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100일을 넘어서는 지금, 처음 발병할 때만 해도 동아시아만의 문제일 줄 알았던 감염병은 이제 전 세계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이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에서 내려진 봉쇄령은 사람들의 생계 수단마저 차단하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라들은 그나마 재정을 투입해 위기를 극복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대처할 수단이 부족하다. 한 인터뷰에 등장한 바그다드의 청년이 '굶어 죽느니 바이러스로 죽는 게 낫겠다'라고 한 절박한 호소는 이미 코로나19 사태가 감염병의 문제를 넘어섰음을 직감하게 한다. 코로나19로부터 하루빨리 해방되고 싶은 많은 이들이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러한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백신은 현재 중국과 미국, 영국에서 백신 임상시험에 돌입하였다. 하지만 정식 사용하려면, 개발이 1년 이상 남은 것으로 알려져 이른 시일 안에 백신을 만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치료제 후보 중 가장 선두는 미국 길리어드사가 개발 중인 '렘데시비르'이다. 이 치료제는 이미 마지막 단계의 임상시험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고, 결과에 따라 올해 치료제로 만날 수도 있다. 지난주까진 긍정적인 결과들이 보도되었지만, 최근(23일, 현지시간)에 중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치명률의 개선이 없고, 부작용으로 시험이 중단되었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정식 임상시험의 결과가 아니라서 미래를 확신하기는 이르다. 우리는 이러한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 뉴스를 보며 희망을 품지만, 개발된 치료제나 백신을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의약품은 그것을 개발한 제약회사의 것이고, 제약회사가 약을 비싼 값으로 팔겠다거나 생산량이 부족하니 한국에는 팔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저 제약회사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논리에 몇 가지 맹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하다는 렘데시비르는 처음에 에볼라 출혈열을 치료하기 위해 길리어드와 미국질병통제센터(CDC), 미육군전염병연구소(USAMRID)가 협력하여 개발했다. 즉 공공재원과 공공 연구인력이 투자된 결과물이었다. 뒤이어 에볼라 출혈열 임상시험이 시행되었는데 이 또한 공공에서 투자한 임상시험이었다.(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발 초기부터 광범위한 항바이러스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렘데시비르는 코로나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17년과 2020년에 동물을 대상으로 한 비임상시험이 진행되었다. 두 건의 시험 모두 공공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 초기 시행되었던 임상시험들도 대다수 공공재원을 통한 임상시험들이다. 이렇게 막대한 공적 투자를 통해 개발된 의약품이 하나의 제약회사에 의해 독점되는 것을 우리는 그저 받아들여야 할까? 의약품은 단순한 이윤 창출의 도구가 아니다. 의약품접근권은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 공포에 휩싸여 있는 위기상황에서 의약품접근권은 더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몇몇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여 접근권에 방해가 되는 특허 장벽의 완화 조치를 시작했다. 칠레와 에콰도르는 국회에서 코로나19 관련 강제실시(특허권자의 동의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으며, 프랑스, 캐나다, 독일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강제실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였다. 감염병으로 사회가 봉쇄되는 이러한 상황에, 심지어 공공의 도움을 받아 개발하고 있는 길리어드사는 안타깝게도 특허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FDA에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청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바 있고, 공급 부족 문제로 '동정적 접근 프로그램'(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는 개별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중단했다가 독점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에 직면하자 연말까지 생산량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의 회사가 생산량을 최대한 늘리더라도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해 비축하려는 의약품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다. (유사한 사례는 이미 2009년 신종플루 사태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길리어드사의 특허 독점은 심지어 치료제 개발 완성에도 차질을 미치고 있다. 렘데시비르는 현재 정맥으로 주사해야만 하며, 주로 10일 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위해 최소 10일간 입원 또는 열 번의 병원 방문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맥 주사제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의약품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길리어드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형 개발을 완성하지 못했다. 만약 특허 장벽이 없었다면, 여러 회사가 이 유력한 코로나19 치료제의 제형 개발에 발 벗고 나서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렇게 특허가 독점되어 있다면, 이는 일어나기 힘든 시나리오다. 감염병 시대에 치료제 개발은 한 회사의 우월한 기술이나 인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공공영역의 도움은 물론이고, 다른 민간회사들도 협력해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특허 독점이 가지는 해악을 잘 이해해야 한다. 지난 6일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특허에 관한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치료제나 백신뿐만 아니라 진단시약, 마스크 등 여러 보건의료제품들이 가진 특허를 하나의 플랫폼 안에 두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기술을 독점하지 않고 여러 개발자들이 협업하는 방식은 새로운 혁신을 낳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새로운 실험, 이제는 특허에 갇혀있는 치료제를 해방시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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