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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광폭행보', 이한구가 최대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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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광폭행보', 이한구가 최대 걸림돌? [이철희 칼럼] 박근혜식 국민통합, 순조로울까?
박근혜 후보의 행보를 두고 '광폭행보'란다. '광폭'이란 단어는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뜻이 쉽지도 않은데다 과거 김정일의 통치방식에 대해 북한 언론이 썼던 '광폭정치'란 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대담하고 통 큰 정치'를 일컫는 말로, '인덕정치가 실현되는 사회주의 만세'라는 제목의 1993년 1월 28일자 <노동신문> 정론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정론은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고 노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폭이 넓어야 한다면서 김정일 총비서의 통치방식을 '광폭정치'라고 일컬었는데, 문화어 정책에 따라 순수한 우리말로 '통 큰 정치'라고 해도 그만일 것을 굳이 한자어를 조합한 이유는 김정일 총비서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예전과 달리 색조가 풍부해진 여성의 의상과 입술 화장, 보천보경음악단의 경쾌한 경음악 연주, 주체사상탑·개선문·유경호텔, 오일경기장 등의 웅장한 건축물,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1998),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 평양 초청(2000. 6) 등 일상생활과 주요 국가사업에서의 굵직굵직한 변화들이 이른바 광폭정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후보의 이른바 광폭행보는 그 실내용보다 종북의 뉘앙스가 풍겨지는 단어를 반공세력이 용감하게 갖다 쓴다는 점이 더 신선해 보인다. 만약 통합진보당에서 광폭행보란 말을 썼더라면 아마 종북 운운하며 매도하기에 바빴을 것이니 말이다. 안철수 원장이 북한에 백신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국가보안법 위반을 거론한 새누리당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싶다. 어쨌든 북한의 용어까지 차용해 쓰는 걸 보면 박 후보의 무서운 권력의지가 섬뜩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광폭행보라고 하니 그 개념을 쓰더라도 문제는 그 내용이다. 어떻게 해야 누가 봐도 광폭이라고 수긍할 수 있을까? 광폭을 우리말로 옮기면 '통 큰'이 된다. 통이 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자신의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가지가 핵심이다. 무엇보다 먼저 기존의 당내 질서, 즉 친박 중심의 1인 사당체제를 혁파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민주화, 민주적 의사결정이 바로 박 후보가 말하는 포용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내전과 혼란에 시달리던 나라가 민주화로 평화를 되찾는 것만 봐도 포용과 화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박 후보가 새누리당을 완벽하게 장악한 것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문에 당을 그에게 헌정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권력투쟁을 통해 빼앗은 것이 아니지만, 그는 의원들이 만들어준 비상대권을 활용해 친이를 솎아내고 자신의 당으로 만들었다. 주어진 기회를 재빠르고 담대하게 활용하는 박 후보의 리더십은 역시 대단했다. 아마 정당 역사상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더 남아있는 시점의 여당에서 그처럼 평화롭고 완벽하게 당권교체에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축한 것이 현재의 당내 질서다. 지난 20일 발표된 당내 경선에서 83.9%의 득표율은 이런 당내 질서의 정확한 반영이다.

이러한 당내 질서를 해체해야 모름지기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손해 보는 건 전혀 없는 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협조요청 한다고 해서 통합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박 후보가 찾아가서 만난 YS의 표정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박 후보가 이번에 83.9%의 득표를 했지만 투표율이 41.2%에 불과해 전체 선거인단으로 환산할 경우 35.5%에 불과하다. 기권한 모든 사람들이 항의(voice)의 차원에서 한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수가 마땅치 않아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정도의 신임이라면 과감하게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백번 낫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박 후보의 곁에 포진해 있는 친박은 심기경호에 능할 뿐 사실 선거 승리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전총재의 가신그룹보다 못하다. 오죽하면 보수 논객인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이 "친박이라는 예스 맨(yes man)이 넘쳐나고, 거액의 뇌물 전력자가 공동 선대위원장"이라며 혀를 찰까. 미국 보수의 우상인 레이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 당내 경선에서 경쟁했던 부시의 참모였던 베이커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박 후보는 이를 넘어 아예 친박·비박 프레임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것은 박 후보가 의지만 가지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복지안동(伏地眼動)의 지도부를 퇴진시키고 탕평체제를 구축하면 된다. 이것이 광폭행보의 진정성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 대선 후보로 확정된 다음날 행보로 봉하마을을 전격 방문한 박근혜 후보. ⓒ뉴시스

두 번째 핵심은 역사인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과거를 털고 미래로 가자면서 박 후보는 이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그런데 과거를 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얘기하자는 논리는 일제 강점과 만행에 대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할 때 언제나 우리가 듣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도 공과를 함께 남겼다. 공은 이미 충분히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에 대해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다.

물건으로 치면 자기 것을 내놓는 것, 정신으로 치면 자신의 생각을 접거나 뒤로 밀쳐놓는 것이 통합의 시작이다. 박 후보가 진정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루려면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 박정희 시대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 없게 됐다. 더불어 5.16 쿠데타에 대해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 자신의 말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취임식 날 헌법 수호를 선서해야 하는 대통령이 그 이유가 무엇이든 헌정질서를 불법으로 무너뜨린 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셋째,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 후보의 브레인인 김종인 전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찾고 전임 대통령 묘소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합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이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야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 전의원은 그 방법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거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박 후보는 5년 전에 비해 경제·사회적 시각이 급속도로 변화됐고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박 후보가 후보 수락연설에서 통합을 내세우고 그를 위해 경제민주화, 복지 등을 화두로 삼은 것이다. 현재 2040세대가 가장 바라는 건 사회정의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지나치게 벌어진 경제적 격차 탓에 (사회구성원 전부가)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고 복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인·정당이라면 할 수밖에 없다. 박 후보는 이 같은 시대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하려면 무엇보다 2007년에 내걸었던 줄·푸·세 노선의 포기를 공개 천명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줄·푸·세가 큰 틀에서 같다는 말은 궤변이거나 무지다. 줄·푸·세 노선이 바로 MB의 국정노선이었다. 따라서 줄·푸·세 노선 때문에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것을 인정·반성하고, 그 정책의 교정에 지금부터 나서야 한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이 하고자만 한다면 얼마든지 정부의 정책을 입법으로 교정할 수 있다. 박 후보에겐 그럴 힘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경제민주화를 위해 MB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시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름지기 "시대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평가에 조금도 손색없는 실천이 될 것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는 총선 전에 약속 했던 것 중에 상당수를 지키지 않았다. 한 예로, 민간인 불법사찰 건이 터지자 법무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는데, 총선 후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 의도적인 침묵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에 비춰보면 정말 '통 큰' 무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광폭행보가 이미지 전략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속 좁은 폄훼는 아닌 듯싶다. 결국 MB의 떡볶이 이벤트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근혜 후보의 광폭행보가 성공할지 여부는 그가 자신의 주변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보면 된다. 앞서 언급한 보수 논객 김진 위원은 이렇게 적고 있다. "박근혜는 집안도 개혁의식이 부족하다. 재력가 동생은 특급호텔에서 호화결혼식을 하고, 올케는 저축은행 고문변호사였으며, 초등학생 조카는 최상류층 교육을 받고 있다." 박 후보는 이런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박 후보는 누가 뭐래도 이미 '살아 있는 권력'이다. 따라서 사정기관이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박 후보가 먼저 의혹이 있으면 주저 없이 수사하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박 후보의 통합에 결정적 걸림돌이 하나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다. 박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전대통령을 찾아 지난날의 잘못과 앙금을 풀려고 노력하는 데, 이 대표가 확 재를 뿌렸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만만 키우는 민주당의 구태정치는…학교폭력이나 묻지 마 살인 행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사퇴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앉혀 놓을 정도로 아끼는 친박 최측근이 이 모양이다. 한심하다. 이런 사람부터 단호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야말로 읍참마속, 아니 '읍참한구' 할 때다.

어떤 의도에서든 박 후보가 광폭행보, 국민대통합을 내건 이상 '생까면' 엄청난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단 기치를 든 이상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멈추면 죽는다. 그렇다면 과연 박 후보가 당내외의 반대를 뚫고 앞으로 갈 수 있을까? 박 후보의 얼음 같은 표정을 보면 그 의지를 얕잡아 볼 일이 아닌 것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라면 부(否)에 걸겠다. 그 변화에 궁극적 걸림돌이 바로 박 후보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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