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이 커피 한 잔을 쑥 내민다. 그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다. 서툰 손으로 직접 커피를 타고 손님도 맞을 줄 알게 됐다며 생활보조인이 후한 칭찬을 던진다. 방에는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말타기를 좋아하는 동진은 말 얘기와 말인형, 얼룩말이 그려진 블라인드 자랑에 한참이다. 규석 씨는 놀이기구에 진심이다. 맹렬히 뒤집히는 고난도 놀이기구도 문제 없다. 이달 초에는 제주도 테마파크에 다녀온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여행의 설렘이 있고, 놀이기구를 마음껏 탈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마실 오는 친구와 일자리만 있으면 그는 행복하다. 아람 씨가 식사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한다.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 입는데 30분도 넘게 걸리지만 외출에는 당연히 외출복이다. 다이어트 중이지만 특별히 단골 코스를 돌기로 했다. 롯데리아에서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고 노브랜드에 들러 아이스크림도 하나 집어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공원에 물든 빨간 단풍도 올려다봤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비리와 인권 침해 등 기존 시설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떠오른 장애인의 탈시설은 2019년 말 정부의 지원이 시작되며 크게 늘었다. SH공사가 집을 마련하고 지자체에서 생활보조인력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생활비는 개인의 몫인데 생계급여와, 장애인연금, 주거급여 등을 모으고 공공일자리에서 번 돈으로 충당한다. 늘어나는 자립 장애인 수에 맞춰 맞춤형 일자리가 확대되야 한다는 요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립한 지 2년이 경과하면 활동보조인 지원이 120시간 줄어드는 문제 역시 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부분 폐지에 그친 부양의무제의 완전 폐지 목소리도 크다. 왕래가 없어도 부모의 소득이 높거나 자산이 많으면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끊긴다. 시설을 나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공간을 가졌다는 것 뿐일까? 어쩌면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의미가 더 클지 모른다. 각자의 시간을 갖고, 각자의 생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탈시설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지역사회에 편입한 세 명의 장애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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