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5억짜리 약이 눈 앞에…'독점권'을 어찌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5억짜리 약이 눈 앞에…'독점권'을 어찌할까 [기고] 국민과 환자를 위협하는 의약품 독점권

불과 약 15년 전의 일이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한 알에 2만5000원을 요구했던 노바티스를 향한 환자들과 국민들의 분노는 뜨거웠다. 환자들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의약품 특허권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선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10년 전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공급을 거부한 로슈를 향해서도 우리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그러나 강산이 변했다. 제약자본의 특허권은 그 어떤 이유로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환자와 국민을 우롱하는 특허권은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논의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특허권을 적절히 보상해 줄 수 있는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줄다리기만 이어지고 있다. 제약자본, 전문가들과 환자단체는 한 목소리로 정부를 압박하며 말한다. '재정보다 생명이다!'

이처럼 의약품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주요하게는 제약자본이 신약 개발 전략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데 기인한다.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치료제 등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합성 화학 의약품들은 2000년대 들어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예전에 제약자본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외면했던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 개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내만 보더라도 식약처에서 2014-2016년 사이에 허가받은 신약 119개 중 22%가 항암제였고 111개가 희귀의약품이었다. 질환별 차이는 있겠으나 희귀의약품이 더 이상 희귀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최근 개발되는 신약은 소수의, 중증질환자를 타깃으로 하면서 환자들에게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제약사에게는 강력한 시장 독점력을 허용함으로써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가 전략이 가능하도록 한다. 글리벡 2만5000원은 지금 신약 가격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착한 가격이 되어버렸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면역항암제들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며 심지어 5억 원을 넘는 신약도 우리 문턱에 놓여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독점권' 바로 그것이다.

앰플 당 8400원 하던 리피오돌, 26만 원으로 인상 안해주면 공급 중단 엄포

의약품의 독점권과 그로 인한 높은 약가 문제가 불거질 때 제약자본은 어김없이 개발비를 들고 나오지만 그것이 고가의약품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가 최근 등장했다. 간암 경동맥화학색전술에 쓰이는 조영제인 리피오돌은 지금으로부터 64년 전 1954년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약이다. 'Savage Laboratories'가 애초 자궁난관, 림프 조영제로 제조·판매하던 약을 프랑스 게르베가 2010년 판권을 취득하여 간암 조영제 허가 내용을 추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게르베는 미국에서 희귀 의약품(Orphan Drug) 지정을 받아 50% 세금감면, 7년 독점권을 추가하였고, 바로 그 이유로 환갑도 넘은 약에 대해 2021년까지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리피오돌은 국내에서 최초 허가를 받은 1998년 앰플 당 가격이 8470원이었으나, 2012년 5만2560원으로 6배 넘게 가격이 인상되었다. 또 최근 500% 인상을 해주지 않으면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이처럼 '오래된 약' 리피오돌의 가격 인상은 '개발비 회수'에 있지 않다. 오롯이 독점권이 제약자본의 그 어떤 가격 요구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15년 한 제약사가 임산부와 에이즈 환자가 주로 사용하는 기생충 감염증 치료제로 62년간 사용해온 다라프림의 미국 내 판매권을 1만6000원에 사들인 후 89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이뿐인가. 제약자본은 찔끔찔끔 허가 사항을 늘려가면서 독점 기간을 늘이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20만 명 이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희귀의약품의 경우 7년 독점권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하기 위해 특허가 만료될 즈음 새로운 허가사항을 추가하여 독점 기간을 늘인다. 전 세계 판매 의약품 상위 10에 들어가는 휴미라의 경우 2002년에 류마티스성 관절염에 허가를 받은 이후 소아 류마티스성 관절염, 포도막염 등 희귀의약품 지정이 가능한 형태의 허가 사항을 연속적으로 취득함으로써 특허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하였다. 의약품 독점권, 특히 희귀질환치료제의 경우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는 독점권이 이처럼 상식 밖의 일들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의약품 독점권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그리 많지 않다. 정부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야 함이 일차적인 해결책이나 특허권을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설정해 놓은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과 환자를 위협하는 독점권은 언제라도 해체할 수 있다는 신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는 한 제약자본과의 줄다리기에서 정부는 백전백패 할 수 밖에 없다.

애초 특허권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보상으로서 고안된 것이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특허라는 '권리'가 사회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인권, 건강권, 생명권을 해치려 들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독점권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의약품들의 홍수 앞에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