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국제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주장과 기존 추세가 가속화될 뿐이라는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백가쟁명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가 모든 변화의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와 대봉쇄(the Great Lockdown)와 같은 방역의 필요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the Great Recession)를 넘어서는, 1930년대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역설은 분명 새롭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쟁의 수사를 내세우며 유례없는 재정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백신이 없는 감염병의 공포가 실제 전쟁보다도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점도 단속적인 변화이다. 이와 같은 코로나19 복합위기는 거시적으로 보면 산업화 이후 두 번째 지구화의 위기이다. 영국이 주도한 첫 번째 지구화는 19세기 후반의 공황과 식민지 확장 경쟁, 일차대전의 위기를 겪다가 대공황과 이차대전으로 파국을 맞이하였다. 이차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두 번째 지구화는 탈식민화와 함께 무역과 금융, 생산의 전 분야에서 통합이 심화되고 각 분야를 다루는 국제제도들이 형성된 점이 특징이다. 냉전 초기 미국은 대공황의 역사적 교훈을 내장한, 국가의 거시경제 조정 및 복지 제공으로 시장의 논리를 일정하게 제어하는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국가의 보호와 규제 기능을 제거하고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였다. 냉전의 종언 이후 세계경제 운영의 독점권을 지니게 된 미국은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전 지구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병폐는 대침체를 초래했다. 대침체는 다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인종적, 이념적 분열을 심화시켜 미국의 기존 패권과 민주주의의 문법 및 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트럼프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미국의 무능과 분열을 비극적으로 노정하고 있고, 트럼프 정부의 대응은 미국 민주주의와 패권의 쇠퇴를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복합위기는 인류의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일정·과정·시스템이 중단·단절·붕괴되는 ‘대혼란(the Great Disruption)’의 성격을 지닌다. 대혼란에 따른 변화는 세 가지이다.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중단시키는 ‘동결’, 기존의 추세를 강화하는 ‘증폭’, 그리고 관행이나 예상을 뒤집는 ‘반전’이 그것들이다. 대혼란은 방역을 위해 기업 활동이나 올림픽, 군사훈련, 선거운동 등을 모두 중단시켰다. 이러한 동결 효과는 생명이 이윤이나 국가안보 등 그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인하였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코로나 휴전’과 경제재제의 중단 요구가 터져 나왔다. 국가안보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여 군비는 감축하고 보건협력은 물론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와 국제적 협력을 촉구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은 2017년 유엔총회에서 통과된 핵무기금지조약이 상징하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평화체제 요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며,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의 탄도탄요격유도탄조약(Anti-Ballistic Missile Treaty) 탈퇴, 최근 트럼프 정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 및 영공개방조약(Open Skies Treaty) 탈퇴를 통해서 핵무기 군비통제 레짐을 파괴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과 반하는 것이다. 대혼란이 연출한 최대의 반전은 ‘우한 폐렴’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을 비판하던 소위 서구 선진국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특히 코로나19 사망자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전사자 숫자를 상회하는 10만 명 규모이고 WHO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하여 대내적으로 실패국가이고 대외적으로는 불량국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대만 등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방역에 성공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거시적으로 보면 19세기 서세동점 이후 문명표준의 역전이다. 서구의 일부 논자들은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성을 특징으로 하는 K-방역 모델을 권위주의적 동원체제의 전통과 감시사회의 산물로 비판한다. 이러한 시각은 9/11 테러 이후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한 미국과 서구 전반의 감시체제 확립을 고려하면 서구의 고질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병폐와 함께 미국과 중국이 모두 국제적 리더십을 제공하지 못하는 패권의 부재, G-0의 대공위시대(interregnum)의 도래를 확인해주고 있다. 중국은 19세기 영국 주도의 지구화체제에서 서구 열강의 다자적 제국주의에 복속되었지만, 탈냉전기 미국의 신자유주의 지구화체제에서는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비록 지역적 차원이지만 일대일로와 AIIB 등을 통해서 독자적으로 미국 패권의 대안적 질서와 제도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은 영국과 미국이 다른 제국이나 강대국들을 이념적,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국제적 리더십을 제공할 패권의 의지가 없고, 대침체 이후 제반 측면의 양극화가 심화된 미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패권의 대전략을 추진할 능력이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나 무역보복, 금융제재 등의 ‘대량혼란무기(Weapons of Mass Disruption)’를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Jospeh Nye)는 이러한 경제적 상호의존의 ‘오남용’이 장기적으로는 미국 패권으로부터의 탈퇴를 추동하며 미국 패권의 정당성을 침식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 입법을 강행하고 미국 전역에서는 백인 경찰의 흑인 용의자 살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트럼프는 중국체제에 대한 이념적 비판을 명분으로 내걸고 ‘대량혼란무기’와 동맹을 강압의 수단으로 삼아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고 반중국 공급망을 건설하고자 하는 총공세를 시작하였다. 냉전시기 미국의 핵독점 시도는 실패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의 해외이전은 시장의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즉각생산(just-in-time production) 등의 보완 시도는 있겠지만 대공황 수준으로의 역지구화는 없을 것이다. 지구적 경제통합의 기본 틀이 보존되는 한 본국 귀환에 대한 제도적 유인이 마련된다고 해도 미국 기업들이 반중국 공급망에 참여할지는 불확실하다. 기술이나 시장의 대안도 없이 동맹에게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의 국익을 훼손하는 무책임한 강압이며 나이의 지적처럼 패권으로부터의 탈퇴를 추동하는 자충수이다. 그리고 미국의 인종시위와 중국의 홍콩민주화 시위는 양국이 모두 국제사회의 전범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허쉬먼(Albert O. Hirschman)은 쇠퇴하는 조직에 대한 대응을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으로 구분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제한적이지만 미국 패권에서의 이탈 옵션이 생겨났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미국 내부에서 우파 민중주의에 의한 패권의 부정 혹은 이탈을 의미한다. 대혼란의 동결, 증폭, 반전을 둘러싸고, 미국 내부에서 그리고 미국과 전 세계 사이에 진행될 ‘이탈, 항의, 충성’ 게임이 포스트코로나 국제질서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이 글의 축약, 편집본은 중앙일보 6월 22일자에 "미국도 유럽도 코로나 방역 실패... 세계시민 보건협력 열망 커졌다'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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