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 바깥의 노동자들
법으로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최저임금, 노동 시간, 휴가 등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제도로 규정하고, 그 이상의 조건에 대해서는 노동자가 사용자와 협상해 합의하라는 것이다. 다만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는 집단을 형성해서 공동의 대응을 통해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 법은 최소한의 범위만 규정하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안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동조건은 노동자가 집단으로 모이고, 말하고, 행동한 결과에 좌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바로 이 모이고 말할 권리를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너무 많다. 특수 고용의 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만 220만 명이고, 간접고용으로 일하는 노동자 350만 명이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는 180만 명에 달하며, 프리랜서 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제대로 집계되지도 않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최저 기준도 보장받기 힘든 노동조건에서 일하지만, 근로계약관계 범위 밖에 놓여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는 집단적으로 대응할 권리의 박탈로 이어지며, 겨우 모여서 외치더라도 자신을 고용한 사장과 자신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는 진짜 사장이 따로 존재하는 현실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217만 명은 법정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까지 생각할 때, 현행 제도의 수정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전태일 3법이 요구해온 바
그래서 노동자와 시민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 노조법 상 근로자 정의 수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전태일 3법'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해왔다. 특히 임금을 매개로 하는 근로계약관계로 포괄할 수 없을 만큼 노동 형태가 다양해졌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노조법 상 근로자 정의 수정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법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힘든 노동자가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노동력 제공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현행 노조법은 다양한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설령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나 판매 대금을 받더라도 노동력 제공의 대가로 삶을 영위한다면 그 모두를 근로자로 인정하자는 요구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의 맥락도 다르지 않다. 2년 전, 고 김용균 님 사고 이후 화력발전소 노동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노동자들은 이미 현장의 노동자들은 위험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대응을 해나가려 애쓰며, 무엇보다 문제를 알리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회사의 시스템을 통해서 보고하기도 했으며, 노동조합을 통해 소통하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예고하고 대비하자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불운이나 부주의로 발생하는 사고가 아니라, 노동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고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산재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 이상이다. 노동자의 외침에 힘을 실음으로써 노동자의 말을 듣지 않는 구조를 바꾸자는 시도인 것이다.노동자를 흩어놓는 정부와 국회
하지만 이번 국회의 노동관계법 개정은 노동자의 권리 확장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없었다. ILO 결사의 자유 협약 기준에 맞춰 더 많은 노동자가 모이고 말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고 자평하지만, 정작 노조법 상 근로자의 정의와 관련한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직 노조법의 단서조항인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 금지를 삭제하는 것에 그친 것이다. 여기에 이어 지난 20일 노동부가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대책'과 특별법 추진 계획은 그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한다. 근로계약 바깥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 모이고 말할 수 있도록 제도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노동자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따져 물으며 권리의 경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형태 자문기구'를 꾸려서 개별 플랫폼 노동자가 '진짜' 노동자인지, 특수 고용직인지, 자영업자인지 분류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플랫폼 업체에게 사용자로서 책임을 분명하게 확인시키기보다 직업소개소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는 정부의 방침은 플랫폼 노동자 간의 경계를 격차로 만든다. 노동자로 인정받으면 함께 모이고 싸워서 사용자를 불러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플랫폼 '종사자'가 되면 말할 권리를 누리는 일도, 그 말을 듣게 만들 사용자를 찾는 일도 요원해진다. 정부는 노동자를 분할하고 경계선을 명확히 하려는 방향성을 숨기지 않는다. 근로자 조항에 포함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진짜' 플랫폼 노동자와 아닌 사람, 지금 국회와 정부가 만드는 경계선은 함께 모이고 싸우는 권리를 일부 노동자의 특권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는 취약한 계층으로 내몰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전환시키며 '진짜' 정규직과 구분 지을 때도 그랬고, 특수고용 노동자 중 14개 업종에만 한정해서 지원 대책만을 이야기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분할되고 위축된 노동자의 권리
국회가 위축시킨 노동자의 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 무더기로 통과시킨 법들 가운데에는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률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다. 사업장에서 일하지 않는 비종사자 조합원의 노조활동을 규제하고, 단체협상의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시킨 조항들이 그렇다. 지난 11월 포스코 광양제철에서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현장의 노동조합에서는 반복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왔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제기 덕분에 고용노동부에서는 포스코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했다. 문제는 노동부와 회사가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재직자'로 한정한 것이다. 포스코는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부장이 현장순회를 하려고 해도 보안시설이라며 이를 가로막아 왔다. 이런 기본적인 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별근로감독의 참여를 재직자로 한정한 것은 현장 노동자가 외부의 전문가나 상급 노조의 조력조차 받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는 국회에서 비종사자 조합원의 활동을 규제하기 전부터 발생하고 있던 현실이다. 국회는 이번 법안 개정으로 법적인 근거를 분명하게 하며 노동조합이 현장을 바꿔나갈 가능성을 줄여버렸다. 다른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노조가 사용자를 강제로라도 불러 앉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교섭이다. 노조는 교섭에 성실하게 응할 것을 요구하지만 회사는 차일피일 미루며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동시에 노조 조합원을 괴롭혀 조합의 활동을 위협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하면 사측은 일단 손해배상청구 소송부터 걸며 수년에 걸쳐 노조 조합원을 금전적으로 압박한다.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12월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은 일방적으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해 노동조합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킨 것이다.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확장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결사한 노동자의 싸움은 위축시키는 게 이번 노동법 개정의 주요 내용이었다.치적이 아니라 권리 확장을 위해서
아직도 국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기필코 이번 임시 국회에서 해당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그저 기우일까. 지난 12월 정기 국회에서 180석 가까이 차지한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노동자가 모이고 말할 권리를 확장하고 실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아니었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 관계법을 개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해 사용자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불과했다. 여당과 정부가 외쳐온 '노동 존중 사회'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제라도 민주당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어떤 법인지 분명히 하는 일이 먼저다. 해당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라는 전태일 3법의 다른 요구들과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노동자의 말에 힘을 싣고 그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제도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수위가 얼마나 과도한지, 그래서 과잉입법인지 아닌지와 같은 지금의 논란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의 이야기를 회사와 관련 책임자들이 듣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회의 소임과 의무는 자신들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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