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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성폭력, 학생들은 절차에 따라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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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성폭력, 학생들은 절차에 따라 배제됐다" [당신들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⑨ 세종대 교수 성폭력 사건

잔인한 봄이었다. 그리고 잔인한 여름이 되었다. 5개월이 지났지만 고통은 여전하다. 원인은 하나다. 아직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그 날'의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수십, 수백, 수천 종류의 고통으로 각자에게 기억되고 있는 일이다.

2018년 2월 28일은 신입생과 교수들, 학생회 구성원이 처음 만난 날이었다. 학생회는 전날까지 신입생들의 환영 행사를 기획했고 그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설렘과 긴장감이 봄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학생회의 입장문을 썼다. 교수회의 입장문도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고, 고통스러웠고, 슬펐고, 눈물이 났다. 봄의 설렘은 그렇게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해 교수는 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 밝혔다.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학교는 수리를 보류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하겠다 했다. 3월 9일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꾸려졌고, 3월 13일 비대위와 재학생들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성폭행 가해의 교수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그 사이 교내 동아리들의 교수 성폭력 해결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하나 둘씩 학교 곳곳에 붙여졌다. 그러나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대면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아닌,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지지의 목소리는 존재했고 커져갔다. 축제 기간(5월 9~10일)에는 조속한 처벌을 요구하는 연대 서명을 받았다. 1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직원, 시민들이 함께했다.

학교는 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성폭력조사위원회-인사위원회-징계위원회의 순이었다. 조사 기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다. 조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위원회는 어떤 인물로 구성되는지 등 조사 단계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그 사이 가해자는 일부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 졸업생들과 접촉해 회유 및 2차 가해를 행했다. 지금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보도 자료를 내, 세 건의 폭로 중 한 건의 무혐의 처분을 가지고 모든 건이 무혐의 인양 여론을 호도하여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다. 학교의 미온적인 대처와 가해자의 파렴치한 대응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여러 연대 단체가 참여한 제도 개선 간담회와 교육부에서 자리를 만든 간담회 등 여러 간담회에 참여했으나, 현장과 행정의 온도차를 느꼈다. 여론이 만들어져 무언가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하지만, 갈 길이 멀어보였다.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연락을 하거나 찾아가야 알 수 있었고, 그 과정에 대한 발표는 없었다. 조사 과정 중 가해자와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들과의 접촉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성추행 폭로가 있었던 P교수 경우에는, 학교와의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시행되지 않았다.

세종대는 그간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을까. 학교의 시스템은 굉장히 허술했다. 과거 교육부에서 지침으로 내려와 만들어진 반성폭력 내규의 내용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번처럼 학교가 '절차'를 운운하며 학생들을 배제하고 징계위와 이사회를 진행한다면 학생들은 어느 곳에도 안전하고도 (성)평등한 학습 환경, 학습권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타 학교의 사례를 참고하여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조사위원회에 제도적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올바른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향후 유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이 학교의 대처에 대하여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불편한 문제를 용기 있게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은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성폭력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명예훼손은 성폭행 사실을 고발한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가한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가해자들은 그것은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동의된 스킨십이었다고 하며 SNS상으로 주고 받은 대화를 상대방도 좋아했다는 증거로 내민다. 거기에는 어떠한 상하관계도 느껴지지 않는 '동등한' 위치의 '남녀'만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취업이, 내 진로가 교수에게 달려 있는 학생들은 상대방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자신을 낮추고, 맞추며, 때로는 애교와 웃음으로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하, 위계 관계에서 '언어'는 겉으로는 동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비동의'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성폭력을 이해해야 한다.

이 일을 겪은 우리 모두는 이 일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다르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헤아려야 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헤아림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상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성학자 전희경 선생의 다음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성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그 반대를 통해 다른 사회, 다른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그 다름에 대한 상상력은 사회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하는 사이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 다시 한 번 써본다. 지금 우리에겐 '부정의'를 감각/인지할 수 있는 평균적 감수성 자체를 높이는 것, 그 '부정의'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동시에 다시 '정의'를 추구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환기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생의 조건, 함께 살기위한 조건. 그러니까 이것은 결국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인 것이다.


▲ 세종대학교 관련 집회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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