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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열 가족의 어린이식당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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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열 가족의 어린이식당 도전기 [격월간 민들레] "그래, 그럼 같이 밥 먹자"
우리 마을에도 이런 식당이 있었으면

작년 이맘때였다. <민들레>에서 일본 어린이식당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 민들레 읽기 모임을 함께하는 멤버들은 우리 동네에도 이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관련 기사 : '요리하는 일, 먹는 일이 세상에서 젤 좋은' 엄마와 아이들)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혼자 저녁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모두의 식당으로도 불리며 마을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단다.

한국에선 '노키즈존'을 내세우는 식당과 카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차였다. 아이 때문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주인이나 손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뉴스를 볼 때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육아의 책임을 고스란히 엄마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시선이 못마땅했다.

엄마들이라면 알리라. 떼쓰고 보채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너그럽지 못한 주위의 시선 속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그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아이가 동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아이 한입 먹이고 나 한입 먹다 차갑게 식어버린 밥은 또 어떤지. 말 통하는 성인과 '대화'라는 것을 좀 하면서 먹는 한 끼 식사가 간절히 그리워진다. 엄마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는 밥이라고. 정말로 그렇다! 누군가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에 둘러앉아 독박육아의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만 있다면, 그런 식당이 우리 동네에도 생긴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마침 같은 시기에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관리동 1층에 '수눌음육아나눔터'(제주 고유의 수눌음(품앗이) 정신을 활용하여 공적, 사적 돌봄 공백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공동체를 회복을 목표로 2017년까지 20호점이 개소하였고 올해까지 전 읍면동 설치를 목표로 갖고 있다)란 곳이 생겼다. 제주도에서 처음 생긴 1호점이란다. 이웃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육아 경험과 정보를 나누자는 좋은 취지를 가진 공간이 생기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동육아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동육아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같이 모여서 즐겁게 아이를 키워보자'며 우리는 그렇게 뭉쳤다. 팀 이름도 '한 지붕 열 가족'이라고 지었다.

2017년 3월부터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만나서 다양한 놀이 활동을 하고 저녁을 함께 지어 먹었다. 30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려니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조리도구도 가정용이 아니라 식당에서나 쓸 법한 큰 것들이 필요했다. 다량의 어린이용 식기와 수저 포크 등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린이식당을 떠올렸다. '우리도 한번 해볼까?' 어차피 여럿이 모여 밥을 먹는데, 숟가락 몇 개 더 얹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오면 너무 정신이 없지 않을까?' '적은 예산으로 아이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3월 한 달간 우리 아이들만으로 식당을 운영해보기로 했다.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일도, 아이들 여러 명을 함께 먹이는 일도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손님이 조금 더 찾아와도 괜찮겠다 싶어서 4월부터 한 달에 두 번 '어린이식당'을 열게 되었다.

2017년에 공동육아 돌봄사업을 신청해서 받은 정부 보조금 일부를 어린이식당 사업비에 보태 쓰기로 했다. 넉넉지 않은 예산이었지만, 엄마들이 각자 가져온 식재료 덕에 늘 모자람이 없었다. 엄마들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식사팀과 아이들을 돌보고 식사를 차려주는 돌봄팀으로 나누어 일했다. 또 처음 방문한 어른과 아이들에게 어린이식당을 설명해주는 엄마도 있었다. 우리는 파란색 앞치마를 맞춰 입고 손님이 들어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뜻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줬다. 메뉴는 한 달 전 회의를 통해서 함께 정했다. 그달의 메뉴와 날짜가 정해지면 아이들 눈에 띄기 쉽게 공고문을 만들어 아파트 게시판에 붙였다.

보통 둘째 넷째 주 화요일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었는데, 일찍 와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린이들에게는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어른에게는 천 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받기로 했다. 어린이식당을 마친 후에도 메뉴나 운영에 관한 회의는 이어졌고, 미흡한 점은 바로바로 보완하려고 노력해왔다.

▲ 마을 어린이들로 북적대는 어린이식당. ⓒ조민경

어린이식당에서 모두의 식당으로

"혼자 와도 괜찮아요 / 친구랑 와도 좋아요 / 엄마 아빠랑 와도 /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모두 환영해요."

처음엔 간소하게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으로 시작했던 어린이식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양한 메뉴들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수제 함박 스테이크,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채소를 다져 넣은 피자와 스파게티, 직접 살을 발라서 만든 닭강정과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솜사탕 같은 메뉴는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위한 엄마들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내놓기 위해 엄마들이 기꺼이 회비를 보태기도 했다.

단골손님인 한 초등학생은 동네 어린이들이 만드는 마을신문 인터뷰에서 "도대체 왜 자기 돈을 써가면서! 그것도 한 달에 두 번씩이나! 밥을 공짜로 주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인터뷰의 끝은 이렇다.

"정말 맛있습니다. 어린이식당에 꼭 한번 들러주세요. 강추(엄지 척)!"

누구나 와서 우리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고 가고, 누군가 끼니 걱정을 하루만이라도 덜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기뻤다.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저녁을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아이에게 동네 친구들과 수다가 있는 즐거운 밥상을 내어주고 싶었다. 친구랑 저녁 늦게까지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저녁 먹을 시간이니 이제 각자 집으로 가자"는 말 대신에 "그래, 그럼 같이 밥 먹자"고 말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돌보는 젊은 엄마들에겐 육아 선배인 동네 언니들이 차려주는 밥과 함께 여유 있는 저녁을 선물하고 싶었다. 바쁜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손자들을 돌보는 할머니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내어드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한 지붕 열 가족이 마련한 어린이식당은 이웃들의 관심 속에 점점 손님이 늘어갔다. 보통 30~40명의 어린이 손님과 이웃들이 다녀갔고 큰 행사를 치르는 날에는 100명 이상의 손님들이 어린이식당을 찾았다. 어떤 날은 준비한 음식이 모두 동이 나서 나눔터 밖에 '재료 소진으로 마감'이란 글을 써 붙인 날도 있었다. 나눔터 안으로 들어오기를 낯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날씨가 좋을 때는 밖에서 팝콘이나 떡볶이 같은 간식을 나눠주었다. 덤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페이스페인팅 같은 이벤트를 함께 열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반응이 좋았다.

요즘 어린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간 이웃들은 모금함에 직접 돈을 넣어주시기도 하고 쌀이나 과일, 음료수 등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맛있는 식사에 대한 보답이라며 설거지를 도와주시기도 한다. 매번 그냥 먹기 죄송하다며 주머니에서 용돈 1000원을 꺼내어 모금함에 넣는 귀여운 꼬마들도 있었다. 어린이는 무료니까 괜찮다고 말해도 한사코 모금함에 돈을 넣고 간다. 그렇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동네 아이들하고 제법 친해졌다. 이제는 아파트 안을 지나다닐 때마다 서로 인사도 하고, 다음 어린이식당은 언제 열리는지 메뉴는 무엇인지 묻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음식으로 가까워지는 마을공동체

▲ 엄마들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한끼 식사. ⓒ조민경
우리는 공식적으로 어린이식당을 열지 않는 날에도 음식을 만들어 주변과 나눴다. 5월에는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양갱과 떡을 만들어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이웃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경비실, 경로당 그리고 주변 상가들까지 돌며 골고루 전해드렸다. 개업 떡이나 이사 떡을 돌리는 일도 흔치 않은 요즘, 동네 아이들이 내민 작은 마음으로 마을 곳곳에 흐뭇한 미소와 온기가 넘쳐흘렀다.

7월에는 아파트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는데, 그날을 위해 우리는 이틀 전부터 무려 200인분의 식혜를 만들었다. 이틀 내내 엿기름 냄새를 맡고 있자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더운 여름에 식혜가 상할까 걱정스러운데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 많은 양의 식혜를 나눠서 각자의 집에 가져갔다가 음악회 당일 시간에 맞춰 다시 가져왔다. 이웃들에게 살얼음이 동동 뜬 식혜를 나누어주겠다는 계획 아래,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음악회에는 우리 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이웃들도 많이 찾아왔다. 우리가 준비한 식혜와 과자는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직접 만든 식혜에 특히 동네 어르신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지난 11월의 저녁, 동네 아이들과 함께 캐럴에 맞춰 점등식을 하고 어린이식당 뷔페로 이웃들을 초대했다.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치킨, 트리 모양의 머랭 쿠키, 과일 꼬치, 카나페 등 특별한 파티 음식이 차려진 공간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특별히 산타가 깜짝 등장해서 아이들에게 커다란 웃음과 과자 보따리를 선물하고 떠나기도 했다. 연말 내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이웃들이 행복해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12월에는 아이들과 함께 배추 100포기 김장을 했다. 일부는 근처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나눠주고 나머지는 어린이식당에 쓰기로 했다. 며칠 후엔 돼지고기를 삶아 2017년의 마지막 어린이식당을 열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데다가 김장 준비로 홍보가 부족했던 탓인지 손님이 별로 없어 아쉽던 차에, 늦은 시간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잘 삶아진 수육, 김장 김치와 밥을 차려주니 아이는 혼자 앉아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더 내어주며 여길 어떻게 찾아왔냐고 물으니 학원 끝나고 다른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 밥을 먹으러 들렀다고 말했다. 10여 분쯤 밥을 먹고 난 아이는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어린이식당에 오기도 하고, 동네 어른들은 왁자지껄 함께 먹는 밥상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오로지 밥을 먹기 위해 어린이식당을 찾은 그 아이를 보면서 우리 마을에 어린이식당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녁밥을 제때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들, 패스트푸드와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린이식당이 마을 곳곳에 더 많아져 그런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잠시라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이식당에 마음 편히 놀러오세요

우리끼리 '한 번도 안 온 아이들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아이는 없는' 어린이식당이라며 종종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데 어린이식당 초기부터 자주 오던 친구들이 발걸음이 뜸해질 때가 있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 왜 요새는 안 오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비슷하다.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의 호의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어쩌면 어린이식당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살면서 이웃에게 폐 끼치고 살아도 된다고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린이식당에서 몇 달간 열심히 함께하던 한 엄마가 복직을 했다. 복직 후 바쁘게 지내며 얼굴 볼 시간이 별로 없게 되자 덩달아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도 자주 못 보게 되었다. 식당 여는 날에 아이들만이라도 보내라고 다른 엄마들이 성화여도 얼마나 바쁜지 아는데 보내기 미안하다며 주저한다. 같이 지내던 멤버도 이렇게 생각하니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이웃들이 느끼는 감정의 거리는 더 멀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직도 어린이식당이 가야 할 길이 멀었음을 느낀다. 새해에는 서로에게 폐 많이 끼치고 또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갚으며,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자고 이웃들에게 말하고 싶다.

▲ 아파트 단지 안 어린이식당 현수막. ⓒ조민경

한 달에 두 번이지만, 어린이식당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작은 주방에서 북적이며 많은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도, 식사 후에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는 것도 꽤 고된 일이었다. 때론 '우리는 왜 이 힘든 일을 사서 하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따뜻한 엄마표 밥상에서 까르르 웃으며 함께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신기하게 힘이 났다. 애써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도 손님이 적게 와서 기운이 빠지는 날보다 북적북적 손님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어 동동거리고 그릇이 부족해 설거지를 몇 번이고 해 음식을 내는 날에 이상하게 신이 났다. 수눌음육아나눔터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지면 함께하는 이웃들의 마음도 그만큼 따뜻해졌을 것이라 믿는다.

엄마들도 아이들도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2017년 한 해를 보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멤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에는 조금 더 친환경적인 식단으로 준비하기, 일회용품과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어린이식당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를 목표로 세웠다. 또 동네 엄마들과 각자의 집 냉장고를 털어 반찬이나 이유식을 함께 만들어 나누는 일과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요리 강좌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도 어린이식당에서 더 많은 이웃들을 만나길 꿈꾸며 엄마들은 열심히 밥을 준비하고 손님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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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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