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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체 어쩌다가 러시아를 잃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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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체 어쩌다가 러시아를 잃었을까? [해외 시각] 탈냉전 이후, 서방의 무시가 '적대적 러시아'를 낳았다

냉전이 끝났지만, 미국에겐 끝난 게 아니었다. 미국은 냉전 체제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를 점진적으로 압박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7년, 미국은 동유럽 국가인 폴란드, 체코, 헝가리의 나토 가입을 확정지었다. 당시 이에 반발한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은 옷을 벗었다. 페리 전 장관은 국방장관을 역임했지만,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방식의 미국의 확장 정책에 신중한 인물이었다. 1차 북핵위기 때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낸 것도 페리 전 장관이었다. 그는 러시아라는, 미국 세계 전략의 골치아픈 변수를 다루는 다른 방식들을 제안해 왔다.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 구도가 거칠어지고 있는 가운데, 페리 전 장관이 핵전쟁과 기후위기로부터 지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단체 '아웃라이더(outrider.org)'에 지난 6일 기고한 글을 소개한다. 글의 제목은 '미국은 어쩌다 러시아를 잃었으며, 어떻게 하면 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까(How the U.S. Lost Russia—and How We Can Restore Relations)'이다.편집자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의 적대적 대결이 냉전 시절 최악의 시기보다도 더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소비에트연방(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출현한 1990년대 초, 두 나라는 협력적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당시의 협력적 대화의 분위기는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러시아의 잔인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어쩌다 이런 끔찍한 사태를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냉전 종식 직후의 좋았던 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금의 공개적 적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적 관계 회복을 위한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일방적 나토 확대를 (미러 관계 악화를 초래한) 핵심적 도발행위로 지적한다. 당시 나는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서) 나토 확대에 반대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바로 러시아-미국 관계의 악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토 확대가 관계 악화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 정부들이 핵무기 초강대국인 러시아가 세계 질서에 대해 갖고 있는 핵심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은 것이 더 큰 우원인이다. 나토가 동유럽 국가들로 확대되기 이전까지, 미국과 러시아는 진정한 지구적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있었다. 당시(1994-97년) 나는 미국 국방장관으로서 러시아 국방장관 파벨 그라쵸프와 협조적이고 정중하며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둘은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형성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나는 그라쵸프 장관을 미국의 군사기지로 초대했고, 그라쵸프 장관 역시 나를 러시아 군사기지로 안내했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유럽과 하와이 등에서 합동 군사훈련과 재난 구조 훈련도 실시했다. 심지어 나는 그라쵸프 장관을 몇몇 나토 모임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우리 둘은 양국 간의 소통 유지가 매우 중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비상 군사 상황에도 즉각 대응하기 위해 각자의 책상 위에 핫라인을 설치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양국 간에는 신뢰와 존중의 정신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냉전의 유산으로 남아있는 어마어마한 핵무기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세계의 양대 핵무기 강대국으로서 우리들은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가 양국의 공동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책임감의 결과로 미국과 옛 소련의 핵무기 약 9천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냉전의 잔재로 남아 있는 적대의식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옛 소련의 핵무기 제거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 미국에게는 최선의 안보 이익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재정 지원은 핵무기 제거에서 멈추었다. 1990년대 초, 러시아는 공산주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고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고난에서 회복하기 시작할 무렵, 199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로 루블화의 가치는 또 다시 폭락했다. 이러한 경제적 고난의 시기 동안 서방이 보낸 메시지는 "그저 참고 견뎌라"였다. 당시 서방이 러시아의 고난을 덜어줄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을 해주지 않은 데 대한 러시아인들의 원망은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남아 있다. 또한 이 시기 동안 우리는 모든 동유럽 국가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동반자(Partnership for Peace : PFP)'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PFP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채 나토와 함께 군사협력을 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동유럽 군대가 나토 군대와 함께 국제 평화유지 활동 등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 가입을 절실하게 원했고, 이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는 나토 확대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미국은 이를 무시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나토와의 협력프로그램에서 탈퇴했다. 러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서방의 지원 거부, 나토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를 묵살한 것 등은 서방이 러시아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는 기존 러시아인들의 반서방 정서를 더욱 강화시켰다. 실제로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를 냉전의 패배자로만 인식했지, 존중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러시아를 별것 아닌 국가로 치부하는 서방의 무시에서 비롯된 러시아인들의 억울함은 힘의 과시를 통해 존중과 권력을 추구하는 독재적 지도자가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수 있는 강력한 핵무기의 보유보다 더 강력한 힘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새로운 지도자 푸틴은 "패배자가 우리에게 뭘 할 수 있지?"라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험천만한 공격과 함께 만일 다른 나라가 개입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적대적이며, 공격적인 러시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푸틴의 행동에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동조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다시 한 번 러시아의 적이 됐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미국이나 나토에 비해 보잘 것 없긴 하지만, 이것이 푸틴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핵을 가진 러시아에 대항해 서방이 군사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푸틴은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선 TV연설에서 푸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나라든 러시아의 앞길을 막으려는 나라는...(이러한 개입에) 러시아가 즉각 대응할 것이며, 그 결과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냉전 시절의 소련만큼이나 적대적인 러시아에 직면해 있다. 이 위험한 문제에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이러한 적대관계의 형성에 우리의 행동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긴장과 적대의 시기에도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적대적 핵무장 국가들과 건설적 소통을 유지하면서 오해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적이 돼야 할 어떠한 근원적 이유도 없다. 적은 푸틴이지, 러시아가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소통을 재개하고, 러시아 국민들을 존중하면서 두 나라가 다시 친구 관계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양국 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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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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