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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폭동 '샬러츠빌'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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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폭동 '샬러츠빌'의 교훈 [민미연 포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사회갈등 초래
작년 8월 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ie)시에서 발생한 사건이 미국을 경악시켰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했다.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위치한 교회에 괴한이 난입해 성경공부 중이던 교인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심취해 있던 가해자는 인종 전쟁을 시작할 목적으로 총격을 했다고 진술한다. 이 총격으로 목사 클레만타 C. 핀크니를 포함하여 총 9명이 사망했다. 찰스턴교회 총격 사건의 여파는 컸다. 사건 이후 인종주의를 상징하는 남부연합기 등의 상징물을 철거하는 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 흐름에 맞춰 샬러츠빌 시 당국은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에 있던 남부연합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우상이었던 그의 동상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KKK, 백인 우월주의자, 대안우파 등의 극우세력들이 총집결한다.

백인 극우세력들은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뜸한 버지니아대학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우파여 단결하라(Unite the Right)'라는 제목의 대대적인 동상 철거 반대 시위를 열기로 했다. 물리적인 충돌을 걱정한 대학과 지역 시민사회가 나서서 시위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수정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용하면서 시위를 허가한다. 법원의 시위 허가 소식이 전해지자, 더 많은 백인 극우세력이 모여들었고, 이를 막으려는 진보세력도 집결하기 시작했다.

리 장군의 동상이 있는 해방 공원에서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맞서던 사람 중 일부인 '안티파(Antifa, 반(反)파시스트)'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제임스 알렉스 필즈 주니어(James Alex Fields Jr)라는 극우 청년이 차를 몰고 진보 측 시위대 쪽으로 돌진, 헤더 헤이어(Heather Heyer)라는 32세 여성이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대낮에 태연히 얼굴을 드러낸 채 대규모 시위를 진행한 것은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폭력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대다수 국민은 미국의 정치적·인종적 분열에 대해 경악했다. 그런데 대통령 트럼프의 반응은 묘하게 달랐다. 트럼프는 사건 발생 후 '증오와 편견, 폭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극우파만이 아니라, 이를 제어하려던 진보시위대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많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좋은 나치는 없다'며 극우세력을 두둔하는 트럼프를 비난했다.

그런데 이후 미국의 여론 흐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1년이 지난 지금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백인 우월주의 옹호가 넘치다 못해 주류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트럼프를 지지하고,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하는 동영상이 넘친다. 샬러츠빌 이후, 극우 백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확대되었다. 미국은 지금 정치적 내전에 빠져들고 있다.

극우세력은 어떻게 여론의 집중포화를 피할 수 있었을까. 트럼프의 응원에 힘입은 극우세력 난동에 진보세력 중 일부인 '안티파(Anti facist)'가 무리하게 대항 폭력을 행사하면서 여론은 극우의 바람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안티파는 명확한 조직적 실체는 없으나,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세력의 일부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시위대의 이름이다. 이들은 단일하지도 않고 위계질서도 없는 무정형의 조직이다. '안티파 운동'은 원래 1990년대 이후 유럽의 극우세력이 소수자에게 가하는 폭력을 제어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극우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도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일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시위지도부가 일률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수천 명이 평화적으로 시위하다가도 극우세력의 도발에 소수가 맞대응하기 시작하면 '평화 시위'는 '폭력 시위'로 오도돼 보도됐다. 2017년 백인 극우집단에 의한 사망 사건만 18건에 달했음에도 그렇다. 유튜브에는 이제 백인 우월주의의 폭력보다 안티파의 폭력을 걱정하는 동영상이 도배되어 있다. 어떠한 언론에서도 안티파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시작한 전쟁의 정당한 저항자인 안티파가 오히려 여론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먼저,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의 심각한 분열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계기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기능부전에 빠진 서구자본주의를 재편성하려는 것이었다. 경제적 국경은 점점 사라졌다. 돈이 국경을 넘어서면서 공장도 같이 국경을 넘어갔다.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국가나 세계자본에 확실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지역은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를 시작한 것은 레이건과 대처 보수정부였지만, 이것을 확대 시행한 것은 클린턴과 블레어의 진보정부였다. 이 정책은 미국, 영국에 유례없는 호황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 세계화는 자국의 범용기술에 기반한 산업을 포기하는 정책에 다름 아니었다. 결국 호황은 선진국 상위층과 세계화에 동참한 국가의 상위층의 소득만을 불려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선진국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를 갈등으로 몰고 간다. 몰락한 중산층은 자신의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감정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정서적 토대를 이룬다. 선진 산업사회에 이미 진입한 사회의 정치세력 중 지역(로컬)적 정서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은 정치세력은 피와 흙(blood and soil)을 부르짖은 파시즘이 유일했다. '그들'이 아닌 '우리',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조국', '이성'이 아닌 '정서'에 대한 강조는 파시즘의 특징이다. 소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연히 파시즘에 경도된다. 문제는 미국의 상황이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세계화는 이미 세계를 단일한 운용 방식으로 구축했다. 한 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곧 모든 나라의 문제가 되었다.

한 사회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일단 작동을 시작하면, 오작동이 발생해도 웬만해선 중도에서 궤도 수정이 어렵다. 사회 개혁의 동력이었던 유교가 제도화되면 '유교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유교적 시스템은 유지됐다. 모든 시스템은 일단 제도화되고 공식화되면, 관성대로 유지되고 더욱 증폭 강화된다. 시스템은 유기체처럼 시작과 종말을 가진다. 사회 시스템이 종말 단계에 이르면, 그 시스템을 거부하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시스템의 사회 포섭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각 시스템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의 통합력을 높이고 내부 구성원 간 결속력을 높이는 것이다. 생산력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내부 통합을 위해 종교의 힘에 의탁해 '절제'를 강조하게 되고, 생산력이 높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에 대한 물신숭배가 일반화된다. 물신숭배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약화시키고 개인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핵심 기제가 된다. 자본에 대한 숭배의 감정은 개인들로 하여금 과도한 노동과 과도한 소비에 탐닉하게 만든다. 다시 자본주의는 강화된다.

자본주의와 이전의 사회 시스템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논리가 사회적 결속을 이완시키고 통합을 해체시키는 원심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질주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 왔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모순은 국경 내부에서 해결 가능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내부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외부의 모순과 착종(錯綜)시키기에 모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국경을 넘어선다'는 세계화의 장점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단점으로 변한다. 법인세를 올려 복지를 강화하고 싶어도 세금을 올리는 순간, 자본은 외부로 향한다. 바닥을 향한 경쟁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극장에서 불이 나 모두가 출구를 향한다. 빠져나가려고 하는 이들로 출구는 미어터지고, 이내 누구도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양보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드디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샬러츠빌 사태는 한 사회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 공동체의 구성원을 제대로 통합하지 못하고 소외시킬 때, 또한 그런 식의 소외가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위한 것으로 당연시될 때 사회가 어떤 식으로 분절되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샬러츠빌을 극우의 난동으로 간주하며 '우리도 극우를 조심하자'는 식으로 간편하게 결론 낼 때 우리는 많은 이의 고통을 극우만의 고통으로 축소시킨다. 극소수 극우세력이 서슴없이 나서게 된 데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만든 사회에 절망하는 우경화된 대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중도우파 정당이 담아내기에 버거울 정도로 우경화된 데에는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과 같은 주류 진보정당의 탓이 크다. 미국 민주당 측 리버럴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한 정치세력이다. 그들은 백인 극우세력을 비난하지만,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정치·경제적 문제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나서지도 않는다. 미국과 유럽을 휩쓰는 극우의 광풍은 극우의 난폭한 항의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이들 동조자는 선량한 시민에 대한 간접적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하다.

샬러츠빌은 극우의 난동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사회 갈등이 앞으로 얼마나 심각해질 것인지에 대한 징후이기도 하다.

샬러츠빌은 이제 시작일 따름이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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