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이 합의를 통해서 근로자들이 근로 조건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100시간이든, 200시간이든 쓰되 연간 전체 또는 6개월 단위로 (연장노동시간 관리를 하게) 해줘야 한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고 하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주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거야. 한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에 노는 거지."
윤 대통령은 당시 <매일경제>인터뷰가 논란이 되자 그 다음날 해명 입장문을 냈다. 그러면서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는 "(청년 기업인들이) 월, 분기 또는 6개월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 근무를 해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사간 합의를 통해 변경할 수 있는 예외를 뒀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쁜 주에 120시간 일하고 그 다음 2주를 쉬면 평균 주 40시간이 아니냐'는 취지다.
윤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진 미래사회노동연구회는 대통령의 취지를 반영해 노동시간 개편안을 만들었다. 연장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기존 1주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해 주 최대 69시간까지 노동하도록 했다.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에 논다'는 바로 그 구상이다.
"주 69시간 노동? 사람이 어디까지 안 죽고 일 하나 시험하나"
프레시안 : 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설 : 청년유니온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만 15-39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구직형태나 고용형태 상관없이 가입할 수 있는 세대별 일반노조다. 전국적으로는 8개의 지역 지부가 존재한다.
신은진 : 저는 전국특성화고노조 경기지부 조직국장을 맡고 있다. 특성화고노조는 구의역 김군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청소년, 고졸 청년이나 재학생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준환 : LG전자 사람중심노조에서 2021년부터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을 맡았다. 2018년도에 LG전자에 입사했다. 2021년 당시 LG전자에는 기능직(생산, 현장직)이 속한 노조만 있고 사무직은 노조가 없었다. 직장 내 분위기 변화나 인사제도 변경 등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심지어 직원들이 근로자대표가 누군지도 모르는 데다, 알려고 해도 (회사가) 알려주지 않으려 하는 폐쇄적 문화가 있었다. 이 같은 여러 일을 극복하고자 하는 계기로 2021년도에 노조가 설립됐다. 그간 알게 된 여러 사업장 노조 위원장들과 작년부터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창구를 만들자고 해서 새로고침협의회를 출범했다. 회사가 좀 바뀌긴 했지만 갈 길이 멀다.
이채은 :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정책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에서 노동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천시 지역 특성에 맞는 비정규직 노동자 연구를 했다. 작년에는 시민단체 '파리바게뜨 노동자힘내라' 간사로 활동했다.
프레시안 :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까지 노동시간 연장이 가능케 하겠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실제로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노동자도 있으니까.
신은진 : 1주 최대 연장근로 시간의 제한을 없애면서 노동자가 일한 만큼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하려 했던 것 같다. 직장인 현실을 정말 모르는 이야기다. 지금도 야근이 너무 많다. 조금 연장해서 일한다면 수당 신청하기 정말 눈치 보인다. 연차 하나 쓰려 해도 "왜 쓰는데?"라는 질문부터 들어야 한다. 정부 안대로 노동시간이 개편된다면 노동자는 쉬는 시간도, 수당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만 죽어라 해야 한다. 과로사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안 죽고 일하는지' 실험하나? 노동자를 일하는 기계로 보는 발상에서 나온 개정안이다.
유준환 : 이번 개편안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이게 정말 입법 취지에 맞나?' 라는 것이었다. 모든 개편안이나 입법에는 취지가 있잖나. 정부는 이번 개편안의 취지로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쉴 때 쉬자'는 발상을 들었는데, 이 개편안만 보면 더 일하는 것만 보장되고 휴식 보장은 없다. 정부가 '직장인의 몇 퍼센트는 유연한 근로를 찬성한다'는 통계를 가지고 왔더라. 그런 통계는 현실을 왜곡해 노동자 입장을 잘못 대변할 수 있다. 근로 시간 유연화는 어디까지나 주 40시간 내에서의 이야기다. 노동자 누구나 이번주에 주 40시간을 넘어서 근무했으면 다음주에는 40시간 보다 적게 일하는 것을 생각한다. 이 연장근로 한도를 자유롭게 늘리고 줄이는 걸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노동부는 노동자가 매주 52시간을 꽉 채워서 노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결국 정부 개편안은 보통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근로 시간이 아니라 '연장 근로 시간의 유연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설 : 한국은 현재 주 52시간제 국가가 아니라 주 40시간 국가다. 그 부분은 생략된 개편안인 것 같다. 노동시간을 줄여나가고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한국이 노동 시간을 줄인 지는 5년도 채 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노동시간 개편안 표제를 '노동규범의 현대화'로 달았다. 장시간 노동을 의례화하는 게 현대화인가. 오래 일하는 것이 생산성을 보장한다는 생각은 굉장히 오래 전 이야기다. 특정한 사례나 직종에서는 필요할 수 있겠지만, '크런치모드'처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노동을 합법화하겠다는 게 과연 현대화인가, 제도적인 노동자 보호인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채은 : 말장난한다고 생각했다. 기준이 정말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중 다행은 청년들이 노동시간 개편에 반대 목소리를 내니까 대통령이 비록 '60시간'이라고 하더라도 (120시간에서) 한 발 물러서긴 했다. 청년의 말에 진심으로 귀기울이는 건 아니겠지만 눈치라도 보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일단 노동자를 위한 개편은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정부는 낡은 노동법을 개혁하겠다고 강조하며 새 개편안의 혜택을 보는 대표자로 이른바 'MZ세대'를 호명하고 있다.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는 표현도 나왔다. 누구에게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개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채은 : 당연히 자본가를 위한 정책이다. 왜 이런 정책을 만들었을지 생각해봤다. 정부의 논리구조에 노동자는 전혀 없고, 경제발전 혹은 경제성장만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주 69시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노동자를 그렇게 부려먹으면 기업이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정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정부 논리에는 자본가와 경제성장, 이윤만이 있다. 그걸 위해서 이 숫자(69시간)가 나온 것 같다.
김설 : 이번 개편안 준비 과정에 당사자인 노동자는 끼지도 못했다. 사회적 대화나 타협이 부재한 상황에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노동시간 개편안을 만들고 '너희를 위한 거야'라고 했다. 당사자 목소리는 듣지도 않고 수능문제 정답지 내놓듯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게 진짜 노동자를 위한 안이 아니라면, 정치적 의도를 가진 움직임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주 최대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던 지난 정부를 향한 공격으로 이해된다.
유준환 : 일단 노동자를 위한 개편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제가 만났던 노동자, 노동조합은 이것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 아까 크런치모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IT 업계에서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 '크런치모드'라는 용어부터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한다는) 자조적 의미로 사용하는 데서 나왔다. 정부는 근로시간의 연장이 필요한 특수한 경우를 예로 들면서 이를 일반화하려 한다.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개편이냐고 묻는다면, 오래 일을 시키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신은진 : 전적으로 사용자 입장을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일을 더 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적나라하다. 언뜻 보면 52시간제로 인해 더 일하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투잡을 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저와 같은 고졸 노동자들은 연차도 맘 편히 쓸 수 없다. 비정규직이라 잘릴까봐 불안한데, 연차를 어떻게 쓰나. 특히 연차를 금요일에 쓰거나 이틀 연속 쓰면 더 눈치가 보인다. 이런 현실은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주 최대 노동시간만 늘린다면 당연히 사용자는 일 더 시키고 돈은 안 줘도 되는 제도로 활용할 것이다. 우리들은 워라밸이 있는,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한다. 이 개편안은 정반대다. 그냥 노동자 과로사하는 내용인 것 같다.
김설 : 노동조합 일부에서는 실제 더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예를 들어 제조업 생산직은 기본급이 낮아 야근, 특근, 잔업 등 '수당'에 의해 임금을 높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노동부가 할 일은 이런 임금 체계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해서 어떻게 풀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맥락은 제거하고 '노동자가 더 벌기를 원한다'면 '장시간 일할 자유를 줄게'라고 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유준환 : 연장 근로, 야간 근로까지 다 해야 생계가 유지된다는 사실부터 문제다. 그리고 더 일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정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신은진 : 최저임금을 올려주는 게 올바른 접근이라고 본다.
"거칠게 말해서 '쇼'라고 생각한다. 청년팔이하는 느낌"
프레시안 : 김설 위원장과 유준환 의장은 직접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장관을 만나서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아는데, 장관이 뭐라고 답변했나.
김설 : 장관을 만나기 전에 불안정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장시간 노동 경험이 있는지, 이정식 장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나흘에 걸쳐 설문조사했다. 230명의 의견을 받았다. 이를 요약해서 장관에게 전달하려고 했는데, 언론에 이를 공개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노동부가 면담 직전 갑자기 (공개하기로 한) 면담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장관은 우리 앞에서 억울함을 표명했다. 본인 의도는 노동자가 69시간 일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제도는 다르게 세팅됐음이 명확하잖나. 말과 행동이 다르다. 장관은 본인들이 잘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하기는 했지만, 개편안 전체가 다 잘못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자 대표제 등을 말씀하셨다. 그 제도가 현실에서 얼마나 유명무실한지 뻔히 아는 장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안타까웠다.유준환 : 노동부가 '오해를 풀겠다', '해명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 개편안 자체가 잘못됐다. 이 방향으로 입법해서는 안 되고 바꿔야 한다. 한국의 전체 노동시간이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데, 줄여가기는커녕 더 일할 여지가 있는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계속 피력하고 왔다. 장관은 그저 "알겠다. 잘 들었다"고만 했다.
프레시안 : 다른 두 분은 이런 이야기들이 내부에서 오고간 것을 들으니 어떠신가.
신은진 :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개정안은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니. 청년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와 같은 고졸 청년들은 같은 업무를 해도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적게 받거나 무시와 차별에 시달린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취직하는 회사 대부분의 현실이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이다. 고졸 청년들이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 노동자다. 이미 과로사 직전으로 연장근무를 하고 있고, 연장근무 수당은 못 받는다. 그러면 나라가 이 문제를 해결해줘야지, 노동시간 연장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채은 : 정부가 청년의 이야기를 선별적으로 들으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다. 시혜적인 태도로 '(원래는 필요 없는데)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는 준다'는 식이다.
프레시안 : 장관은 지난 대정부질문에서도 노동시간 개편안이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는데, 언론이 사실을 왜곡한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장관은 계속해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직접 면담한 결과 청년 입장을 실제로 개편안에 반영할 것 같나?
김설 : 거칠게 말해서 '쇼'라고 생각한다. 청년팔이를 한다. 노동시간 개편은 모든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부는 오직 청년만 호명한다. 마치 청년만 설득하면 노동시간 개편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노동시간 개편은 사회적으로 대표성을 가진 이들과 정부가 대화의 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다뤄야 하는 문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처럼 제도적으로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틀을 만들고, 그곳에서 사회적 대화가 작동케 해야 한다.
신은진 : 저희도 완전 'MZ노조'다. 저희도 10대, 20대, 30대로 구성되어 있는 'MZ노조'인데... 장관이 저희 목소리는 듣지 않는 게 너무 안타깝다. 참여하신 분들의 말씀처럼 '쇼'로 보여진다.
이채은 :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데 너무 익숙하다. 우리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겠다는 건 기쁘지만, 어디까지나 시혜적인 태도로 보여 아쉽다. 다만 '쇼'일지라도 이를 통해 언론과 대중이 관심을 갖게 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 직장인들이 '요즘 MZ'라며 비꼬기는 해도 결국 젊은 노동자 눈치라도 보잖나. '쇼' 맞고 이용당한 건 맞지만, 부정적인 영향만 있진 않았을 것이다.
"퇴근시간을 넘어선 지시에 반박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프레시안 : 개편안에서 특히 청년층에서 비판이 많았던 대상이 초과 노동을 저축했다가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다. 장관은 "요새 MZ 세대는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할 정도로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했다. 직접 일터에서 부딪쳐본 노사관계는 어떤가. 혹은 만나봤던 청년들은 어떤 위치에 있었나.
신은진 : 20살에 처음 들어갔던 회사가 생각난다. 혼자서 일하기엔 업무가 너무 많았다. 사무실에는 저랑 사장님 밖에 없었는데 사장님은 외근이 잦았고 사무실에 와서도 일을 하시진 않았다. 그러던 중에 실수가 생기자 사장님이 화내는 날이 많아졌다. '어디서 이런 게 굴러 들어와서' 라는 말까지 들었다. 직접 직장에 다니기 전까진 주변 친구들이 회사에서 어려움을 토로해도 '내 권리니까 당당히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직접 들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그게 우리의 현실이고, 제 위치였다.
유준환 : 아무리 개인의 권리의식이 높아도 목소리 내기 힘든 사내 분위기가 있다. 회장 나오라고 해서 회장 나오나. 저 혼자 포괄임금제 안 한다고 해도 안 하게 되나. 아무리 권리의식이 있어도 현실은 힘들다. 그래서 노조가 있고,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이 있다. 노동자가 회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율적 협의를 할 수 있다면 69시간 제한도 필요없다. 근로기준법이 왜 있나. 노사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있다. 그런 기본 원칙을 얘기 안 하고,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권리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과 다르다.
김설 : 저희 설문조사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새벽 세시에 들어가 보겠다고 하니 "벌써 가?"라고 물은 사장이 있었다고 했다. 현실이 이런데 노동부 장관이 "개개인의 권리의식으로 극복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잘못이다.
이채은 :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 저 혼자 20대였고, 40, 50, 60대 선임들과 일했다. 퇴근시간은 저녁 6시인데, 담당한 일이 밤 9시에 끝났다. 다른 선임들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퇴근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날 밤 10시에 퇴근했다. 퇴근시간을 넘어서 나오는 지시에 반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프레시안 : 특히 비정규직 청년들이 '노사 자율의 힘'을 경험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일 것 같다.
신은진 : 조합원 중에 졸업하고 항공정비회사에서 일한 분이 있다. 근무 시간표가 자주 바뀌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다음날이 주말인데, 전날 저녁에 갑자기 내일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는다고 했다. 야근하라고 하면 무조건 해야 하고, 주말에도 추가 근무가 잦았단다. 그 회사는 산재 사고가 많은 곳이었다. 그분은 회사 들어가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유서를 써놓고 일하고 다녔다고 했다. 이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데 위험 수당까지 포함해 월 200만 원 남짓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해외 건설현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잔업, 야간 근무가 많아져서 추가수당을 받는지 물었더니 다음 날 출근하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통보 받았다고 했다.
이채은 : 노사 합의는커녕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든다고 해도 (교섭창구가 단일화되지 않으면 다른 노조와) 교섭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 대표로 '어용' 대표를 두는 회사가 비일비재한데, 진짜로 노동자 협의체가 생긴다 한들 그들이 실제 얼마나 권한이 있을까. 많은 사업장에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에선 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노사 합의가 있더라도 69시간은 안 된다'는 식으로 큰 틀에서 선을 그어줘야 한다. 아무리 (기업의 돈 벌)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노동자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기준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정부가 선을 너무 자본가 편에 긋는다. 69시간 자체가 문제다.프레시안 : 정부는 청년세대를 앞세워 노동시간 개편의 필요성을 말하고, 이를 '노동개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각자의 노동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노동정책은 무엇인가.
이채은 : 제대로된 근로 감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근로감독관을 늘려야 한다. 1명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2000건 정도라고 알고 있다. 지금 신청해도 1년 뒤에나 접수가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제대로 단속할 수나 있을까. 정부가 진심이 있다면 일단 근로감독관부터 늘려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도 필요하다. 일한 만큼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신은진 : 현재 현장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다. 여수의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현장실습 중 돌아가신 분 고(故) 홍정훈 님 이후로 5인 미만 사업장에 현장실습생을 보내는 것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 또한 현장실습생 노동자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영화 <다음 소희>를 통해서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것도 의미있는 성과이지만 법상 현장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조합을 만들지도 못하고 회사를 상대로 싸우지도 못한다. 결국 노동자성 보장이 중요하다. 현장실습생에게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돼야 하고 관련한 일터 대책도 필요하다.
유준환 : 근로기준법을 지키느냐 마냐는 정말 오래된 얘기지 않나. 이제는 단체협약을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가야할 것 같다. 그러려면 결국 노사 협의를 해야 하고, 노조 조직율이 높아져야 한다. 노조와 노동자가 별개의 세력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조고 노조가 노동자로 일치되는 사회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지 우리가 근로기준법 준수로 싸우는 게 아니라 단체 협약도 체결하고, 그 내용의 이행 여부를 두고 싸우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채은 : 단체협약을 얘기하니 파리바게뜨와 SPC 사건이 떠오른다. 어렵게 단체협약 등 교섭을 했지만, 회사가 이를 지키지 않으니 결국 노동자가 단식 투쟁까지 했다. 노조가 애써서 회사와 단협안을 만들어봤자, 회사가 이를 마음대로 어겨도 문제가 안 된다. 그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분명한 제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김설 : 듣도 보도 못한 포괄임금제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을 방지한다고 하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포괄임금제가 근로기준법에 나와있는 제도도 아니고, 어떤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는 제도다. 판례만으로 특수한 업종에 한정적으로 인정되는 임금의 하나다. 포괄임금제를 제도 내로 끌어들여서 규제를 명확하게 하든지, 아니면 가이드라인을 좀 명확하게 해서 기업이 함부로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부의 주장처럼 '노동규범의 현대화'를 추진하려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일들도 보호해주는 게 맞지 않나. 플랫폼을 통해서 일하거나, 프리랜서 등 기존 노동법의 울타리 밖에서 일하는, 소위 기타소득 3.3% 내고 있는 시민이 국세청 기준으로만 700만 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노동규범 현대화를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일의 형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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