죽인 건 도시재생 사업일 것이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고 씨를 죽인 건, 여전히 내쫓기는 자들에게 무자비한 우리네의 '도시개발 방식·철학'이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돈의문 뉴타운에서 철거 위기 몰린 상인 분신(한겨레, 2017-04-12)" 등의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다. 때문인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도시재생 사업 중에 사람이 죽은 곳'으로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현재 언론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과거를 잊은 채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쓰기에 바쁘다. "한옥·일제 때 건물 그대로...돈의문 마을, 도시재생 중심지로 부활(연합뉴스, 2018-08-31)",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서 레트로 감성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자(메트로신문, 2018-10-25)" 서울시는 작년(2017년)에 아예 '잔치(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가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연인들 데이트 명소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풍문은 덤이다.

관련 공무원을 비롯한 도시재생의 적극적 지지자들은, 현 도시재생 사업이 기존 도시개발 사업의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역시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내쫓는 사업이라는 걸 애써 감춘다(이상의 극단적 예가 아니라도, 도시재생 사업이 임차인 등을 내쫓는 기제는 다양하다.). 아니, (현장에서 지켜본바) 외면한다는 말이 더 부합할 것 같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다만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를 활용한) "이미지 세탁"이라고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묻지마식 도시개발(누구를 위한 도시개발인가?)'의 대표적 병증이다. 작금의 도시재생 사업은 '외부자를 위한 환경미화'의 성격이 강하다. 이를테면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지는 세운상가를 보자. 세운상가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보행 데크 등이 조성되며 관광객(유동인구)의 유입이 급격히 늘었다. 그 탓에 그곳 가게들의 임대료 또한 가파르게 올랐고, 지금은 그 오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기존 임차상인들이 하나둘씩 내쫓기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우리는 안다. 전자 부품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에겐 관광객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세운상가의 도시재생 사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도시재생의 적극적 지지자들이 인정하고 싶지 아니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일반에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더 늦기 전에) 도시재생 담론에 도시재생 사업으로 내쫓긴, 또 내쫓길 이들을 편입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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