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 아니라 3년 걸린 노조 설립필증
하지만 대리운전 기사들이 노동조합 설립필증을 받아내기까지는 3일이 아니라 무려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3년은 양해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2017년 8월 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변경에 대한 신고서를 접수했지만 실제 설립필증을 손에 쥔 것은 그로부터 1000일 하고도 54일이 지난 2020년 7월 17일이었다. 3년 전, 그러니까 1000일 전에도 대리운전기사들에게 노동조합은 있었다. 15년 전인 2005년에 대구지역 대리운전노조 설립신고를 했고 필증도 교부받은 바 있다. 대구지역을 출발점으로 전국의 대리기사들이 조금씩 노동조합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았을 때라 수 년 동안 '대구대리노조' 이름으로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 규모도 늘어나 전국 8도에 조합원들이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름은 '대구대리노조'였지만 사실상 전국 단위로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하지만 명칭을 전국대리노조로 바꾸는 변경신고는 미루고 있었는데, 그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전교조·공무원노조 설립필증마저 회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조법상 변경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활동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특수고용 관련 제도개선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때를 기다렸다. 박근혜 정권을 탄핵하고 새 정부가 들어선 타이밍은 누가 봐도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때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100여일이 지난 뒤에 전국 단위노조로의 변경신고서를 접수했다.비겁한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 행정
변경신고서를 제출하자 고용노동부는 "서류 보완해달라", "이 문서의 의미는 뭐냐" 등 3차례나 신고를 보완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아래 사진 왼쪽). 그때마다 대리운전노조는 10년 전, 15년 전 문서까지 뒤지며 성실하게 보완 요구에 응했다. 비록 노조법 상 사흘(3일) 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지만, 결과가 좋기만 하다면 1~2개월쯤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2개월이 넘어선 11월 3일, 고용노동부는 변경신고에 대한 반려 통보를 해왔다(아래 사진 오른쪽). 반려 사유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특수고용 관련한 쟁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절차적 문제였다. '대구대리노조'를 '전국대리노조'로 변경신고 하는 것은 불가하며, 이를 위해서는 변경신고가 아니라 새로운 '설립신고'를 하라는 논리였다.
택배 노동자들과 다른 판단
그렇다. 저건 매우 비겁한 조치였다. 게다가 8월 28일 고용노동부에 간 것은 대리운전노조만이 아니었다. 택배 노동자들도 '택배연대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고, 대리운전기사와 택배노동자들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기자회견도 함께 진행했다. 택배 노동자들 역시 특수고용 문제, 즉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쟁점이었다. 그래서 대리운전 기사들과 함께 택배연대노조 설립신고도 함께 하기로 의견을 모았던 것. 당시 언론보도 역시 대리기사와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문제를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집중되었다. 나란히 설립(변경)신고서를 제출한 두 노조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도 같은 날 나왔다. 그렇다면 택배연대노조 설립신고서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대리노조와 정반대의 결과를 들고 왔다. 택배기사들의 업무형태와 계약의 실질 내용을 살펴본 결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고 따라서 설립필증을 교부한 것이다. 쟁점도 똑같고 신고서를 제출한 시점,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결론을 통보한 시점까지 똑같았다. 그런데 택배연대노조에 대해서는 특수고용 관련 쟁점을 정확히 판단한 반면, 대리노조에 대해서는 전혀 엉뚱한 형식 논리를 들이밀며 2개월 넘게 기다려온 대리운전 기사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2017년 11월 3일은 금요일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그랬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매우 부담스러운 내용을 발표할 때에는 항상 금요일을 활용한다. 토요일 일간지 보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일간지 토요판은 별도로 기획된다. 즉, 금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토요판에 보도되지는 않는다. 반려 통보가 얼마나 비겁한 행정 행태였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포기하지 않고 싸웠던 대리노조의 3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리운전노조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굵직한 것들만 나열해봐도 아래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 설립필증을 주지 않는 노동부를 상대로 노조 위원장이 한 달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고, 여러 차례의 노숙농성과 상경투쟁이 있었으며 부산지역을 중심으로는 여러 차례 파업투쟁을 조직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28일 :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 변경신고서 접수
◼ 2017년 11월 3일 : 2개월 넘게 서류 보완 등으로 시간 끌다가 변경신고 반려 통보
◼ 2018년 11월 13일 : 서울지역 대리운전노동조합에 서울시가 설립신고필증 교부
◼ 2019년 5월 16일 :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다시 접수
◼ 2019년 10월 31일 : '노조' 명칭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리운전노조 간부들 대법원 유죄 판결
◼ 2019년 12월 13일 : 중앙노동위, 부산대리노조 쟁의조정신청 노조법상 적법하다고 판정
◼ 2020년 7월 17일 : 노조 설립신고서 접수 428일 만에 신고필증 교부받음
자본을 상대로 노동조합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장기투쟁'이 아니다. 특수고용 노조 할 권리 인정, 그리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하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관철시키기 위해 1000일 넘게 피말리는 싸움을 전개해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바로 그 대리운전기사들 얘기이다. 눈에 띄는 것은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리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이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설립필증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ILO 협약은 누구나 쉽게 노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ILO 협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게다가 ILO 협약은 노동조합 설립과 해산을 행정당국이 '허가'하는 제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대리노조 사건만 들고 가도 ILO는 한국 정부를 '협약 위반'으로 판정할 것이다.직선로와 우회로, 안 가본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비겁한 반려 통보 이후 대리노조는 말 그대로 산전·수전·공중전을 가리지 않고 필사적으로 '노조 할 권리'를 위해 노력해 왔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텐트를 설치하고 새벽마다 거리를 오가는 대리기사들을 상대로 노조 가입 조직화를 해왔고, 설립필증을 거머쥔 이 시간에도 서울에 내린 폭우를 견디며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회로를 시도하기도 했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그래서 2018년 말에는 서울시에 '서울지역대리노조' 설립신고를 시도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서울시로부터 설립필증을 교부받을 수 있었다. 서울지역을 출발로 전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대리노조의 지역지부들이 설립필증을 받았다. 부산지역에서는 업체들의 중간착취가 너무 심하고 대리기사들의 수입이 워낙 줄어들어서 업체들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도 벌였다. 업체들은 당연히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교섭을 거부했고, 이들을 상대로 대리노조는 지방노동위·중앙노동위에 쟁의조정신청을 접수했다. 그 결과 노동위원회 역시 대리노조의 손을 들어주며 교섭에 나서지 않은 업체들을 상대로 한 대리노조의 파업 행사가 정당하다고 판정한 바 있다. 대리노조의 기나긴 투쟁의 성과였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 모두가 지역 대리노조 설립필증을 교부했고, 지방노동위·중앙노동위 모두 파업권을 비롯한 대리노조의 노동 3권 모두가 정당하다고 인정해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오로지 중앙정부, 즉 문재인 정부만 대리노조의 노동 3권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5월 16일, 대리노조는 다시 직선로를 선택한다. 서울고용노동청에 다시한번 신고서를 제출한 것. 다만 이번에는 '변경신고'가 아니라 '설립신고' 형식을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에 반려 통보를 하면서 '설립신고'를 하라고 했던 점을 감안했던 것이다. "그래, 너희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줬으니 이제 결론을 제대로 내려보라!" 그런데 설립신고를 받아든 문재인 정부가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또다시 428일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동존중'이네 '특수고용 노조 할 권리 보장'이네 'ILO 핵심협약 비준'이네 했던 약속은 오로지 대통령 자리에 앉기 위해 외쳤던 거짓 공약이었던 것일까?라이더들의 노조 할 권리는 언제쯤?
3년 전 비겁한 행정 행태가 부끄러웠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전국대리운전노조'의 설립필증이 교부된 7월 17일 역시 금요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적폐정권과 똑같이 부담스러운 발표를 금요일에 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난 뒤인 지난 7월 28일, 플랫폼 노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배달 앱 기사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설립신고서를 접수했다. 그런데 신고서가 접수된 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다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조합법상 '사흘(3일)'이라는 처리기한을 간단히 무시한 것이다. 대리노조라는 사례를 겪어봤음에도 또다시 라이더유니온 문제를 장기화 하는 것은 어떤 근거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면 앞에서 겪었던 대리노조의 우회로, 직선로를 라이더유니온도 정확히 똑같이 밟아왔기 때문이다. 우선 라이더유니온은 서울시에 노조 설립신고를 진행했고 작년 11월 18일에 서울시로부터 설립필증을 교부받은 바 있다. 또한 한국 배달 앱 시장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배달의 민족'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현행 노동조합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쳤고 노동위원회 역시 이 과정의 정당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구단일화 절차는 단순히 정부나 노동조합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 상대방인 자본 측도 참여해야만 성사되는 것이다. 설립필증을 교부받은 직후인 지난해 12월,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 청년들' 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배달의 민족' 또는 '배민라이더스'는 서비스 또는 브랜드 이름이며 이를 운영하는 회사 명칭은 '우아한 청년들'이다. '타다(TADA)' 역시 서비스 또는 브랜드 이름일 뿐 이를 실제 운영한 회사는 'VCNC' 내지 '쏘카'였던 것과 비슷하다.)
'우아한 청년들' 측은 창구단일화 절차에 따라 라이더유니온의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한 뒤 교섭에 참여할 다른 노조가 있다면 교섭을 요구하라고 공지했다. 그러자 이 사업장 라이더들을 조직하고 있는 다른 노조인 서비스연맹 소속 배민라이더스지회가 교섭을 요구했고, '우아한 청년들' 측은 이를 다시 공고한 바 있다. (아래 공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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