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대유행)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똑같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이 진행되는 감염병이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를 바꾸어 놓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예수 탄생연도를 기준으로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가 나뉘듯이, 코로나19가 발생한 2019년을 기준으로 코로나 이후(AC, After Covid19)라는 연도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농담이 아니다. 정말 코로나19는 건강한 삶이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거시·미시경제는 물론이고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양상 모두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대역사'가 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인사이드경제>는 전공과목인 자동차산업이라는 '창'을 통해 코로나19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볼 생각이다.미국과 유럽 전역의 자동차공장 모두 셧 다운
놀랍지만 사실이다. 세계에서 자동차 공장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 그러니까 중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 대륙의 사정만 살펴보면 된다. 우선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3월 이후 미국의 자동차 공장 상황부터 보기로 한다.지구상에서 한국 공장만 정상가동 중
미국과 유럽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 시작시점이 3월이었던 반면, 중국과 한국은 각각 1월과 2월로 빠른 편이었다.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세가 상당히 잡힌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의 자동차 공장도 생산을 재개하지 않았을까? 사실이다. 2월 중순부터 중국의 자동차 공장은 조금씩 가동을 재개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았던 우한 지역의 경우에도 2월 말에는 정부로부터 가동 재개 허락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을 뿐 가동률은 30~40% 수준으로 생산능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그건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언제든 다시 지역감염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엄격한 '이동제한령'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좁은 땅덩어리라면 다르겠지만, 중국의 경우 같은 공장 노동자라 하더라도 출신지는 대륙 전체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1~2월 휴업기간에 거리가 먼 고향에 내려가 있던 노동자들의 경우, 공장 생산이 재개되더라도 '이동제한령' 때문에 다시 그 공장으로 출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재 중국 대부분의 자동차 공장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자동차 공장 휴업의 4가지 이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전세계 자동차 공장 휴업은 모두 같은 이유로 벌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 휴업은 아래와 같이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① 공장 노동자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② 확진자는 없지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휴업③ 자동차 수요와 판매 급감에 따른 휴업④ 부품 수급 지연에 따른 휴업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1~2월 중국에서 벌어진 휴업, 그리고 2월 28일 현대차 울산2공장 휴업이 ①의 경우에 해당하며,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휴업이 ②의 경우에 해당한다. ③의 요소는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휴업에 많게든 적게든 포함되어 있다. 2월 28일 확진자 발생에 따른 현대차 울산2공장 휴업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발생한 휴업 대부분은 ④의 경우에 속한다.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위해 선제적으로 1개월 이상 휴업을 하는 마당에, 코로나19 감염 때문이 아니라 타국 부품사의 휴업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춘 것이 대부분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휴교도 하고 공장도 가동 중단시켰다면, 한국의 경우 휴교는 했지만 공장만은 팽팽 돌렸다는 얘기이다. 중국이나 유럽에서 부품 수급만 원활하게 이뤄졌다면 아마 휴업이 단 하루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는데, 이런 현상이 과연 자랑할 거리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동차공장에서는 방역 조치가 확실히 이뤄지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위한 많은 조치가 이뤄졌을까? 소독제를 비치하고 마스크를 지급하는 일은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이탈리아 노조들이 피아트 공장 가동 재개를 놓고 교섭석상에서 제시한 아래 요구안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사활적으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 위한) 조립라인 레이아웃 변경
△ 교대조 사이에 시간 띄우기 (교대조끼리 출·퇴근 시간 접촉 줄이기 위해)
△ 바닥에 표시를 해 노동자 사이에 1미터 이상 간격 유지하기
△ 노동자의 체온 점검과 마스크 등 안전장구 지급
△ 작업시간 중 위생상태 유지
△ 식사시간을 교대근무시간 끝으로 변경하여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도 음식을 챙겨 30분 일찍 퇴근하도록 하는 조치(임금삭감 없이)
당연히 이런 조치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갈 뿐 아니라 조립라인에서 시간당 생산량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은 요구안일 뿐이지만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본 입장에서 공장 가동 재개를 위해서 일부 요구는 전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위와 같은 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까? 변해야 한다. 어차피 코로나19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새로운 기준과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국이 세계의 모범" 운운하며 도취될 상황이 아니다.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타국의 모범 사례들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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