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이후 처음 열린 중앙위원회는 심상정 공동대표가 의장을 맡는 통합진보당 의결기구로, 위원은 900여 명이다. 지난 4일과 10일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회로 열렸던 전국운영위원회보다 상위 기구다.
이날 회의 안건으로는 △비례대표 사퇴 등의 내용을 담은 '혁신결의안' △혁신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의 건 △강령개정 △당헌개정 등 4가지가 상정됐다. 이중 비례대표 사퇴 문제와 비대위 구성 안건은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에 의견대립을 빚고 있는 사안이다. 당권파가 주장한 비례대표 사퇴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안은 이날 예상과 달리 발의되지 않았다.
공동대표 4인 모두 사퇴
심상정 공동대표는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날 중앙위 의장의 역할이 "공동대표서 부여된 마지막 임무"라며 "중앙위 의장으로서 오늘 모든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이 오늘 이 자리를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 앞에는 희망의 길과 절망의 길, 승리의 길과 패배의 길이라는 두 개의 길이 놓여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패배와 절망으로 가는 길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며 "(이는) 당원의 명령이고, 우리 진보정당을 의지하고 있는 노동자·국민의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중앙위원 여러분 앞에서 첫인사이자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며 "내일부터 우리 당의 평당원으로서 이번 총선에서 우리 당에게 230만 표를 모아주신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 공동대표는 "당의 공동대표로서 우리 당의 내부 선거를 제대로 관리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우리 당에 대해서 바로잡을 것을 바로잡고 채울 것을 더 채워서 국민과 일하는 사람들, 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정당으로 발전하기 원하는 국민여러분께 마음 깊은 곳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중앙위 회의 시작 직전 "저는 지금 공동대표에서 물러난다. 고마웠다"며 짧은 연설을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경선부정사태 진상조사위원장 직을 맡아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논란의 한가운데 섰던 조준호 공동대표는 "저의 부족과 허물이 있고, 저로 인해서 우리 당원들이 혹여 마음의 상처가 되셨다면 죄송하다. 저의 부족함을 용서해달라"며 입을 열었다.
조 공동대표는 "당이 어려움에 처하고 회오리 한가운데 있다"며 "중앙위 결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 이 중앙위가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지혜로운 자리, 원만한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12일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곽재훈) |
참관인들, 고성난무…중앙위원 발언 안 들릴 정도
그러나 조준호 공동대표의 이같은 바람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회의는 오후 2시였던 예정시각을 30분 가량 넘겨 시작됐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참석 인원이 "재적 912명에 현재 546명"이라며 오후 2시 11분께 개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한 시간 넘도록 회의 성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중앙위원들은 심 대표의 성원 보고에 이의를 제기하며 △중앙위를 앞두고 위원들의 교체가 이뤄진 점 △중앙위원들의 신원을 명확히 확인해 달라는 점 등을 요구했다.
김용신 사무부총장이 통합 주체 간의 합의에 따라 민주노동당계 55%, 국민참여당계 30%, 진보신당 탈당파 15%의 비율 안에서 각 정파별로 위원 교체가 일어났음을 보고했지만 일부 위원들과 참관인들은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중앙위원들의 신원확인 문제에 대해 한 위원은 "오늘 회의 참석할 때 보니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확인하지 않던데, 제가 '유령 중앙위원'이 될지 몰라 다 확인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위원장을 맡은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 '유령당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감정적 반발로 읽힌다.
일부 중앙위원들은 이 같은 문제를 계속 거론하며 격렬히 반발했고 심 공동대표가 이를 무시하고 회의를 진행하자 소란이 일었다. 한 중앙위원은 "씹XX"라고 욕설을 하기도 했다. 심 공동대표가 정색을 하고 "욕설하신 분 일어나 달라. 자제해달라. 또다시 욕설이 일어난다면 곧바로 퇴장조치 하겠다"고 경고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회의 순서를 정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발언권을 얻지 않고 성원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발언이 있는 등 논란은 계속됐다.
참관인석의 소란은 한층 더 심했다. 오후 3시 10분경 일부 참관인들이 "성원확인! 성원확인!"을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참관인석 한 곳에서는 몸싸움도 빚어졌다. 참관인석에서는 계속 "대표단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가 나왔다. 의장인 심 공동대표와 기자들이 중앙위원들의 발언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성원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위원들에게 동의하며 플래카드를 들거나 "유령 중앙위 중단하라!"라고 외치는 젊은 참관인들도 있었다. 3시 40분경에는 한 노인이 참관인석에서 중앙위원석으로 난입했다가 진행요원들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회의 전망은?
현장 분위기 등을 종합할 때 이날 회의 결과가 불투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우선 900여 명의 중앙위원 중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2/3 정도다. 심 공동대표의 개회선언 이후 입장한 위원 등이 있어 회순확정 표결 당시 재석은 636명이었다. 이중 비당권파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봐도 좋은 '찬성'은 508표가 나왔다.
회의 시작부터 '중앙위원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확인해달라'는 수준의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데다 당권파 측 성향으로 여겨지는 참관인들이 끊임없이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불법 중앙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쳐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상태가 오후 4시40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때까지 진행된 것은 1호 안건인 강령개정안에 대한 질의응답 정도다. 일부 위원들이 거의 모든 회의 진행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과연 이날 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상태인지에 대해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
참석한 위원들의 성향에 대한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당권파 성향 위원들이 대거 불참한 것과 비슷한 수의 성원으로 회의가 시작된 데다가, 일부 위원들과 참관인들이 회의 진행을 계속 막으면서 일부 관찰자들 속에서는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것이 당권파의 노림수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당권파 성향으로 여겨지는 참관인들이 다수 참석한데가 이들은 촛불집회 때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플래카드까지 미리 제작해왔다. 회의장 앞에 "당원 가슴에 대못질한 진상조사보고서를 폐기하라", "당신 때문에 얼굴 들 수가 없다. 노동자 망신 조준호 대표 당기위 제소!"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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