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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군가의 일상은 경관이 되어 팔려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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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군가의 일상은 경관이 되어 팔려가는가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20 누구도 결정하지 않은 선택, '제2공항'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1. ‘제2공항’, 관료들이 만든 언어

제2공항은 누구도 결정하지 않은 선택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래전부터 제주도민들의 염원이었는데 무슨 소리냐’, ‘제주도의회에서 건의안까지 내지 않았느냐’, 곧장 반론이 들어온다. 제2공항 문제의 시작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제주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를 찾은 노태우는 제주를 홍콩과 하와이 같은 세계적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국제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면서 타당성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도 했다.(노태우 정부의 ‘제주개발’ 전략은 이후 제주개발특별법 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전도적인 반대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의 ‘신공항 건설 계획’ 이후 수면 아래 잠자고 있었던 제주공항 확충 문제가 다시 거론된 때는 2000년대 이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항공산업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독과점 체제였다. ‘제주-김포’노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항공사들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항공료 인상 담합, 운항 편수 임의 조정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법의 허점과 정부의 관리망을 피하는 일은 예사였다. 제주도민들은 비싼 항공료를 내가며 뭍나들이를 해야 했다.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가 직접 항공사를 운영하자’라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불만이 일차적이었다. 1920년대 제주-오사카를 오고 갔던 배편을 직접 운영했던 ‘자주운항 운동’의 역사가 거론되기도 했다. 여러 논쟁 끝에 제주도가 25%를 출자한 제주항공이 출범한 게 2005년이었다. ‘싸고, 편리하게 제주도민들이 뭍나들이를 할 수 있게 해보자’라는 염원이 만든 결과였다. 항공사 운영은 많은 자본이 필요한 일이었다. 제주도가 직접 운영할 수도 없고 경영권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도 어려웠다. 애경그룹이 몇 차례 증자를 거듭하면서 지분 비율도 낮아졌다. 공공예산을 출자했지만 제주도민들의 뭍나들이는 여전히 어려웠다. 원하는 시간에 항공권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제주항공 출범 이후 저가 항공사들이 잇따라 운항하면서 제주노선은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이 나오기 시작한 배경이다. 항공 정책은 늘 육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대기업 항공사의 항공운임 담합을 제대로 감독해달라는 제주도의 요구는 국토부 관료들에 의해 번번이 거부되었다. ‘관광객 때문에 먹고사는 데…’라는 생각에는 제주도민들의 삶이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2015년 11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제2공항 건설’ 필요성에 대해 제주도에서 토론해 본 적이 없다. 언론들도 제2공항이라는 표현보다는 신공항 건설,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이라고 보도했다. ‘제2공항’은 제주도민들이 만든 언어가 아니라 국토부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만든 말이다.
▲공항이 들어선다는 제주 동부 성산 내륙을 달리다보면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왜 누군가의 일상은 경관이되어 팔려가는가 ⓒ엄문희

2. ‘경관 포르노’에 열광하는 육지의 시선

관료들이 만든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0년대 이후 제주에 부동산 광풍이 일어나면서 시세 차익을 본 사람들도 여럿 생겨났다. TV는 일부 연예인들의 로망을 부지런히 소비했다. 화면 속 그들의 모습에 제주도민들의 삶은 없었다. 오랜 삶의 흔적이 새겨진 장소들이 ‘숨겨진 명소’라는 이름으로 소비되었다. 더 이상 감춰진 장소가 남아나지 않았다. ‘제주의 속살’이니 하면서 대중매체와 SNS들이 퍼나른 사진들은 뭍사람들이 즐기는 ‘경관 포르노’였다. 신기루였다. 대중의 열광은 또 다른 포클레인이었다. ‘관광인프라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땅은 아스팔트로 바뀌었다. 그 뜨거운 속도 안에서 제주는 점점 질식해갔다. 제2공항, 비자림로를 둘러싼 반대의 함성은 딱 하나였다. ‘숨 좀 쉬고 살자’. 비행기를 타고 2박 3일, 길면 한달살기로 제주에 왔다가는 당신들에게는 떠날 자유가 있지만, 제주에 사는 우리들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그러니 제발 살자. 그 잘난 전문가들이야 일년에 몇 번 찾아와 풍광 좋은 곳에서 묵고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죽기 일보직전이다. 그러니 제발 같이 좀 살자. 제주를 소비만 하지 말고 부디 같이 좀 살자. 여기는 관광의 섬이 아니라 삶의 대지이다. 공항, 발전, 안전. 뭍에 사는 관료들이 말하는 확고부동한 언어에는 ‘삶’이 없다. 그들에게는 서울만 보이고 제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에는, 제주도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두려움은 없다. 3800만명이든, 4100만명이든, 늘어나는 관광객들이 소비하고, 떠나는 제주에서,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제주 사람들의 삶은 없다. 사람이 없는 정책은 망상일 뿐이다.
▲성산의 마을 위로 펄럭이는 깃발. 왜 일상 속으로 투쟁이 들이닥치게 되었나? ⓒ김동현

3. 전문가의 맹목적 신념이 만든 허상, 제2공항

제2공항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항공운항은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에 비전문가들의 지적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몰아세운다. 전문가들의 판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다. ‘무오류’에 대한 자신감이 놀라울 따름이다. 경인운하, 4대강 사업 등 전문가들의 판단이 잘못된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었던 사례는 부지기수다. 판단은 검증되어야 하고, 검증은 철저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 공항 건설이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치자. 하지만 공항 건설과 관련한 정책 ‘결정’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영역이다. 정책은 판단이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가 한다’는 교조주의가 아니다. 정책이 토론의 영역이 될 수 없다면 관료 독재사회다. 지금까지 국토부 관료들의 태도를 보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문제를 키워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김현미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그 어느 국책사업보다 더 많은 토론과 의견수렴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감은 측정 불가능한 영역이다. 정책 판단은 합리적이며 투명한 과정의 산물이다. 정책 결정은 근본적으로 정보 비대칭성을 지니고 있다. 정부 관료들이 지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그들의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관료들의 판단이 공공성에 기반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종종 이런 믿음은 배신을 당한다. 정책 결정이 공공성보다는 조직, 관료들의 신념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한반도 대운하’가 신념이었던 이명박 정권 시절, 한 정치인의 헛된 꿈이 어떻게 공공성을 파괴하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공공성을 가장한 정치인의 신념은 가장 위험한 무기다. ‘제2공항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이 무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토부 관료들에게 ‘제2공항’은 신념이다. 그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을 거두지 않는다. 관료들의 판단을 믿는 도민들도 있다. 그들이 관료들에게 보내는 신뢰는 어찌보면 우리 시대가 만든 헛된 욕망들이다.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돈’. 그 돈이 누구의 것이고, 그 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눈 감는다. 이미 제주 사회는 늘어나는 자산 격차로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마을 공동 목장을 두고 수 십년을 함께 살았던 마을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일도 있었다. 아스팔트가 늘어날수록, 마을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사람들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은 환대와 연대의 가능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군가의 돈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間)’. 그 사이를 어떤 삶으로 채울 것인지 오늘도 고민하는 이웃들도 함께다. 그들의 소박한 외침은 하나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이웃의 시선으로, 함께, 제주에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을 꿈꾸는 수많은 우리들에게, 제2공항은 재앙이다. 삶을 무너뜨리는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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