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주에 다룰 내용은 바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입니다. 용어조차 어려운 법안을 왜 의미 있는 법안으로 선정하게 되었느냐고요? 이 법안의 향후 대한민국 사회에 가져올 파급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근 우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LNG가격의 상승, 이에 따른 전기료 상승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들어 몇 차례 (소비자)전기료를 올리기도 했지만, 큰 폭으로 전기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자명합니다. 민생 때문이죠. 이로써 국내 전력 소매시장을 독점하는 한국전력이 큰 폭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전기료는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OECD국가 전체 평균을 100으로 본다면,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0, 산업용전기는 83수준입니다.(한국전력 공식자료) 우리나라가 석탄, LNG, 석유와 같은 화석에너지원을 다량 확보하고 있는 나라도 아닌데, 왜 전기료가 싼 것일까요? 제조업 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성격상 일정률 이상의 전기료를 상승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한국전력에 여러 형태로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렴한 전기료 공급 때문에, 글로벌 IT기업에서는 다량의 전기소비-냉각에너지가 필요한 데이터센터를 대한민국에 설치하려 합니다. 이러한 대한민국 전기료는 배경에서 안정적인 석탄, LNG가격 공급의 뒷받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에서 화석연료원인 유연탄(28.2%)과 LNG(31.9%)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가까이 됩니다. (2020년 기준, 아래 표 참조)
최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국제 LNG가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로 가격이 3∼4배 급격하게 폭등하면서, 이런 가격변동은 우리나라의 전기료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지요. 현재 신재생(태양광, 풍력 등)이 전력생산(량)에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이래 꾸준히 높아지긴 했어도 2020년 현재 6.5%정도 수준밖에 안 됩니다. 원자력 비중은 약 26%정도 수준입니다.(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2022년의 경우, 이보다 높아져 신재생은 8.3%, 원자력발전은 29.3%로 상향) 이러한 국제 에너지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추어, 우리 정부도 여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탄소중립2050이라는 글로벌 컨센서스에 맞게 RE100(신재생에너지로 사용된 에너지원을 활용하여 제품생산 등의 비즈니스를 할 의무화) 룰을 준수하지 않고서는 해외에 국내 생산품을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에너지 당국으로서는 국내의 에너지믹스 정책을 현명하게 운용해야 합니다. 그 기저에 바로 이 '분산에너지 활성화법'의 취지가 담겨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국내의 전력생산은 모두 동해안-남해안 벨트의 원자력, 화력이 상당 부분 담당하고 있고, 이러한 전력을 고압 송전선을 통해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공급하게 됩니다. 즉 대규모의 전력생산을 큰 전원(電源)에서 생산해내고, 이를 수요지에서 소비하는 구조가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전력생산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러한 전력생산은 어마어마하게 큰 전력계통(그리드, Grid)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력의 생산은 대규모의 발전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의 각종 발전 자회사, 민간 화력/신재생에너지 발전사)들이 생산해내고, 어느 정도 경제성을 반영한(어떤 발전단가가 싼지 판단하는) 실시간 제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공급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은 대규모 발전사업자의 경우 한국전력거래소(KPX)를 통해서 거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발전사업자는 당연히 비싸게 전기를 팔고 싶을 것이지만, 한국전력거래소는 반대로 국민들에게 싸게 전기를 공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전력거래는 전력의 예측수요를 바탕으로 전력거래소에서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따라서 하루 전(Day-ahead)에 전력시장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을 결정합니다. 발전사업자들은 이 물량의 입찰에 참여해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인 것이죠. 합리적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규모발전사업자들만 참여하는 경우라면 크게 무리 없이 돌아가게 됩니다만, 이러한 전력시스템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지속가능하지 못한 전력계통 체계라는 점입니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을 높이면서 이러한 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었고, 게다가 국내에서는 장거리 송전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 등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시다시피 깨끗하고, 거의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문제는 간헐성(interval)입니다. 태양광은 해가 잘 드는 오후시간 대에 가장 많은 발전량을 보이다가 밤이면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풍력 역시 바람이 계속 불면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는 풍력 터빈이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간헐성은 기존의 전력계통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계통은 안정성이 핵심인데(쉽게 설명하면 전력공급량이나 주파수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계통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게 되어, 전력망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계통 안정에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전력계통망에 일정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에너지저장장치(ESS)등의 기술이 보완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현재까지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재생에너지사업자에게는 전력생산을 중단하게 하는 이른바 '출력제어'를 자꾸 내리게 되는 셈이죠. (제주도 풍력발전사업자의 경우는 큰 문제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사업자에게는 전력시장가격에 더해 신재생에너지보조금(REC, 신재생에너지인증제도)까지 지급하니, 한국전력-전력거래소입장에서는 다른 발전사업자를 놔두고 비싼 발전인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신재생에너지를 국내 에너지믹스에 활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EU 등 선진국의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비중은 22%(독일의 경우는 47%에 달합니다)인 것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EU집행위는 2030년까지 이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고 한 상황입니다. 결국 현재의 전력계통망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늘리려면, 다양한 형태의 대안이 모색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전력계통망의 수요를 제어한다거나(DR, Demand Response), 위에서 보듯 ESS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한다거나, 전력계통망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경우, 전력생산량을 직접적으로 전기자동차나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등(PPA, Power Purchase Agreement)의 방안을 고려해 왔습니다. 이번 분산에너지 활성화법은 바로 이러한 제도들을 모두 한 데 모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분산에너지는 '중앙집중형 에너지 생산방식'에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전제는 대규모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수도권에 현재 전력계통을 분산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분산에너지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려면, 우선 수도권에 전력계통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분산에너지의 핵심은 기존의 전력계통으로부터 자유롭게 운영되고(on-grid/off-grid) 소비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전력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서 누구나 이 사업을 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전력계통망을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거나, 또는 전력계통망의 혼잡성을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분산에너지를 하려는 취지가 오히려 사라지게 되는 셈이죠. 따라서 이 법에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기위한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산형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지역별로 전기요금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력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지역이라면 값싸게, 반대라면 비싸게 부과할 수 있는 것이죠. 지방분권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라고도 생각됩니다. 또한 지자체장(시·도지사)이 분산형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특화지역을 설정하면, 그 지역내에서는 직접적으로 전력거래를 허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존의 전력거래소-한국전력을 통한 전력거래의 큰 예외를 둔 것이죠. 혁신적인 제도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규모의 태양광 발전 등도 뭉치면 큰 에너지원이 됩니다. 심지어 자가용 전기자동차의 경우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하나의 에너지저장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의 연료전지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분산에너지 사업을 모두 모아 전력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게 한 제도가 바로 통합(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입니다. IT기술을 활용하여 발전설비나 전력수요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로 통합관리를 하는 것이죠. 이번 '분산에너지 활성화법'은 이러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정규모 이상의 신규 택지·도시개발 사업의 경우 사용에너지의 일부를 분산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도록 했으니, 큰 수요처도 뒷받침도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여러 쟁점사항 중 하나였던, 출력제어에 대한 보상금 지급 문제는 빠진 반면, 소위 SMR(소형모듈원자로)은 '분산에너지원'의 하나로 인정되었습니다. 당초 민주당에서는 SMR의 안전성 등을 이유로 분산에너지원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것을 전제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탄소중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하에 환경-신재생 에너지의 미래에 상당한 전문성을 가진 국회의원이고, 국민의힘 박수영의원도 지역특화 분산에너지의 미래를 내다본 국회의원입니다. 대한민국의 탄소중립과 에너지산업의 발전을 위한 두 분의 노력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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