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5년 전 제주로 이주했고 지금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다. 당시 나는 십 대였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 가서 살았고 나는 육지에서 학교를 더 다니면서 제주와 서울을 오갔고, 지금도 절반 정도씩 육지와 제주를 오고 가며 살고 있다. 당시 제주로 이주하게 된 것에 대찬성했다. 내가 어린 시절 여행 와서 만난 그 제주는 아름답고 푸른 자연과 맑고 파란 바다였고, 그런 곳에서 살게 되었으니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다. 그리고 관광객 아닌 주민으로 살 수 있는 곳이란 걸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이 말은 참 이상한데, 그런 느낌이 있었다. 제주도는 나에게는 아름다운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어디든 다른 도시로 이사 가는 건 놀랍지 않은 일인데 제주도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감각이 제주도를 망가뜨리는 태도 중에 하나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닫게 된 것은 강정마을과 4.3과 제주 제 2공항 문제를 알게 되면서다. 제주에 살면서 만난 제주도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아름다운 관광지로 만들어지기 위해 폭력을 겪는 곳이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국가폭력으로 해군기지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3이라는 엄청난 상처를 안고 있었다.
2017년 1월 27일이었다. 4.3 기념관에서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의가 열렸다. 제주는 2005년 1월 27일에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나 4.3과 같은 아픈 역사를 딛고 평화의 섬으로써 국제적인 분쟁의 완충지대가 되고자 했던 원래의 취지는 강정마을에 폭력적으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이유로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만들어지는 것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2013년 1월 27일에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같은 날에 시민들이 모여 평화에 관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그 2017년도의 토론 주제는 대략 “지금 제주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주에 무엇이 필요한가?”였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제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제주 제2공항’ 문제를 지목했고, 각자가 그것의 해결을 위해 제주에 어떤 일이 필요한지 종이에 적어서 벽에 붙였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 소그룹 회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모여 앉았을 때 가장 수가 적은 그룹이 내가 속한 그룹이었다. 우리 그룹은 제주에 제 2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단 세 명뿐이었다. 그 안엔 십 대인 나와 이십 대인 내 친구가 있었다. 강정마을에 살면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 번 듣게 되었다. 나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참여했었고 오래전 마을 전체가 펜스로 들러 쳐진 것도 보았다. 그리고 구럼비가 폭파된 것은 그저 강정의 바닷가에 있었던 엄청나게 큰 바위가 깨진 일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바위가 깨져서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구럼비라는 바위가 ‘그렇게’ 깨진 것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그 ‘그렇게’는 이런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로써 국가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실제로 국민은 국가라 칭하는 공권력과 갑을 관계 혹은 주종관계 혹은 군신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 국가는 외형상 형식과 절차를 갖추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무책임하게 일 저지르고 이것에 저항하는 시민은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공권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사전에 타당성을 조사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단계부터 주민과 동등히 대화하지 않고 매번 ‘믿으라’고 강요하며 ‘잘 알아서 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는 절대로 평등하지 않다. 이것은 마치 뿌리 깊은 ‘여성혐오’ 문화와 똑같다. 가부장제 사회가 오랜 시간 해왔던 방법 그대로, 여성과 약자에게 가해진 차별 그대로, 국가는 일방적이었다. 무엇보다 국가는 폭력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권한까지 있다. 강정의 구럼비는 ‘절대보전지역’이었다 그런 곳을 해제하면서까지 군사기지를 짓는 과정에서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동등하게 보지 않았다. 그곳에 살고 있던 다른 생물들이나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 리가 없다.
구럼비는 ‘그렇게’ 파괴되었다. 구럼비를 부순 것은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 가부장사회의 국가폭력인 것이다. 군사주의가 나머지 모두의 목소리를 짓밟은 사건이며, 이전에도 당연히 그래왔던 일이었다. 구럼비 파괴는 그 많은 사건 중의 하나였다. 그때는 구럼비가 파괴되었고 그 전에는 4.3이 그랬고 지금은 공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 나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같은 문제는 되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그 어떤 대상에게도 일방적일 수 없게 하는 감각과 태도가 필요한 것인데 나는 이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임에서 ‘제 2공항을 막기위해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볼 수 있어야 지금의 이 불평등한 문제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제주에 살게 되었을 때 아름다운 제주라서 좋아했고, 그러면서 제주에 살게된 것이 놀라운 일이 되었던 것은 내 마음속에 제주를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힐링의 장소가 되는 관광지로써만 생각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바로 ‘혐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군대가 국민을 지켜주겠다고 하면서 주민을 무시하고 군사기지를 짓는 것도 ’오빠만 믿어. 내가 지켜줄게‘와 너무도 닮았다. 지켜주기 때문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상대를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로 지목한다는 점을 아직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국가는 ’다 알아서 잘 하는‘ 존재처럼 굴고, 유일한 전문가처럼 말하고, 질문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디서 감히 국가에게 질문하느냐 식이다. 국가의 국민 무시. 가부장제의 여성 무시, 인간의 자연 무시. 한자어로 무시는 없을 무(無), 보일 시(視)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대상의 존재 의의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국가가 무시하는 많은 생명들과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소중한 하루하루는 그곳이 아름답거나 수가 적어야만 보호한다는 발상에선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강정마을 강정천에 자생하는 500년 된 신목이 크게 훼손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도 마음 아파하며 다음날에도 그 나무를 찾아가 보살피는 것을 보았다. 그 나무가 소중한 것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도 있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 데 있다. 이것은 국가가 하는 사업에 방해가 되는지 여부를 측정할 수 없는 가치다. 그보다 먼저 올 초에는 강정천에 사는 원앙이 총에 맞아 죽는 사건도 있었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구간이 서귀포의 상수원이자 제주의 중요한 생태계인 강정천을 가로질러가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시점이기도 했다. 아직도 누가 왜 총을 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원앙은 단지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죄도 없이 죽임을 당했다. 마치 구럼비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무시당했다. 제 2공항을 막기 위해 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싸우는 사람들은 제 2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지게 될 거의 이름을 가능한 모두 찾아 찾아 적으려고 했다. 그전에 그저 아름다운 오름으로만 볼때도 감동적이었으나 그렇게 작은 생물들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부르고 나니 정말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름 가진 존재들이 드디어 드러나는 것을 알았다. 무시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불편을 미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다. 그것을 회피하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국가가 국민을 업신여기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이용하지 않기 위해서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도 싫어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업신여기지 않는 태도만이 지금 일어나는 이 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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