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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왜 여성의 위기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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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왜 여성의 위기가 되었나 [인권으로 읽는 세상]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학교와 보육시설, 복지관 등의 일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한국사회에서 돌봄을 주로 담당해오던 여성들의 삶 또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다. 직장과 가정 일을 모두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 전업육아와 '엄가다'(엄마표 노가다)로 자녀 교육까지 해내야 하는 주부,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 모두 막막하다. 학교의 긴급돌봄 운영체계를 모두 떠맡은 돌봄교실, 돌봄전담사들은 소득이 끊긴 방과 후 교사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할 지경이다. 방문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은 이들의 노동이 없으면 혼자서 식사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러 가지만, 방역관련 정보나 물품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해고당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2월부터 긴급돌봄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기업에 재택근무나 시차 출퇴근과 같은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 권장했고, 유아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긴급돌봄학교, 가족돌봄휴가에 대한 유급 지원, 아이돌봄쿠폰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부족할지라도 정부 지원 등을 통해 버티면서 학교가 개학하고 나면 지금의 돌봄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까? 이 모든 문제가 코로나19 때문일까?

코로나19, 왜 여성의 위기가 되었나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나 보건위기가 직접적으로 여성들의 삶과 그 사회의 성평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직장 여성들의 일-가정 이중과업과 전업주부의 독박육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일정 부분 공교육과 분담하거나 민간서비스에 위탁했던 양육과 돌봄마저 불가능해졌다. 대부분 남성보다 저임금 노동자인 여성들은 일을 그만두는 걸 '선택'하거나 다른 가족 및 친족 여성들의 도움으로 공적 돌봄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비정규·비정형노동으로 일하는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의 유연근무제나 국가의 자녀돌봄휴가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돌봄은 다시 가족 내 여성의 책임이 되고 있다. 가사도우미, 아이돌보미, 급식노동자, 방과후 교사, 장애인활동보조인, 재가방문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을 하는 임금노동자 역시 대다수가 여성이다.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전국 보건업 종사자는 103만 명이 넘고 그 중 77.3%가 여성이며,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 115만 명 중에서는 85.9%를 차지한다. 기관·시설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다수의 비정규직 특수고용 돌봄노동자들은 사회서비스 영역이 일제히 멈추면서 해고되거나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등 생계위기를 겪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공공·민간서비스의 돌봄 공백과 함께 돌봄노동자 처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돌봄의 공공성 강화'가 다시금 등장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돌봄이 전가되는 상황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야기되는 대안이다. 하지만 돌봄은 이미 국가 주요 정책이 된 지 오래고,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긴급돌봄서비스가 공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여성이 돌봄노동에서 면제될 만큼 충분한 유급노동자가 되는 것, 그래서 여성이 무급노동으로 해 오던 가족 돌봄을 다른 여성의 유급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현재 정부가 표방하는 '돌봄의 공공성'의 방향이다.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해주겠지만 돌봄은 결국 여성들의 몫이라는 거다. 여성들이 현재 직면한 위기의 원인은 코로나19가 아니다. 돌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축소하고 이를 사적 영역과 민간시장 영역의 여성에게 전가해왔던 돌봄체계가 원인이다.

돌봄의 공공성 확대가 성별분업적 사회서비스 시장으로

흔히 '돌봄의 위기'로 불리는 사회재생산의 위기에서 돌봄의 사회화가 등장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증가로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짐과 동시에 이혼률 및 한부모 가족의 증가,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해 가족구조가 급변하면서 돌봄의 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국가 정책에 의해 임금노동에 속하지 않았던 돌봄노동이 사회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공공노동'이 되고, 정부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를 민간시장에 개방한다. 이는 현재까지도 마찬가지다. 보육, 노인요양, 장애인 지원 등 주요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국공립 비율이 10%를 넘는 곳이 없는 것은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시장에 맡겨버린 국가정책의 결과다. 하지만 돌봄의 시장화만으로 지금의 돌봄체계가 구축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여성노동력 활용을 위한 '여성정책'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향상되고 노동시장 진입이 늘면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육정책을 마련했고 이는 남성=부양자, 여성=피부양자·양육자라는 전제 아래 이루어졌다. 맞벌이 부부 중심의 현재 지원은 보육부담으로 남성노동자만큼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지원으로,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담당하지 못하게 된 돌봄 공백을 국가가 잔여적인 서비스로 보충하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저출생 현상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한 일은 보육, 노인요양, 장애인 지원과 같은 돌봄서비스에 대해 바우처를 발행해 경제적 비용을 보조하고, 서비스를 공급한 민간사업자들이 이를 수령하게 하면서 거대한 사회서비스 시장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에서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배치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여성의 고용단절을 막고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 적합 직종'으로 포장되면서 학교 비정규직 돌봄전담사와 같은 시간제 일자리를 대거 양산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서비스 영역의 여성 일자리 확대는 여전히 현 정부의 중요한 정책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로 더욱 심화된 여성의 위기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노동에 전가해온 국가 돌봄체계가 불러온 위기다. 여성의 돌봄노동에 대한 보충적 복지와 여성노동력을 저임금 사회서비스 시장에 진입시키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돌봄체계 하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공공·민간시설이 셧다운 되면서 여성 돌봄노동자의 생계가 위협받고, 돌봄에 대한 가족 내 여성의 책임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돌봄에 대한 두 가지 사회적 책임

'돌봄의 공공성'을 내세우며 추진되어온 국가 돌봄체계는 여전히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이들을 국가의 시혜를 받는 수혜자로 위치 짓는다. 또한 민간사업자 중심의 돌봄체계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모두를 평등한 시민이 아니라 구매자와 판매자, 이윤과 비용으로 환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에 대한 국가의 사회적 책임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하나는 돌봄을 상품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삶과 사회재생산의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하며 돌봄 노동에 대해 정당한 경제적 보상과 인정을 보장하는 공적 체계를 만들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돌봄이 가족 내에서든 시장에서든 여성에게 전가되어 있는 성별분업을 해소할 사회적 책임이다. 결국 돌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돌봄을 우리 사회에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자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한 원칙으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감염병이라는 시대적 조건에서 더욱 중요해진 돌봄노동을 어떻게 평등하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다. 먼저 돌봄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인정 체계가 돌봄노동자의 일자리를 통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비정규직 시간제 형태로 쪼개진 저임금 일자리를 돌봄과 같은 핵심 사회서비스에 배치하는 한,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인정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돌봄에 대한 평가절하는 그것이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젠더편견과 기본적으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적영역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첫 단추는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노동지위를 변화시키는 것부터다. 이는 단지 돌봄노동자 처우개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국가에 의한 직접 운영과 직접고용 보장을 약속하며 돌봄노동자들의 직업지위를 보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장기간 휴교가 이어졌지만, 교사들은 그 기간을 연수로 인정받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온라인 개학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대비한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돌봄전담사가 지금과 같이 임금을 덜 주기 위해 쪼개진 시간이 아니라 누구든지 머무르고 싶을 만한 일자리로 강화된다면 비대면으로는 불가능한 돌봄의 특성에 맞추어서 생활방역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긴급교실을 직장인들의 시간과 맞춘 오후 7시까지 운영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개학 연기로 인해 방과 후 교사가 직장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학교 외 지역아동센터에서 지원을 받는 아동과 연계된다면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를 돌봄의 관계로 재조직하기 위해

여성학자 전희경의 말처럼 돌봄이 언제나/이미 '돌봄관계'를 의미한다면,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할 국가의 책임은 사회를 어떻게 돌봄의 관계로 재조직할 것인지와 맞닿아 있다. 돌봄에 대한 정의로운 배분, 평등한 돌봄은 돌봄노동이 남성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화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심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이 강제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 가족 내 돌봄의 책임을 다 할 수 없거나 돌봄을 자신의 권리로서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돌봄은 또 다른 의무나 책임에 그치기 쉽다. 가족구성원의 돌봄 필요에 개입할 수 있는 충분한 가족돌봄휴가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급여 지원이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돌봄의 사회화는 현재와 같은 노동조건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돌봄의 시간, 장소, 비용을 사회와 가족이 함께 분담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될 때 여성을 비롯한 가족구성원들이 돌봄의 '의무'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지는 일은 지금보다는 줄어들고, 돌봄은 더 이상 여성들과 정부부처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세계적인 위기가 닥치고 감염병의 '2차 파도'가 새로운 일상으로 예상되는 시대의 돌봄은 돌봄의 관계를 셧다운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다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역량은 다르게 대응하고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자원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국가의 책임, 더 안전하고 더 잘 돌보기 위한 일에 정당한 보상과 인정을 마련하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 공적인 자원과 인정체계를 돌봄노동 앞으로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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