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국가연구자인 밥 제솝(Bob Jessop)은 이러한 국가에 대한 베버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국가를 사익으로부터 독립된 합리적 운영자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타협하는 무대이자 그 결과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1)
즉, 국가의 행동과 결정은 사회 세력들로부터 독립적인 관료들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를 통해서 작동하는 다양한 사회 세력들 간의 권력 관계, 경합, 갈등, 타협의 과정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사회 세력, 혹은 사익으로부터 독립된 관료 집단이 나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국익과 공익에 가장 부합된 결정을 내린다는 관념 자체가 국가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여러 사회 세력들이 경합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의 행동은 특정한 선택성을 지녀서, 특정 집단, 특정 지역의 이해와 정체성이 다른 것 보다 더 특권적으로 보호되고 혜택을 받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 관료나 공공 주체가 공익과 공공성의 절대적 대리인이라는 태도는 많은 문제점을 지닌다. 결국 '공익 대 사익'이란 이분법적인 프레임으로는 국가의 공공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공공성이란 용어에도 공(公)과 공(共)이란 두 문자가 함께 사용되듯이, 공공성은 공익 뿐 아니라 공동체적 참여와 의사결정이란 차원이 동시에 결합 되어야 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사적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태도가 보편화되면서 공동체적으로 공유되던 많은 자원들이 사라짐에 따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이 약화되는 등 공공성 상실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에 최근 들어 시민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적 참여에 기반한 공유의 실천들이 공공성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관련하여 공동체적 자치 관리를 통해 공유재가 유지될 수 있다는 오스트롬의 주장은 커먼즈 활동에 대한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2) 즉, 공(公)과 사(私) 양자에 포함되지 않는 공동체 기반의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가 관료와 공공 기관을 공공성의 유일한 실현 주체로 바라보는 전통적 관점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유적 실천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국가 외에 다양한 공유적 자원을 나누고 관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공동체가 공공성 구현의 중요한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사회주택으로 다시 돌아가서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신수임(2021)은 공(公)-사(私)-공(共)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사회주택의 공공성을 이해해야 함을 주장한다.(3) 주택은 그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사적으로 점유되고 이용되는 공간임에도 사회적 영향력과 공동체적 성격이 매우 큰 장소이다.
주택은 인간 생존을 위한 필수적 재화이자 개인의 독립적 사적 공간이어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하지만, 동시에 주택은 동네와 도시를 형성하는 기본 구성요소로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주택은 사익과 공익 모두에 관련되고, 그로 인해 주택에는 사적 소유권과 같이 사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와 함께 공동체의 유지와 공익을 위한 사회적 의무와 공적 책임이 동시에 부여된다. 공공이 공급하는 사회주택인 공공임대주택은 이러한 주택의 사회적 성격 중 일부에 공공이 복무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저소득층을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를 공급하여 인권으로서의 주거권을 신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에서 공공은 저렴한 주거의 공급에 주로 초점을 두어, 임대주택 거주자들 사이, 그리고 임대주택 거주자들과 지역 사회 사이에 공동체적 관계의 형성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공공의 역할 한계를 보완하며 자신들의 수요에 따라 비영리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자생적인 움직임이 201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제도화된 것이 사회적 경제주체들이 공급하는 사회주택이다. 따라서, 이들 사회주택은 공동체의 형성, 지역 사회와의 화합 등에 있어서 국가 관료나 공공이 하지 못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사회 전체의 공공성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주택 분야에서 공공성은 국가나 공공 주체에 의해서만 실현되지 않고, 시민 주체들의 공동체적 노력에 의해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 관료와 공공 주체들은 공공성의 유일한 실현 주체가 아니다. 수 많은 다른 시민적 주체들이 공동체적 노력을 통해 사회의 공공성의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주거의 공공성을 높임에 있어서 시민 주체들의 공동체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 주체들 사이의 관계 형성에서 국가의 역할 변화가 요구된다.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 공동체 기반의 커먼즈 활동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와 공공이 시민들의 자발적 사회 활동을 공익을 침해하는 사익 추구 활동이라 의심하면서 억제하고 규제하는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오히려 국가와 공공은 시민들의 파트너로 나서서 공공재를 시민들의 커먼즈 활동에 적극 공급하고,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한을 부여하여(enabling)' 시민들의 자율적인 커먼즈 공동체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파트너 국가'로서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4)
■ 필자 주석
(1) 밥 제솝 저, 남상백 역 2021. <국가 권력: 마르크스에서 푸코까지, 국가론과 권력 이론들>. 이매진
(2) 엘리너 오스트롬 저, 윤홍근, 안도경 역 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자원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알에이치코리아.
(3) 신수임 2020. '공유재로서의 사회주택을 위한 공공성 개념 고찰'. <공간과 사회> 30(3) : 209-239.
(4) 황진태 2021. '커먼즈 기반 도시전환을 위한 거버넌스의 재해석'. <공간과 사회> 31(2): 254-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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